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사회 > 복지ㆍ인권

자폐아도 바둑을 둔다…'아름바둑' 들어보셨나요

[특별한 동행]③발달장애인 위한 '아름바둑' 고안 김명완 8단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2021-01-11 07:00 송고 | 2021-01-11 10:43 최종수정
발달장애인이 바둑을 둘 수 있도록 '아름바둑'을 고안한 김명환 프로가 7일 오후 서울 강동구 홀트강동복지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발달장애우들과 '아름바둑' 수업을 하고 있다. 2021.1.7/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지난 7일 서울 강동구 홀트강동복지관에서 오랜만에 바둑 수업이 열렸다. 이 바둑 수업은 좀 특별하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자폐성장애인·지적장애인 등 발달장애인들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이 바둑을 둘 수 있을까, 의심을 품던 찰나. 자폐증이 있는 이석원씨(가명·30)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골똘히 바둑에 집중하더니 한 수를 놓는다.

물론 이들이 두는 바둑은 우리가 아는 바둑이 아니다. 이 수업에서 활용한 바둑은 프로바둑기사 김명완 8단(42)이 2018년 발달장애인을 위해 세계 최초로 고안한 '아름바둑'이다.

수업 후 '바둑을 배우니 어떠냐'고 묻자 수업에 참여한 지적장애인 김희영씨(가명·24)와 또 다른 지적장애인 박경민씨(가명·23)는 일제히 "재밌어요!"라고 외쳤다.

아름바둑은 바둑의 기본 원칙은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은 없애, 발달장애인들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날 김명완 8단을 만나 아름바둑을 가르치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는 자폐아동 부모 보며…내가 꼭 이 일 해야겠구나"

"바둑이 자폐에 딱 맞겠는데요."

김 8단은 미국에서 바둑을 보급하던 중 만난 미국인 제자의 이 말이 아름바둑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그 제자에게는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인 친구가 있었다.

2017년 한국에 돌아온 김 8단은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바둑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김 8단은 "그때까지만 해도 자폐를 잘 알지 못해서 '한번 해볼까' 이 정도였지 딱히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현장에서 만난 자폐아동 부모들이 그가 본격적으로 아름바둑 개발과 발달장애인 지도에 뛰어들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폐아동 부모들을 언급하는 김 8단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김 8단은 눈물을 훔쳤다.

김 8단은 "자폐증이 있는 한 학생에게 강박증세가 있었다. 코에서 코딱지를 빼내는데 피가 날 때까지 코를 파야 멈추더라. 아이가 피범벅이 됐다. 아이 부모에게 설명해 드리며 죄송하다고 하니 오히려 부모는 '늘 있는 일'이라며 덤덤했다"고 설명했다.

김 8단은 "제게도 4살짜리 딸이 있다. 저희 딸이 3개월쯤일 때였다. 저는 어디 긁히기만 해도 마음이 아픈데, 자폐아동 부모들은 그런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김 8단은 "그때부터 제대로 아름바둑 지도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종종 아이들 부모를 상담할 때 부모들이 설명하다 우시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내가 꼭 이 일을 해야겠구나'고 다짐한다"고 전했다.

발달장애인이 바둑을 둘 수 있도록 '아름바둑'을 고안한 김명환 프로가 7일 오후 서울 강동구 홀트강동복지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발달장애우들과 '아름바둑' 수업을 하고 있다. 2021.1.7/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발달장애 개선에 도움…"아름바둑 접하고 집중하기 시작"

김 8단이 만든 아름바둑은 일반바둑에는 없는 '숫자 알'과 '점수판'이 추가된 게 특징이다. 발달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대비되는 색상을 활용하고 바둑알과 바둑판을 자석으로 만든 점도 눈에 띈다.

김 8단은 "처음 아름바둑을 만들고 나서도 대여섯 번은 고쳤다"며 "바둑은 원래 추상적인 게임인데 발달장애인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추상적인 것은 다 없애버렸다"고 설명했다.

김 8단은 아름바둑이 발달장애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자신을 가둔다'는 한자 뜻 그대로 자폐(自閉)성 장애인들은 상대와 상호작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바둑을 두면서 상대가 바둑을 두는 것을 쳐다보기 시작하고 또 상대의 차례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는 "발달장애인끼리 대결하거나 협력을 하는 게임이 흔치 않다"면서 "아이들이 승부욕이 없는데 자기들끼리 경기하도록 하니 서로 이기고 싶어 하고 그러다 보니 협력도 하더라"고 전했다.

자폐성장애 2급 김수현군(가명·8)의 어머니 최소희씨(가명·40)도 아름바둑을 접하고 아이의 상태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아이가 바둑을 두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의 눈이 원래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데 아름바둑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집중하는 게 느껴진다"면서 "아이가 지금은 이긴다는 개념은 없는 상태지만 강화물을 주지 않아도 바둑을 두더라"며 신기해했다.

2018년 말 김 8단이 아름바둑으로 처음 발달장애인을 가르친 이후 발달장애인 약 100명이 아름바둑을 접했다. 나이는 8세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지금은 김 8단 외에도 프로기사 13명이 아름바둑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바둑 보급'…"어떤 일보다도 가치 있어"

김 8단이 제안한 아름바둑 사업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재정후원을 받고 있다. 김 8단과 한국기원은 아름바둑을 전국에, 언젠가는 해외에 보급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수업을 여는 것 자체에도 애를 먹고 있다.

코로나19로 지난 한 해 동안 바둑 수업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김 8단은 "발달장애인들은 평소에 하던 것은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며 "루틴이 깨지면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또 퇴행이 올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7살 때부터 바둑을 시작한 김 8단은 17세에 입단, '토너먼트 기사' 생활을 거쳐 30세부터 여느 프로기사들처럼 바둑 보급에 힘썼다. 하지만 이제 김 8단은 프로바둑기사로서 완전히 새로운 바둑 보급을 시도하고 있다. 

김 8단은 "처음에는 이 일이 가치 있는 일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은 상당히 만족하고 있고 그 어떤 일보다도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heming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