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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아니라 진흙탕에서 연꽃 핀다"…중생과 함께한 월주스님

금산사 조실 태공당 월주스님 87세 나이 열반
한국 대표 종교인…"수행과 사회대중은 같다"

(김제=뉴스1) 이지선 기자 | 2021-07-22 12:04 송고 | 2021-07-22 19:54 최종수정
태공당 월주스님이 자신이 지원한 캄보디아 크나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금산사 제공)/© 뉴스1
태공당 월주스님이 자신이 지원한 캄보디아 크나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금산사 제공)/© 뉴스1

"나만 성불하자고 산에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22일 87세로 열반한 태공 월주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세계인류의 공생을 실현하는 데 앞장섰다.
월주스님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정읍농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6세에 금산사 주지가 됐으며, 한국전쟁의 격동기 속에서 종교적 실천수행을 통한 평화로운 세상을 구현하고자 염원했다.

월주스님의 생애가 더욱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가 이타행(利他行˙남에게 공덕과 이익을 베풀어주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더 큰 행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주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을 서원으로 삼았다. 산사에 머물러 갇혀 있지 않고 모든 중생이 나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는 '동체대비'를 일생토록 견지해온 것이다.
월주 큰스님(금산사 제공)© 뉴스1
월주 큰스님(금산사 제공)© 뉴스1

실제 월주스님의 활동은 사회복지와 사회개혁 운동에서 크게 두드러졌다.

1966년 제2대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1980년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을 지냈다. 이후 1994년 조계종 개혁 당시 제28대 총무원장을 다시 한 번 지냈다. 또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위원장, 나눔의 집 이사장, 지구촌공생회 대표이사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자신이 설립한 국제구호 단체인 '지구촌공생회' 활동을 통해 라오스와 베트남, 캄보디아, 아프리카 등에서 우물 파기 등 긴급구호활동과 교육지원사업을 펼쳤다. 가장 열악한 곳에 가장 절실한 일을 해주는 것을 단체의 목표로 삼았다.

이를 두고 월주스님은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에서 "이제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내게는 제2의 출가였다"라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큰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금산사 관계자는 "이제 그만 편하게 쉬시면서 여생을 보내시면 좋겠다라는 주위 만류에도 큰스님은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으셨다"며 "정신적 괴로움이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원근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셨다"고 회상했다.

월주스님은 이날 오전 9시 45분께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서 열반했다. 월주스님은 최근 폐렴 등으로 동국대 일산병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며, 이날 새벽 금산사로 자리를 옮겨 마지막을 준비했다.

장례는 금산사에서 종단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오는 26일 오전 10시부터 엄수될 예정이다. 월주스님은 2012년 금산사 조실로 추대됐다.


letswin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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