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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CES에서 본 변화…첨단 기술만 목매는 기업에 미래는 없다

절대 지위였던 기술, '인류 가치' 달성 위한 수단 돼
어떤 삶이 옳은지 설정 후 그에 맞는 기술 발전시켜야

(라스베이거스=뉴스1) 문창석 기자 | 2022-01-10 09:29 송고 | 2022-01-11 10:23 최종수정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인 CES 2022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 CES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2022.1.4/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인 CES 2022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 CES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2022.1.4/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현재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로 불리지만 2000년대 초만 해도 그저 그런 전자제품 전시회에 불과했다. 오히려 가전 전시회로서의 위상은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가 더 높았다. CES의 입지가 크게 달라진 건 IT 산업이 급격하게 발달하던 10여 년 전, 전시 대상이 가전에서 '기술'로 확장되면서다. 가전제품만 전시되는 게 아니라 드론·인공지능·로봇 등 미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성과들이 매년 전시되면서 CES는 기업들의 최첨단 기술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축제가 됐다. 행사를 주관하는 CEA(Consumer Electronics Association)도 지난 2015년 단체 명칭에 '기술'을 추가해 CTA(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로 바뀌었다. 어쩌면 CES라는 지금의 전시회 이름은 언젠가 CTS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이번 CES에선 그런 도약이 한 번 더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행사의 출발을 알린 지난 4일 기조연설에서 연사로 나선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래를 위한 동행(Together for tomorrow)'을 주제로 한 연설을 통해 기술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지속 가능한 미래'로 규정했다. 기술 혁신과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통해 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미래의 기술은 '지속 가능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비전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2년 전, CES 무대에 올랐던 그는 전세계 500여명의 기자들 앞에서 삼성 TV의 훌륭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데 집중했다. 한 부회장뿐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김현석 당시 삼성전자 사장의 CES 기조연설은 로봇 가전 기술 소개가 주된 내용이었고, 2019년 박일평 LG전자 CTO의 CES 기조연설은 자사의 인공지능 기술이 주제였으며, 2015년 CES 기조연설에서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사물인터넷 기술 개발 계획을 밝혔다. 모두 자사의 첨단 기술 소개에 집중한 발표다. '이 기술로 무슨 제품을 만들겠다'고 했던 기업이, 이젠 '이 기술은 무슨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게 된 건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CES에서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기술'은, 이젠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위로 내려온 것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이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2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 팔라조에서 '미래를 위한 동행'(Together for Tomorrow)을 주제로 기조 연설하고 있다. 2022.1.5/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이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2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베네시안 팔라조에서 '미래를 위한 동행'(Together for Tomorrow)을 주제로 기조 연설하고 있다. 2022.1.5/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과거 CES에서 발표된 VCR(1970년)·CD플레이어(1981년)·DVD(1996년) 등 전에 없던 기술로 만들어진 새로운 제품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최근 선보인 사물인터넷·드론(2015년)·자율주행(2019년)·도심항공교통(2020년)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CES에서 목격한 삼성의 변화는, 앞으로 기업이 살 길이란 남들보다 뛰어난 제품과 전에 없던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동시에 미래에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먼저 설정하고 그에 맞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전기차의 본격적인 등장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오늘날 전기차를 전세계 자동차 산업의 대세로 만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대학 시절 심각하게 고민했던 건 인류의 미래라고 한다. 지구는 언젠가 종말을 맞을 것인데, 그럼 인류는 무엇을 해야겠냐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과 '청정 에너지', '우주진출'이 답이라고 결론 내렸다. 청정 에너지를 위한 교통 수단으로 대중적인 전기차를 개발하게 됐으며, 인터넷(스타링크)과 우주진출(스페이스X)도 실현 중이다. 전기차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고민이 먼저였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전기차라는 새로운 산업이 열린 것이다.
더 나은 품질의 제품과 새로운 기술 개발은 당연히 기업들이 계속 추구해야 할 가치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옳고 거기에 맞는 제품과 기술은 무엇일지, 단순히 개별 기업과 국가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그런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미래 비전을 꿰뚫어 보려는 노력을 우리 기업들은 얼마나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경주마처럼 기술 경쟁에만 빠져 시대가 요구하는 기업가 정신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 기업이 이번 CES에서 무슨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고 자랑하고 우수한 기술력을 뽐내며 CES를 휩쓸었다는 이른바 '국뽕(과도한 애국주의)'에만 빠진다면, 앞으로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을 내놓는 해외 다른 기업들에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도태될지도 모른다.

다행스러운 건 이번 CES에서 국내 기업들에게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봤다는 점이다. 삼성은 앞으로 기술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언했으며, SK는 '탄소감축'이라는 그룹 차원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집중력 있게 전달했다. 단순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그런 이상적인 이야기가 몇 년, 몇십 년 후에는 그동안 정체됐던 우리 기업들을 '퀀텀 점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일론 머스크가 각종 인터뷰와 기고문을 맡을 때마다 유독 강조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크게 생각하라(You have to think big)."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8월 독일 베를린 인근 그루엔하이드에 있는 테슬라 기가팩토리 건설현장을 방문하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노선웅 기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8월 독일 베를린 인근 그루엔하이드에 있는 테슬라 기가팩토리 건설현장을 방문하며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노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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