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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1주년]③자충수 된 '전두환 회고록'…'헬기사격 진실' 끄집어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 전씨 1심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실오인' 항소해 놓고 안 나타나…시민 학살 진실규명 성큼

(광주=뉴스1) 고귀한 기자 | 2021-05-18 06:10 송고
5·18전야제가 열린 17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첫 공연인 오월풍물단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2021.5.17/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5·18전야제가 열린 17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첫 공연인 오월풍물단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2021.5.17/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1980년 5월 광주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많은 시민들이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섰지만, 결국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집단 발포 등으로 인해 많은 희생과 아픔을 남겼다.
5·18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5월 가족과 당사자 등 광주시민에 있어 그날의 진실은 요원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은 진실의 편이라고 했던가.

전씨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쓴 회고록이 결국 자충수가 돼 그를 광주 형사 법정에 세웠다.
△회고록 출간서 광주 법정에 서기까지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 '혼돈의 시대'에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이런 전씨를 2017년 4월 고발했다.

검찰은 헬기사격의 목격자에 대한 진술을 청취하고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의 자료 검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전씨는 2018년 5월 불구속기소 됐다.

전씨는 광주가 아닌 서울지역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관할 이전 신청을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광주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전씨의 재판부 이송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로도 전씨 측은 기일 연기 신청을 하거나 알츠하이머와 고령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면서 공판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2018년 8월27일 1차 공판이 열렸지만 공판 시작 후에도 전씨 측은 관할이전 신청 기각에 항고했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전씨의 형사재판 관할이전 신청을 최종 기각했다.

관할 이전과 기일 연기 신청,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을 불출석하던 전씨는 결국 구인장을 발부한 후인 2019년 3월에서야 광주 재판에 처음 출석했다.

이날 전씨는 법원에 출석하며 "발포명령 부인하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 왜이래"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재판 중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여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재판에서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진위가 재판의 주요 쟁점이었다.

전씨는 "헬기 사격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헬기 사격에 대한 증인들의 증언은 엇갈렸다.

광주기독병원 실습생, 전남대병원 간호사 등 헬기 사격을 목격한 시민, 고 조비오 신부와 함께 헬기 사격을 목격한 천주교 신도와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씨도 헬기 사격을 증언했다.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육군 항공대 상황일지와 전교사 보급지원현황 자료 등 기총소사를 입증할 군 기록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광주 전일빌딩에 남겨진 탄흔을 감정한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총기연구실장과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도 헬기 사격 증언에 힘을 더했다.

반면 전씨 측이 요청한 육군 항공대 제1항공여단장 송진원 전 준장, 506항공대 대대장, 부조종사, 광주에 투입됐던 11공수특전여단 중대장, 육군 1항공여단 500MD 헬기 조종사 등도 재판에 출석해 증언했다.

당시 군인 신분이었던 이들은 "무장 지시는 있었지만, 실제 사격은 없었다"며 일제히 헬기 사격을 부인했다.

전씨는 지난해 4월 열린 12차 공판에 출석하며 두 번째로 광주 재판에 출석했다. 당시에도 전씨는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16차, 17차 공판에서도 김성 5·18 특조위 부위원장이 광주 전일빌딩, 광주천, 조선대 뒷산 등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특조위 조사 내용을 진술했고,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 등은 "육군본부 차원에서 사격 작전 지침 내린 적이 없다"고 맞섰다.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재판장도 두 번이나 바뀌었다.

2019년 2월 법원 정기 인사로 재판장이 한차례 교체됐고 2020년 1월에는 총선 출마를 이유로 당시 부장판사가 사직해 두 차례 재판부가 변경됐다.

우려곡절 끝에 2년6개월간 진행된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사건의 1심은 지난해 11월30일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진행됐다.

1심 재판부는 전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이 있는 30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5.18 관련 단체 회원 등이 전두환 구속 촉구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2020.11.30/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이 있는 30일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5.18 관련 단체 회원 등이 전두환 구속 촉구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2020.11.30/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헬기사격 있었다" 재판부 판단 이유는?

1심 재판부는 1980년 5월21일 광주 불로동과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에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고 조비오 신부의 일관된 증언을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고 조비오 신부)는 사망할 때까지 500MD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고 호남동 성당에서 목격했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며 조 신부가 95년 검찰 진술 당시 그린 500MD 헬기 그림을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조 신부는 당시 500MD를 정확하게 그렸고, 헬기 왼쪽에 장착된 기관총을 오른쪽에 그리긴 했지만 잘못된 건 아니다"고 판단했다.

조비오 신부를 제외한 16명의 관련자 진술에서도 8명의 증언은 객관적으로 증명됐다고 봤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인들 진술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501항공대 500MD 부조종사는 정찰 중 '광주공항에 한번 위협사격을 하라'는 소리를 듣고 '명령권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며 "20㎜와 7.62㎜탄이 연결돼 있다는 점도 500MD 헬기가 7.62㎜탄을 사격했다는 유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군 관련 자료도 헬기 사격의 근거로 인용됐다.

