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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첨단장비는 허세?…래싱 노동자는 구멍난 리어카를 끈다

[항만아, 사람이 먼저다-상] 시설 노후화로 노동자 안전 위협
해수부, 항만시설장비 내구연한 설정·노후장비 점검 강화 개정안 검토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2021-01-31 08:00 송고
편집자주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6위, 세계 2위 환적항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부산항.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최첨단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한 스마트 물류시스템을 갖춘 선진 항만으로서의 면모를 내세운다. 하지만 한 켠에는 새까만 먼지로 뒤덮인 좁은 컨테이너에서 쪽잠을 자는 항만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수시로 목숨을 위협받는다. <뉴스1>은 열악한 환경 속 위험에 내몰린 항만 노동자들의 실태를 들여다보고 부산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2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부산항 북항에서 출항하는 컨테이너선 모습. (뉴스1 DB) 2019.12.05/뉴스1 © News1 
 부산항 북항에서 출항하는 컨테이너선 모습. (뉴스1 DB) 2019.12.05/뉴스1 © News1 

부산항이 선진 항만을 목표로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 기술을 결합한 항만물류시스템과 무인장비, 보안시스템 개발에 한창이지만 항만 노동자들의 안전은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산항 북항에서 컨테이너 고정장치를 풀고 다시 채우는 래싱 노동자 440여명은 지게차가 아닌 녹슬고 곳곳에 구멍이 뚫린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 새까만 먼지로 뒤덮인 좁은 컨테이너 휴게실 안에는 항만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20~30명씩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항만 노동자들은 노후화된 장비와 기계 오작동으로 컨테이너에 깔리거나 장비에 치여 목숨을 잃는 동료를 지켜보며 참담함마저 느낀다. 수 십번도 넘게 개선을 해달라 외쳤지만 관계기관들은 비용과 책임주체를 탓하면서 장비 개선을 미룬다. 

◇망가진 리어카 끌고 다니는 래싱 노동자…"야간작업 더 불안해"

부산항 북항에서 일하는 래싱 작업자 김진수씨(가명·37)는 허름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래싱콘을 바닥에 쌓아놓고 또 수거하는 일을 반복한다. 
리어카에는 개당 6~7kg의 래싱콘(lashing cone)이 가득 담긴다. 무거운 래싱콘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철제 리어카 바닥에는 구멍이 뚫렸다. 래싱 노동자들은 급한대로 그 위에 고무 매트를 깔아놓고 래싱콘을 담은 뒤 다시 힙겹게 리어카를 끌기 시작한다. 바퀴가 빠지거나 고장나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고쳐쓰는 실정이다.

래싱 노동자들이 실제로 작업에 사용하는 리어카.(부산항운노조 제공)© 뉴스1
래싱 노동자들이 실제로 작업에 사용하는 리어카.(부산항운노조 제공)© 뉴스1
래싱 노동자들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 밑바닥이 낡아 구멍이 뚫려있다. 노동자들은 검은 고무매트를 깔아 래싱콘을 옮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부산항운노조 제공)© 뉴스1
래싱 노동자들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 밑바닥이 낡아 구멍이 뚫려있다. 노동자들은 검은 고무매트를 깔아 래싱콘을 옮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부산항운노조 제공)© 뉴스1

김씨는 야간 작업을 할 때 가장 불안하다고 했다. 어두운 밤, 조명 불빛에 의존해 지나다니는 야드 트랙터나 대형 트레일러 운전기사들이 도보로 걸어다니는 래싱 노동자들을 보지 못하고 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에는 허치슨 부두 63번 선석의 한 크레인 밑에서 일하던 래싱 노동자 A씨가 갑자기 내려오는 스프레더와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 같은해 9월에는 허치슨 부두 62번 선석에서 야드 트랙터 운전기사가 리어카로 래싱콘을 싣고 지나가던 래싱 노동자 B씨를 미처 보지못하고 들이받았다. B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래싱 노동자들은 교대근무가 없다. 선박이 입항하고 다시 출항할때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24시간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수면부족에도 시달린다. 

2018년 9월 19일 허치슨부두 62번 선석에서 리어카로 래싱콘을 옮기던 래싱 노동자가 야드 트랙터에 치여 숨진 현장 모습.(부산항운노조 제공)© 뉴스1
2018년 9월 19일 허치슨부두 62번 선석에서 리어카로 래싱콘을 옮기던 래싱 노동자가 야드 트랙터에 치여 숨진 현장 모습.(부산항운노조 제공)© 뉴스1
지난 21일 오후 부산항 북항에서 일하는 한 래싱 노동자가 리어카에 담긴 화물고정 장치 '래싱콘(lashing cone)'을 바닥으로 옮기고 있다. (부산항운노조 제공)© 뉴스1
지난 21일 오후 부산항 북항에서 일하는 한 래싱 노동자가 리어카에 담긴 화물고정 장치 '래싱콘(lashing cone)'을 바닥으로 옮기고 있다. (부산항운노조 제공)© 뉴스1

김씨는 "야간에 작업하다가 무거운 래싱 장치가 갑자기 떨어진다거나 컨테이너가 오르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노후화된 장비로 인해 한번씩 낙상하는 경우가 많다"며 "굉장히 두렵다"고 했다.

또 "대형차들이 래싱콘을 박거나 제거하는 사람을 못보고 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다"며 "특히 야간에는 시야가 좁아지고 휴대폰을 보거나 졸면서 운전하는 대형 트레일러 기사들도 있기 때문에 주의하면서 다닌다"고 털어놓았다. 

