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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외면받는 그들”…안전망 사각지대 부산항 용역 노동자

[항만아, 사람이 먼저다-하] 영세 하청업체 난립… 규모·인력 파악 안돼
“개인·용역회사에 떠넘겨 온 안전비용…이제는 정부가 주도적 나서야”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2021-01-31 08:00 송고
편집자주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6위, 세계 2위 환적항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부산항.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최첨단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 물류시스템을 갖춘 선진 항만으로서의 면모를 내세운다. 하지만 한 켠에는 새까만 먼지로 뒤덮인 좁은 컨테이너에서 쪽잠을 자는 항만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수시로 목숨을 위협받는다. <뉴스1>은 열악한 환경 속 위험에 내몰린 항만 노동자들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부산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2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부산항 신항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 냉동장치장 앞에 2m 높이의 안전펜스가 새로 설치된 모습. 지난해 12월 15일 해당 냉동 장치장에서는 60대 화물차 기사가 컨테이너에 연결된 플러그를 뽑으려다 무인 자동화 야드 크레인(ARMG)에 깔려 숨졌다.(독자제공)© 뉴스1
부산항 신항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 냉동장치장 앞에 2m 높이의 안전펜스가 새로 설치된 모습. 지난해 12월 15일 해당 냉동 장치장에서는 60대 화물차 기사가 컨테이너에 연결된 플러그를 뽑으려다 무인 자동화 야드 크레인(ARMG)에 깔려 숨졌다.(독자제공)© 뉴스1

최근 4개월동안 부산항 안에서는 외부 용역업체 노동자 3명이 잇따라 숨졌다. 하지만 부산항 주요 유관기관에서 집계한 사망자 발생 현황에 이들의 죽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외부'인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청에 재하청을 받는 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사실상 관리영역 밖으로 밀려난다.
부산항을 드나드는 전체 항만연관 산업체와 인력 규모는 정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진단이나 대책이 한계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항에서는 안전사고가 나면 땜질식 처방이 이뤄지기 일쑤다. 안전 장비에 대한 혁신적인 개선없이는 항만 노동자들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사고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부산항에서 벌어지는 안전사고 발생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교육을 법제화 해야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외부 용역업체 노동자들까지 안전망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이 있을지는 어느 누구도 장담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다. 
◇깔리고, 추락하고…외부 용역업체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지난달 15일 오후 9시쯤 부산항 신항3부두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 냉동 장치장 안에서 냉동 화물 트레일러 기사 A씨(67)가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채 발견됐다. A씨가 냉동 컨테이너에 연결된 플러그를 직접 뽑으려고 출입이 금지된 냉동 장치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무인 자동화 야드 크레인(ARMG)이 옮기던 컨테이너에 깔린 것이다.

트레일러 기사들은 출입이 금지된 냉동 장치장에 들어간 것 잘못이지만 본인들이 뽑지 않으면 트레일러 상차는 그야말로 '함흥차사'라고 읍소한다. 화물을 싣기 전에 냉동기사가 내려와 플러그를 뽑아줘야 하는데 사람이 내려오질 않으니 1시간은 물론이고 2시간씩 대기하는 상황을 만드는 터미널운영사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이 거대한 컨테이너에 깔려 목숨을 잃어버린 이후에 상황은 개선됐을까.

당시 사고가 발생했던 터미널의 냉동 장치장 앞에는 약 1m 높이의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라면 누구나 냉동 장치장을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비교적 낮은 높이였다.

부산항 유관기관장과 관계자들은 사고가 발생하고 며칠이 지난 뒤 트레일러 운전기사가 숨진 냉동 컨테이너 장치장을 직접 방문했다. 현장에는 운전기사들이 장치장 안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도록 새로 만든 2m짜리 펜스가 세워졌다.

지난 25일 오후 부산항 신항의 한 터미널 내부의 냉동 장치장. 1m 높이의 밧줄이 출입금지 문구와 함께 설치돼 있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안으로 넘어 갈 수 있는 형태다.(독자제공)© 뉴스1
지난 25일 오후 부산항 신항의 한 터미널 내부의 냉동 장치장. 1m 높이의 밧줄이 출입금지 문구와 함께 설치돼 있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안으로 넘어 갈 수 있는 형태다.(독자제공)© 뉴스1

하지만 이같은 조치는 사고가 발생한 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에만 그쳤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 훨씬 지났지만 부산항 신항의 또다른 터미널 안에는 '출입금지' 문구가 적힌 1m짜리 밧줄만 설치돼 있었다. 누구나, 언제든지 장치장 안으로 넘어갈 수 있는 높이다.

