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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비극' 징역 4년 20대 청년,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첫 수혜자 될까

재단 측 "복지 사각으로 인한 비극…장학금 검토"

(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2021-11-12 05:05 송고
이수호(오른쪽)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이정기 서울봉제인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전태일열사 50주기 버들다리 축제에서 전태일동상에 목도리를 매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20.11.7/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이수호(오른쪽)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이정기 서울봉제인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전태일열사 50주기 버들다리 축제에서 전태일동상에 목도리를 매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2020.11.7/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의 연대 정신을 기리는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이 장학사업의 첫 수혜자로 생활고 탓에 병세가 깊은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대구의 20대 A씨(22)를 검토하고 있다.

A씨가 비록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사건의 원인을 복지 사각지대라는 사회적 병폐와 '둘 중에 한명은 죽어야 하는 취약층의 간병 비극'으로 보고 장학금을 지급하자는 내부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은 12일 사회적 책임이 방기된 사각지대의 취약층을 지원한다는 장학재단의 설립 취지에 맞아 A씨에 대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관계자는 이날 뉴스1과 통화에서 "확정된 것은 아니고 말그대로 검토 단계로, 지원 방식과 금액도 미정"이라며 "연말에 예정된 정기 장학사업에 앞서 지원이 확정되면 A씨가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의 1호 장학생이 되는 셈"이라고 했다.

외동아들인 A씨는 약 10년 전부터 아버지(56·사망)와 단둘이 지내다 지난해 9월 아버지가 뇌출혈 증세로 쓰러져 입원하면서 간병 비용 등으로 인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A씨는 결국 지난 4월 아버지를 퇴원시킨 뒤 집에서 혼자 간병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5월1일부터 8일까지 치료식과 물, 처방약 제공을 중단하고 아버지를 방에 방치해 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퇴원한 아버지는 왼쪽 팔다리 마비 증상으로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코에 호스를 삽입해 음식물을 위장으로 바로 공급해 영양 상태를 유지하는 경관 급식으로 음식물을 섭취해야 했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2시간마다 체위를 바꿔야 했으며 폐렴으로 인해 호흡 곤란이 나타나지 않는지 등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였다.

A씨는 퇴원 당일에는 병원 안내대로 아버지에게 음식물과 약 등을 제공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약을 제공하지 않았고, 하루 3회 먹어야 하는 치료식도 일주일에 10번만 줬다. 그마저도 아버지가 "배고프다", "목마르다"고 요청할 때만 제공했다.

아버지가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A씨는 "아들아, 아들아"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도움을 모른 척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은 A씨 사건의 원인이 복지에서 소외된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됐다며 선처를 요구했지만 법의 잣대는 준엄했다.

대구고법 형사2부(양영희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A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어린 나이에 경제적 능력이 없어 피해자인 부친의 연명 입원 치료 중단과 퇴원을 결정하게 된 후 병원 처방약을 피해자에게 제대로 투여하지 않은 점과 자백 진술을 종합해 보면, 피해자를 죽게 할 마음을 먹고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피해자를 방치해 살해한 점, 패륜성에 비춰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큰 점, 어린 나이로 경제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간병 부담을 홀로 떠안게 되자 미숙한 판단으로 범행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초범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원심이 선고한 형이 무거워 부당하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자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이사인 전순옥 전 의원은 A씨의 항소심 재판이 열린 이날 대구고법을 찾아 "장학금을 지원하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의원은 "1호 장학금은 간병 사각지대에 놓여 비극적 사건 당사자가 된 청년에게 주고 싶다"며 "도움의 손길 없이 홀로 방치된 이 청년에 대한 지원에 대해 오빠와 어머니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은 전태일 열사의 51주기인 13일부터 본격적으로 장학사업을 시작한다.

전태일 열사의 친구 최종인씨가 5억원을 냈고, 청계피복노동조합과 전태일재단이 9200만원을 보탰다.

재단은 10만명 후원회원 가입 운동을 벌여 장학기금을 100억원으로 늘리고 불안정 노동자와 사회활동가 자녀 학자금 지원 등을 통해 사회연대망 강화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5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인문학 진흥관에서 열린 제20회 대선 후보 초청 강연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1.11.5/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5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인문학 진흥관에서 열린 제20회 대선 후보 초청 강연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1.11.5/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최근 자신의 SNS에 A씨 사건을 언급하며 "국민에게 의무를 요구할 때는 신속한 국가가, 의무를 다해야 할 땐 답답할 정도로 느려선 안된다. 국가 입장에서는 작은 사각지대이지만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며 "묵묵히 현실을 열심히 살았을 청년에게 주어지지 않은 자립의 기회, 자기든 아버지든 둘 중 한명은 죽어야만 끝나는 간병 문제의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썼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최근 페이스북에 "사회의 외면 속에 아버지와 단둘이 남겨졌던 A씨가 또다시 홀로 남겨지지 않도록 함께 탄원에 동참해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우리복지시민연합도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이른바 '간병 지옥', '간병 살인' 문제를 적극 해결해야 한다"며 "이제 간병과 돌봄 책임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dnam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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