부산항 신항에서는 래싱 노동자들이 지게차로 래싱콘이 담긴 박스를 옮겨 작업한다. 하지만 북항에서는 지게차를 구입할 비용을 부담할 주체가 정해지지 않아 노동자들이 아직도 리어카로 래싱콘을 옮기는 재래식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허치슨부두 운영사 관계자는 "부산항 신항을 제외하고는 전국의 모든 항만에서 래싱 노동자들이 리어카를 쓰고 있다"며 "지게차를 구입할 주체를 정하는 데 문제가 복잡하다"고 말했다.

◇왜 같은 사고가 반복되나?…"항만시설장비 정기검진 못믿겠다"

항만 노후화 장비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수 많은 항만 노동자들이 노후 장비로 인한 사고로 숨지거나 부상을 당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고 항만 노동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유가 무엇일까. 부산항운노조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동안 부산항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는 5명, 중상을 입은 인원은 119명, 경상자는 288명으로 집계된다. 항운노조 조합원 이외에 외부업체 인력까지 포함하면 사망 또는 부상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3년간 발생한 터미널 노후장비 안전사고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크레인 오작동과 컨테이너 추락으로 인한 인명사고가 가장 빈번했다.  

지난해 8월 20일 오후 9시쯤에는 부산항 신선대부두 2번 선석에서 하역 작업을 하기 위해 크레인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크기 8m, 200kg 무게의 레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같은해 7월 29일 오전 6시쯤에는 감만부두 4번 선석에서 크레인 장비 오작동으로 컨테이너가 추락했다.

당시 크레인 브레이크가 작동했지만 컨테이너 무게가 무거웠던데다가 가속도가 붙으면서 밑에서 대기중에던 야드 트랙터 쪽으로 떨어졌다. 야드 트랙터에 타고있던 운전기사는 갈비뼈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2018년 11월 20일 오후 1시40분쯤에는 허치슨부두 63번 선석에서 육상 작업을 하던 항만 노동자가 스프레더(집게) 장비 오작동으로 갑자기 떨어지는 컨테이너에 깔려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부두 운영사들은 크레인에 비상 브레이크를 포함한 추가 안전장치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항만 노동자들은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이미 낡아빠진 장비에 비상 브레이크를 더 설치한다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냐는 것이다.

부산항운노조 관계자는 "얼마 전에도 스프레더가 떨어졌는데 1970년대 장비였다"며 "장비가 법적으로 정해진 기한에 따라 2년마다 정기 검사를 받지만 '합격' 결과를 받은 장비에서 또 사고가 난다"고 했다.

이어 "사고가 난 장비가 언제 검사를 받았냐고 물어보면 불과 몇 개월 전에 받았다고 한다"며 "매번 검사를 받은 장비에서 사고가 나니 신뢰성도 없고 그런 장비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부산항 북항에 있는 컨테이너 크레인은 모두 51대다. 이 가운데 20년 이상된 장비는 25대로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북항에서 가장 오래된 장비는 7부두에 있는 42년된 안벽크레인이다.

2년마다 실시되는 항만시설장비 정기검진도 안전사고를 예방하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장비를 검사하는 업체조차도 정기검사만으로는 안전에 결함이 있다고 판단하거나 장비의 피로도를 측정하기 힘들다고 시인한다.

국내에서 항만시설장비를 검사하는 업체는 단 2곳이다. 검사업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기검사는 기본적인 항목을 육안으로 점검하는 것에 그친다"며 "장비에 대한 잔존수명과 노후화를 평가하려면 안전 정밀진단 검사를 받아야하는데 현행법상 강제성도 없고 비용도 크다"고 말했다.

또 "장비 노후도가 어느 정도 한계 수명에 다다랐을 때는 검사 단계를 높여야할 필요가 있다"며 "정기검사는 검사장비의 외관과 안전장치의 성능을 위주로 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균열이나 결함을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법개정 구상 하지만…해수부, 또 다른 규제 반발에 미온적 태도

현행법상 항만시설장비에는 내구연한이 없다.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30년, 40년 넘게 쓰더라도 항만 시설장비 교체나 폐기 처분에 대한 근거 규정이 없는 탓에 낡은 장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가동된다.

해양수산부는 항만시설장비의 내구연한에 대한 법적 고시나 규정이 없다는 문제를 이미 인지하고 있다. 또 내구연한을 도입하는 방안을 두고 오는 2월까지 '항만시설장비 및 항만 부장교 시설 관리운영개선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항만시설장비에 내구연한을 설정할 수 있을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내구연한을 정하면 고가의 장비교체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에 대해 운영사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기계마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횟수가 각기 다른데 내구연한에 따라 일괄적으로 폐기처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해양수산부와 부두 운영사를 포함한 유관기관 모두 15년 또는 20년 이상된 노후화 장비를 대상으로 안전정밀진단을 강제하도록 법안을 개정하는 것도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규제 강화에 대한 민원 발생이 우려되고 비용부담 문제가 제기되자 서로가 부담스러워 그대로 장기간 방치해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수부 관계자는 "제도적인 개선책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라며 "일정한 기간이 지났을 때 안전정밀점검을 실시하거나 현행 정기검사보다 강화된 검사를 받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내구연한을 정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장비의 연식에 따라 20년, 25년 단위로 강화된 점검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보다 나은지 여러가지 방안을 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choah45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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