한편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10시5분쯤에는 신항 2부두의 한 선박 위에서 컨테이너 적재공간에서 전선을 정리하던 B씨(67)가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지난해 10월 15일 낮 12시36분쯤에도 신항 1부두 국제터미널 크레인 30m 높이 위에서 전기 설비 작업을 하던 C씨(61)가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3명 모두 외주 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하청에 또 재하청…"항만연관산업 규모·인력 아무도 몰라" 

34년동안 화물을 싣고 전국을 달린 트레일러 운전기사 송하석(가명·57)씨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당시 사고 소식을 듣고 같은 일을 하는 입장에서 너무 화가 났다"며 "일을 해오면서 그동안 하소연할 곳이 정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두 안에서 안전사고를 당하거나 연관된 직원은 거의 90%가 아웃소싱 인력이라고 보면 된다"며 "냉동 플러그를 뽑아줘야 무인 자동화 장비가 움직이는데 그걸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안뽑아 주니 기사들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송씨는 빡빡한 공컨테이너 반납 시간도 부산항에서 사고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꼽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전까지만 공컨테이너를 받아주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트레일러 기사들이 과속하거나 밤새 달리면서 졸음운전을 하고 때로는 소변마저 차 안에서 해결한다고 했다. 시간에 쫓기는 화물차들이 부산항 안에 한꺼번에 몰리면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상한 것은 해양수산부와 고용노동청, 부산항만공사 등 유관기관 모두가 부산항을 이용하는 전체 항만연관산업 규모와 인력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구조상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가 빈번한데 정부산하에 있는 항만 유관기관들이 외부 용역업체를 관리망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산업구조의 맨 바닥에 자리잡은 이들은 안전에서도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

현행 항만운송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선박 또는 컨테이너 수리업의 경우 자본금 5000만원과 창고나 공장 면적이 30㎡ 이상 기준만 충족하면 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다. 선용품 공급업도 자본금 5000만원, 자동차 1대만 있으면 가능하다. 항만용역업은 자본금 1억원과 20톤급 통선만 있으면 된다.

별다른 자본금이 크게 들지 않다보니 영세한 사업체가 난립하고 일용직 형태로 인력을 공급하는 경우도 많다. 항만 안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열악한 환경인데 안전교육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항만 관련업체들이 다시 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들까지 100%를 파악하긴 어렵다"고 했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도 "항만운송사업법에 등록된 업체만 파악하는데 외주 용역업체까지는 우리와 인과관계가 없어서 사업체나 인력 규모와 관련된 자료는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기적 안전교육도 뒷전…안전장비도 개인이 구매

부산항 안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부상과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외부 용역업체를 포함한 전체 항만연관 사업체 직원들이 정기적인 안전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작업에 동원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항만 노동자들의 안전 장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현재 부산항에서 일하는 항만 노동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안전화'와 '장갑'조차 개인이 구매해야하는 처지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연구본부 김우선 박사는 "작업자들이 줄을 타고 올라갈 때 안전고리를 달아야 하는데 한번 작업할 때마다 고리를 바꿔야 해서 업무 효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일을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 하는데 고리 하나 때문에 작업 시간이 2~3배 걸리니 현장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항만에서는 안전고리를 한 번 설치하면 줄이 늘어나고 낙하하면 자동으로 안전벨트처럼 잡아줄 수 있는 장치를 사용하지만 비교적 값이 비싸다"라며 "우리나라에서 보급하는 안전고리는 줄이 늘어나지 않아 작업을 한 번 할 때마다 고리를 끼웠다가 풀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김 박사는 "터미널 운영사에서 개선된 안전장비를 구비해 항만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운영사에서는 지금 안전화와 장갑도 안주는데 일용직으로 일하는 항만 노동자들이 그런 고가의 안전장비를 구입해 사용할리 만무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작업 절차를 표준화해서 위험요인을 하나씩 제거하고 하역장비의 안전을 강화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 박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안전에 대한 비용을 작업자 개인과 용역회사에 떠넘겨왔다"며 "정부와 터미널 운영사, 용역업체가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안전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결의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만 걸어놓는 행위는 이벤트 밖에 안된다"며 "우리도 이제는 안전과 관련해서도 선진국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규제할 부분은 규제하고 운영사로부터 안전에 대한 공동기금을 걷는다든지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내서 추진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hoah45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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