교훈집 내용, 항공고 임무에 '화력 제공', 공중사격지원을 오해할 수 있다고 지우라고 한 점, 불확실한 표적에 공중 사격 요청, 부마 사건 관련 기재, 높은 유류 소모율, 미대사관의 텔레그램 등이 헬기사격을 뒷받침한다고 해석했다.

△'사실오인 부당' vs '처벌 가볍다' 쌍방 항소
  
검찰과 전씨 측은 원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전씨 측은 '사실오인이 있었다'고 주장한 반면, 검찰은 '형량이 가볍다'는 취지를 들었다.

검찰은 1심의 형이 너무 가볍고, 재판부가 1980년 5월21일과 27일 헬기사격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5월27일과 관련된 회고록 기재에 대해선 '허위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사실 오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전씨 측은 "법원이 1980년 5월21일 500MD에서 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500MD 무장헬기가 광주에 내려간 것은 5월22일이다"며 "21일 무장헬기가 있었다고 하는 게 기본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 등 이유를 들었다.

△전씨 불출석…"장거리·경호 인력 불편" 궤변

지난 10일 진행된 항소심 첫 재판에서 전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인정신문이 열리는 형사 재판에서는 피고인은 성명, 연령, 주거, 직업을 확인하는 첫 공판기일과 선고기일에는 출석해야 한다.

하지만 광주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재근)는 이날 오후 2시 전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으나 전씨가 불출석하면서 재판은 5분여 만에 마무리됐다.

이날 법정에서 전씨 측 변호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전씨의 불출석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65조엔 정당한 사유 없이 출정하지 않을 때 판결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는 피고인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지만 한편으로 피고인의 출석 의무를 완화해주는 취지로도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데다 다수의 경비인력 동원되야 하는 등 사회적 불편을 고려해 달라"며 피고인의 출석 없이 항소심 재판을 개정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사는 즉시 반발했다.

검사는 "형사소송법상에는 피고인의 성명, 연령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확인하도록 돼 있다"며 "재판부가 특혜를 베풀어 피고인의 불출석 재판을 허가하는 것은 재판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인이 첫 공판기일에 불출석하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차에서도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을 시 선고를 내리겠다"며 "이는 전국 법원 어디서든 일반적인 절차다"고 말했다.

이어 "인정신문 당일은 반드시 피고인이 나와야 한다"며 "불출석을 신청하고 싶다면 재판에 나와서 청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다음 재판 기일을 2주 후인 24일 오후 2시로 정했다.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전두환씨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린 10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전씨 측 정주교 변호사가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씨는 이날 재판에 불출석했고, 재판은 이달 24일 오후 2시로 연기됐다. 2021.5.10/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전두환씨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린 10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전씨 측 정주교 변호사가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씨는 이날 재판에 불출석했고, 재판은 이달 24일 오후 2시로 연기됐다. 2021.5.10/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반론권 포기했나…24일 항소심도 불출석 전망

전씨는 오는 항소심 공판 기일에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전씨에 대한 불출석을 불허한 반면, 전씨 측은 법리상 피고인이 불출석할 수 있다며 여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서다.

첫 항소심 공판기일에 참석한 전씨의 변호인은 법정을 나온 뒤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 기일에도 전씨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예정'이란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법정에서 전씨의 불출석 사유로 제기한 형사소송법 제365조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씨가 변론권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전 전 대통령이 2심 재판에 불출석할 경우 피고인 방어권, 형량 등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전씨에 대한 인정신문 없이 항소심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오월 단체, 전씨 항소심 불출석에 '분노'

전씨가 '헬기사격'을 인정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해 놓고 재판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고(故)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광주에 만행을 저지른 전씨가 1심에 대해 항소를 한 것은 불쾌한 일"이라며 "항소하고도 재판에 불출석한 것은 재판과 광주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본인이 떳떳하면 재판석에 서서 진위를 가려야 하지만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꼼수라고 생각된다"며 "재판을 연기하고 흩트리기 위한 작태라고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5·18기념재단과 오월 3단체도 성명을 통해 "전 씨는 불과 재판을 며칠 앞두고 사유서 제출도 없이 재판에 불출석하겠다며 법원과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시국을 이용해 재판 참석을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골프를 치면서도 재판 과정에서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고 주장하며 꾀병으로 법원을 농락했던 그의 뻔뻔하고 추악한 행태가 계속되는 것이다"며 "불평등 특혜는 그만하고, 5·18 원흉인 전씨를 당장 법정 구속·수사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씨의 불출석이 이어지면 재판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할 것"이라며 "피고인 전두환이 없는 재판을 지켜보는 5·18 당사자와 국민은 허탈함을 금치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5·18 헬기사격을 부인하며 무성의로 재판에 일관해 온 전씨.

그에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는 어떤 판결을 내릴 지 귀추가 주목된다.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전두환 씨가 지난해 11월30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연희동 자택을 나서며 손인사를 하고 있다. 2020.11.3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전두환 씨가 지난해 11월30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연희동 자택을 나서며 손인사를 하고 있다. 2020.11.3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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