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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100℃] 부동산과 교육 전쟁 '펜트하우스', 북한에도 있을까

드라마를 통해 생각해 본 남북의 집과 교육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2021-02-20 10:00 송고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SBS '펜트하우스2' 포스터 © 뉴스1
SBS '펜트하우스2' 포스터 © 뉴스1

"엄마 심장 반쪽을 팔아서라도 헤라팰리스에서 살게 해줄게."

대한민국 집값 1번지 '헤라팰리스'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딸 배로나(김현수 분)가 연신 불이익을 당하자 오윤희(유진 분)는 이렇게 다짐한다. 초호화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교육전쟁, 그야말로 핫한 소재들만 골라모은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이야기다. 자극적인 상황들과 예측불가능한 반전 속에서도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욕망, 자녀 교육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한국에선 '핫'한 주제인 집과 교육 문제는 북한이 남한을 흠잡을 때 사용하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일부만 혜택을 독점하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모든 인민들이 동등하게 좋은 집에 살 권리와 교육의 기회를 얻는다고 한다. '초호화'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평양의 리수진 어린이와 수해 복구를 마치고 소박한 집으로 이사하는 지방의 이름모를 인민들이 북한 유튜브로 동시에 선전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북한에도 헤라팰리스와 자식 교육을 향한 '욕망'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평양에 사는 리수진 어린이. 유튜브 'New DPRK' 갈무리.© 뉴스1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평양에 사는 리수진 어린이. 유튜브 'New DPRK' 갈무리.© 뉴스1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수해복구를 마치고 살림집을 받은 주민들이 입사증을 들고 서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수해복구를 마치고 살림집을 받은 주민들이 입사증을 들고 서 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에도 집값 1번지가?…암암리에 거래되는 주택


주택거래가 불법인 북한에서는 국가가 살림집(주택)을 짓고 거주자를 '배정'한다. 인민위원회로부터 '국가 살림집 이용허가증(입사증)'을 발급받은 사람만이 국가가 정해준 집에 살 수 있다. 물론 북한은 주택에 대한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입사증은 주택의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을 보장한다. 대신 인민들 모두 집값 걱정 없이 좋은 집에 살 수 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주택거래가 암암리에 이뤄진다.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주택배정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음성적 거래가 확산됐다. 암시장에서 활동하는 중개업자(거간꾼)들이 입사증 명의 변경, 조작 등으로 거래를 주도하고 있다. '집데꼬'라고도 불리는 거간꾼들은 주로 인민위원회 주택과 등에 연줄이 깊은 사람들로, 뇌물을 주고 입사증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자금이 필요해 집을 파는 사람, 좋은 집을 사려는 사람의 수요를 충족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거주가 아닌 되파려는 목적으로 입사증을 사는 사람도 있다. 그야말로 '자본주의화' 된 모습이다. 

초고층 아파트가 밀집한 수도 평양은 단연 돈주(신흥 부유층)와 주요 간부들의 관심사일터.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 강북으로 나뉘는 남한처럼 북한은 대동강을 기준으로 서평양, 동평양으로 나뉜다. 서평양 중에서도 중심지인 본평양은 '집값 1번지'다. 본평양은 평천, 중구역, 보통강, 모란봉 등 총 4구역으로 나뉜다. 평양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각종 편의시설이 밀집돼 인기가 높다. 본평양 일대 아파트는 10만에서 15만 달러로 가격이 형성되는데 최고 30만 달러에 달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화려한 조명이 수놓은 평양의 려명거리의 야경 사진. 이 곳에는 70층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서광 홈페이지 캡처)2020.7.21/뉴스1
화려한 조명이 수놓은 평양의 려명거리의 야경 사진. 이 곳에는 70층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서광 홈페이지 캡처)2020.7.21/뉴스1

북한의 '펜트하우스'는 맨 꼭대기가 아니다?

"지금은 45층에서 시작하지만 앞으로 돈 더 많이 벌어서 60층, 70층, 천서진이 사는 85층까지 계속해서 올라가 봐."

헤라팰리스의 꼭대기, '펜트하우스'의 안주인 심수련(이지아 분)은 '재개발 로또'로 입주에 성공한 오윤희에게 이렇게 축하의 인사를 건낸다. 이러다가 펜트하우스까지 욕심내는 거 아니야?"라는 수련의 농담에 윤희는 "내 주제에 무슨 펜트하우스를 욕심 내"라면서 손사래를 친다. 올라갈수록 '권력'이 되는 헤라팰리스에서 펜트하우스는 감히 욕심내기 어렵지만 누구나 올려다보는, '욕망의 꼭대기'다.    

그런데 북한에서 맨 꼭대기층은 '펜트하우스'가 아니다. 전력난으로 엘레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아 꼭대기보다는 중간층을 선호한다고 한다. 20층 아파트를 기준으로 2~5층 정도가 로열층이다. 1층은 벌레도 많고 도난사고의 위험이 있어 오히려 인기가 없다. 최근 평양 고급 아파트들은 관리비를 걷어 공동발전기를 구입해 전기를 자체적으로 돌리면서 높은층의 위험을 점차 줄이고 있다고 한다.

