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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휴일'이 뭔가요?…'노동자 350만명' 여전히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5인 미만 내년도 유급휴일 '0일'…근로기준법 적용 면제
"합법적 사각지대 사라져야"…"4인 이하 시행령 규정 확대 논의도"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2021-10-10 07:00 송고
5인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참여 단체 대표자들이 1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5인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9.14/(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김명섭 기자
5인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참여 단체 대표자들이 14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5인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9.14/(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김명섭 기자

"저는 소규모 갤러리(화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모두 출근했고, 이번 대체휴일에도 출근할 예정입니다. 해외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휴일에도 새벽 3시에 일을 할 때가 있지만, 따로 수당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11일 한글날 대체휴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인 A씨(30대)에게 연휴란 꿈 같은 일이다.
지난 6월 공휴일법이 통과했으나, 5인 미만 사업장은 공휴일 유급 휴일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근로기준법에 따르도록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설령 우리 갤러리가 휴일에 쉬어도 거래처가 쉬지 않으면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마감 기한을 대체휴일 다음날까지 정해놓고, '휴일에 쉬어도 되지만 못 끝내면 나와서 일하라'고 꼼수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직원 3명 규모의 작은 음악 바에서 근무했던 대학생 박모씨도 "추석을 제외한 모든 공휴일에 출근했다. 음악 바의 특성상 연휴나 공휴일에는 오히려 사람이 더 붐비는 이른바 '대목'이라 평소보다 더 바빴지만, 가산수당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A씨와 박씨처럼 5인 미만 사업장에 소속된 직원의 유급휴일은 내년에도 '0일'이다. 유일한 유급 휴일인 근로자의 날(5월1일)도 내년에는 일요일이다.

이들은 공휴일법 외에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주52시간제 등도 적용받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을 토대로 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11조는 법 적용 범위를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두 사람처럼 법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는 약 356만명(2019년 기준)에 달한다. 전체 임금 노동자의 20% 수준이다. 

4인 이하 사업장에도 △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의무 △임금 지급 △최저임금 이상 지급 △퇴직금 지급 △주휴일 △해고 예고 △출산 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 등 일부 조항은 적용되지만, 현장 근로자들의 말은 다르다.

사업자와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부당한 일을 겪어도 항의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박씨는 "당장 옆에 사업주가 있기 때문에 원하든 원치 않든 사업주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이상적인 환경이라면 사업주와 '친밀감'을 느끼며 상생할 수 있겠지만, 부당한 일을 겪을 때면 곧 '위협감'으로 다가온다"고 털어놨다.

"항상 사업주를 직접 마주해야 하다 보니, 눈치도 많이 보게 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직접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또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항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쉬운 건 다른 아르바이트 생 쓰면 되는 사업주가 아니라, 당장 이 일이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청년노동자 입장이니까요."

박씨가 아르바이트생이기 때문에 겪었던 일은 아니다. 갤러리 정직원인 A씨도 "육아휴직을 권유는 하지만, 막상 신청을 눈치가 보이고 일이 바쁘면 나와서 처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박씨는 "근로계약서 미작성, 빈번한 초과근무와 휴일 출근 및 가산수당 미지급, 이유 없이 이루어진 당일 통보 해고 등 법적으로 노동자 측의 항의를 권리로 보장해 준다 하더라도 항의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그런데 법까지 없거나 회피해서 적용해버리니까 5인 미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살아나갈 구멍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5인 미만 사업장의 특성으로 영세사업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동전의 반대면에 있는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이 나들이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2021.9.2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 종로구 경복궁이 나들이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2021.9.2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전문가들은 5인 미만 사업장을 '합법적인 사각지대'라고 규정하며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노사관계학) 교수는 "근로시간이나 휴일·휴가·해고 뿐 아니라 노동관계법도 근로기준법에 준해서 적용되고 있다"며 "법 이행 과정에서 정부가 해당 사업장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을 이유로 지금 같은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건 맞지 않다. 이제는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또 "최근에는 편법적인 직원 쪼개기로 인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그만큼 5인 미만 사업주가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방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반론도 있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사업자이면서 공동 작업자이기 때문에 인간적 신뢰관계가 필요한데, 이런 사업장에까지 대기업 해고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도 근로기준법의 5인 이상 기준이 근로자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노동 선진국으로 불리는 독일 역시 최저임금, 근로시간 등 규정은 보편적으로 적용하지만, 해고 보고는 10인 이상, 노사 협의회는 30인 이상, 근로자 대표 협의회도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4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규정을 확대하자는 현실적인 해결책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노동법 교수는 "현행 근로기준법은 공법적 성격 때문에 관리·감독할 행정력이 필요하다. 5인 이상 사업장 약 50만개를 감독할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5인 미만(약 200만개)으로 확대된다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근로기준법을 행정감독 벌칙 중심에서 계약법적 관계를 토대로 한 민사책임제로 돌리거나, 현재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조항(주52시간제 등) 중 4인 이하 사업장에 우선적으로 적용할 조항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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