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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오염' 檢 증명에 '김학의 운명'…한명숙·조국 사건 '오버랩'도

"유·무죄 가능성 모두 있어"…'불법 출금' 수사 영향 가능성도
한명숙 재판 '증언 연습 의혹' 등 기존 수사관행에 제동

(서울=뉴스1) 윤수희 기자 | 2021-06-10 18:27 송고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0일 오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보석 출소하고 있다. 2021.6.1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0일 오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보석 출소하고 있다. 2021.6.1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대법원이 10일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65) 사건의 법정 증언이 '회유·협박'에 의해 오염됐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검찰의 소명을 요구했다. 법정 증언이 예정된 증인을 검찰로 불러 사전 면담한 후 피고인에 불리한 진술이 나왔다면 오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 전후 과정에 위법 행위가 있었다는 '불법 출금 의혹'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수사가 진행 중인데다, '재소자 증언 연습' 의혹이 불거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의 수사관행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법조계에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사업가 최모씨, 저축은행 회장 김모씨로부터 수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김 전 차관의 금품 수수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 및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는데, 2심은 최씨로부터 4300만원 상당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점을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재판 과정에서 최씨가 증인신문 전 검사와 면담한 후 김 전 차관에 불리한 방향으로 진술이 바뀐 부분에 주목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면담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회유나 압박, 답변 유도나 암시 등의 영향을 받아 종전에 한 진술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로 변경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법정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설시했다.

그러면서 "증인에 대한 회유나 압박이 없었다는 사정은 검사가 증인의 법정진술이나 면담과정을 기록한 자료 등으로 사전면담 시점, 이유와 방법, 구체적 내용 등을 밝힘으로써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증인 사전 면담 이후에 이뤄진 법정 증언의 신빙성을 평가하고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검사의 일방적인 증인 사전면담을 규제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검찰은 즉각 반박했다. 검찰 수사단 관계자는 "증인 사전 면담은 검찰 사건 사무규칙 189조에 근거한 적법한 조치"라며 해당 증인을 상대로 회유나 압박을 한 사실이 없다"라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미진한 부분 추가 심리하라는 것…유·무죄 가능성 모두 있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이라기보다 심리가 미진하니 더 꼼꼼히 살펴보라는 취지이다.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이 제대로 소명한다면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새로운 법리를 냈고 검사가 이 법리에 따라 하급심에서 증인의 진술이 사전면담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된다"면서 "추가 심리하는 것이니 증명의 성공 정도에 따라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검찰이 사전면담을 통해 증언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기환송심에서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나마 일부 유죄가 인정된 김 전 차관의 금품수수 혐의가 전부 무죄로 결론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이 경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질 수 있다. 

이 사건은 2012년 '성접대 동영상'으로 처음 불거졌지만 검찰의 무혐의 처분과 재수사를 거친 끝에 김 전 차관은 의혹 제기 6년 만인 2019년 6월에야 구속기소됐다.

일부 뇌물 수수 혐의가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 판결을 받은 데다 성접대를 받았다는 혐의도 공소시효가 만료를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기에, 그나마 유죄로 인정된 뇌물수수 혐의마저 무죄로 판결난다면 2013년 수사 당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죄 나오면 '불법 출금' '靑 기획사정' 수사 도움? 

일각에선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김 전 차관 수사 시작과 그 과정이 위법했다는 취지의 '불법 출금 사건'과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수사와 재판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검찰이 '무죄' 가능성이 높은 사안임에도 위법한 절차와 무리한 수사, 오염된 증언을 동원해 '억지로' 유죄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 출금 사건은 김 전 차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허위 사건번호를 만드는 등 법무부와 검찰이 위법 행위를 벌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긴급 출국금지는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에 대해서만 가능한데, 당시 김 전 차관은 입건되지 않은 상태였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은 일부 내용이 허위 작성된 '윤중천 면담보고서'가 유출되고, 대통령 보고 자료에 포함돼 김 전 차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다는 의혹이다. 여기엔 이규원 검사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연루되어 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2021.6.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한명숙 전 국무총리. 2021.6.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한명숙·조국 재판서 불거진 검찰 수사관행 논란…영향 미칠까

이번 사건은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당시 수사관행과 유사한 지점이 많아 더욱 주목받는다. 2015년 대법원은 한 전 총리 유죄를 확정하면서도 소수 의견에서 검찰 강압수사 가능성을 지적한 바 있다.

한 전 총리 사건에서 핵심 증인인 고(故) 한만호 전 대표는 2010년 12월 1심 2차 공판에서 기존 검찰 수사 때 한 진술을 번복해 9억원 전달 사실을 부인했다. 1심은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는데, 2심은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의 신빙성을 모두 인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대법관 전원은 한 전 총리가 1차로 받은 3억원의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반대 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은 "7개월에 걸쳐 수십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1회와 5회 진술서 외에는 자료가 없는 등 수사의 정형을 벗어났다"고 판단,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다.

아울러 한 전 총리 사건은 당시 검찰이 한 전 대표의 1심 재판 증언을 탄핵하기 위해 한 전 대표 동료 수감자들을 불러 '증언 연습'을 시켰다는 '모해위증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한 합동감찰을 진행 중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재판에선 검찰 측 증인인 이인걸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이 법정에서 증인신문 하기 전 검찰에 들러 검사실에서 조서를 확인하는 것을 두고 검찰이 회유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이 회유는 있을 수 없고 법적 절차에 따라 증인의 조서 열람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기존 업무방식과 규정에 따라 한 것이라고 적극 소명한 바 있어 다시 문제가 될 소지는 적어보인다는 게 법조계의 전망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중요 사건의 경우 증언 전 증인을 면담하는 게 수사관행이었다"면서 "공소제기 후 수사를 자제하는 게 형사법의 대원칙과 공판중심주의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동감한다"라고 평가했다.


y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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