4일 북한 평양 미래과학자의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모습. 2017.4.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4일 북한 평양 미래과학자의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모습. 2017.4.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초고층 아파트는 북한에서도 부와 명예의 상징이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집권 이후 2012년 창전거리를 시작으로 은하과학자거리(2013년), 미래과학자거리(2015년), 려멍거리(2017년) 등에 고층 주거건물을 공들여 지었다. 과학자와 기술자, 교육자 등 북한 내 엘리트에게 고층건물을 배급하면서 이들을 쉽게 다루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일성 생일 105주년을 맞아 조성한 려명거리에는 북한판 헤라팰리스로 꼽힐 만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곳에는 82·70층에 해당하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북한은 과학자, 교육자들이 돈 한 푼 내지 않고 이 같은 호화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며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김 총비서의 지시에 따라 대부분 짧은 기간에 완공되면서 부실공사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전기나 수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최고층은 집없는 꽃제비들이 차지하기도 한단다. 북한 매체가 선전하는 현실과는 다른 실상이다.

북한에도 청아예고가?…남한 못지 않은 교육열

드라마에서 헤라팰리스 자녀들의 모임인 '리틀 헤라클럽'은 모두 성악을 전공하며 '청아예고' 진학을 목표로 한다. 청아예고에서의 성공이 명문대학교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헤라팰리스에서 시작한 부의 격차는 교육 기회의 차이로 이어진다.

"니가 청아예고에 무슨 수로 들어가. 너 돈 있어? 너네 엄마가 울 부모처럼 서포트 빵빵하게 해줄 수 있냐고! "

학교에 개인 연습실까지 설치할 정도로 부모로부터 '빵빵한' 서포트를 받은 유제니(진지희 분)는 청아예고를 욕심내는 배로나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실제로 '리틀헤라'들은 실력과 상관없이 입학에 성공하고,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다. 청아예고 이사장의 손녀 하은별(최예빈 분)이 시험을 망쳐 울면서 뛰쳐나와도 "뭔 걱정이야 쟤 할아버지가 이 학교 이사장인데"라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다. 

드라마 '펜트하우스' 속 '리틀헤라'들.(SBS 제공)© 뉴스1
드라마 '펜트하우스' 속 '리틀헤라'들.(SBS 제공)© 뉴스1

북한에서도 재력이나 명예를 가진 집안의 자녀들에게 출세의 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자녀를 예술인으로 키우려는 '교육열'이 북한에도 존재한다. 북한은 1959년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전반적 교육제도 개편을 결정하고 예술인 전문 교육을 본격화했다. 이에 따라 예술학교와 같은 전문 교육과정이 도입됐고 유치원부터 조기교육 실시하고 있다.

유치원 1년부터 의무교육인 북한에서는 입학 전 이미 '뒷돈'을 주며 교사들을 접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후에는 금성학원 같은 예술영재학교의 입학을 놓고 다시 경쟁한다. 금성학원은 북한 상위 1% 예술인재 양성학교로 1966년 설립됐으며 초·중·고 및 대학과정이 모두 이뤄진다. 이곳에는 주로 당 간부나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 입학한다. 금성학원 출신의 한 탈북민은 "금성학원 건물들의 건축과 재보수가 재학생 부모들의 후원으로 이뤄질 정도"라고 말했다. 김정은 총비서의 부인 리설주 여사도 금성학원에서 성악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예술인들은 직업적으로 안정되거나 정치적으로 출세하는 경우가 많아 교육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리설주 여사뿐만 아니라 현송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예술인 출신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보천보전자악단 소속이었던 그는 '준마처녀'라는 노래로 인기를 끈 뒤 모란봉악단 단장을 거쳐 2017년 10월 당 중앙위 후보위원이 됐고 2019년 2월에는 선전선동부 부부장에 올랐다. 

8차 노동당 대회 경축을 위해 열린 대공연 '당을 노래하노라' 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를 현송월 당 부부장이 수행하고 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8차 노동당 대회 경축을 위해 열린 대공연 '당을 노래하노라' 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를 현송월 당 부부장이 수행하고 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북한이지만 이처럼 부모의 소득 수준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치열한 교육 전쟁이 벌어진다. 다만 영재교육의 결과물은 결국 국가의 소유다. 유명 음악학교를 졸업하거나 국제무대에서 활약한 사람들은 국립교향악단, 만수대예술단, 은하수관현악단, 모란봉악단 등 주요 예술단체에 소속돼 활동한다. 이들은 김씨 일가를 찬양하는 내용을 교육받고 나라를 위해 일하게 된다.

펜트하우스 시즌1의 출연진. 김소연 이지아 유진(왼쪽부터)/ 사진=SBS '펜트하우스' © 뉴스1
펜트하우스 시즌1의 출연진. 김소연 이지아 유진(왼쪽부터)/ 사진=SBS '펜트하우스' © 뉴스1

"공화국의 인민들은 조선노동당의 인민을 위한 사랑의 정치에 의해 집 걱정이란 말조차 모르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공화국에서 실시되는 무료의무교육제도는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배움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우월한 교육제도."

초호화 집과 자식 교육을 향한 일그러진 욕망이 남한에서 '막장 드라마'의 소재가 되는 동안 북한은 이렇게 자신들의 주택 정책과 교육제도를 선전하고 있다. 좋은 집에 살고 싶고, 자식이 출세했으면 하는 마음은 북한도 다르지 않겠지만 '선전'에선 언제나 제외된다. 욕망의 꼭대기, '펜트하우스'의 이야기는 어제(19일) 다시 시작됐다. 집과 교육을 둘러싼 혼돈과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북을 불문한 '공감 포인트'가 있을 것만 같다.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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