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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 人사이트] 치과의사→변호사→국회의원…"도전은 너무 매혹적"

'갈등 해결사'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내 자신감DNA 믿었다"
"권익위원장은 국민들의 마지막 호소, 신문고를 지키는 자리"

(서울=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 2020-11-29 06:00 송고 | 2020-11-29 17:21 최종수정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도전한다고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도전의 대가는 때로는 엄혹하다.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본인의 능력에 걸맞지 않은 터무니없는 도전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에까지 피해를 입히곤 한다. 하지만 불가능에 대한 도전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치 불빛에 날아드는 나방처럼 용감하게 도전한다. 그리고 처절하게 실패하고 돌아선다.

그런 도전을, 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취미처럼 한다. 고교 시절에는 반에서 중간 정도의 평범했던 학생이 마음먹고 공부해 6개월만에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그것도 과외공부나 학원 공부 없이 혼자 성취했다. 믿기 어렵다. 이번엔 치과의사를 하다가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고시 공부 불과 2년 반 만에 바늘구멍이라는 고시의 1,2차 시험을 단번에 통과했다. 서른두 살의 나이에 아이를 키우는 주부였다. 의사 출신이 법조인이 되긴 처음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도전이고, 성취이다. 역시 믿기 어렵다.
◇중학교 때 윗몸일으키기 1분에 2번이 고작…63번까지 하며 자신감 
변호사가 되자마자 공소시효가 지난 의료사고 사건을 맡아, 거대 제약회사와 대형 로펌을 상대로 10년을 투쟁해 마침내 손해 배상 합의를 이끌어 냈다. 억울한 이들을 대변해 무료 변론했다. 역시 일반적인 법조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치판에도 뛰어들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서울 강남에 24년만에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역시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현희(56)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인생에 있어서 도전은 너무나 매혹적”이라고 말한다. 무슨 비결이 있을 것이다. 인생에 많은 힘든 도전을 하면서, 대부분 성공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지난 25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만난 전 위원장은 정장을 입고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다. 또 무슨 도전을 꿈꾸고 있을까? 서둘러 성공의 비결을 물어 보았다.

“고교 2학년 때 반에서 중간 정도 하다가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6개월 만에 전교 1등이 됐다고 한다. 대부분 공부를 포기할 시기에, 특별히 공부 잘하는 비법을 갑자기 터득했나?”
-중학교 시절, 그리고 고교 2학년 중반까지 주눅이 든 채 학교를 다녔다.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특히 체육은 전교에서 꼴찌였다. 대부분 만점인 20점을 받는 체력측정 시험에 나는 기본점수 10점을 받았다. 윗몸 일으키기가 1분에 60번하면 만점이었는데, 나는 힘겹게 2번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항상 기죽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결심했다. 윗몸 일으키기 만점을 받겠다고…. 틈만 나면 윗몸 일으키기를 혼자 연습했다. 한 달 하니까 1분에 63번까지 하게 됐다.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이제는 오래 매달리기에 도전했다. 철봉에 턱까지 올리고 팔을 굽힌 채 20초를 버텨야 하는데, 나는 단 1초도 못 버텼다. 윗몸일으키기를 성공했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틈나는 대로 운동장의 철봉에 매달렸다. 얼마 되지 않아 20초가 가능해졌다. 이렇게 공부도 하면 될 것 같았다. 우선 수학에 도전했다. 포기하지 않고 문제가 풀릴 때까지 놓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내 안에 성공의 DNA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영어에도 도전했다. 고2 여름방학 때부터 공부에 몰두했는데, 고3 올라가 첫번째 모의고사에서 수학 만점을 받으며 전교 1등이 됐다. 선생님도 학우도 모두들 놀랐다. 하루아침에 전교 스타가 됐다. 도전과 할 수 있다는 내 안의 믿음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윗몸일으키기가 인생 도전의 시작인 셈이다.
“부산지역 여학생 수석으로, 서울대 치의예과에 입학했다. 졸업한 뒤 치과 의사가 됐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주부의 몸으로 사법시험에 도전, 2년반 만에 1,2차를 한번에 통과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왜 사시에 도전했나?”
-남편이 사시 준비 하는 것을 옆에서 보다가 도전 의지가 발동했다. 그때까지는 의료인이 법조인으로 변신하는 사례가 없었다. 주변에선 모두 불가능한 일이며, 시간 낭비라고 말렸다. 이과 출신이었고, 실제 법학 전공자들도 몇년씩 파고들어야 통과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그때 나의 머릿속에는 고등학교 시절 윗몸일으키기에 성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 올랐다. 그래서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만류하는 길에 도전했다.



◇거대 녹십자와 10년간 법정투쟁 승리, 소명의식 도전정신이 바탕

“도전의 연속이다. 새내기 변호사가, 녹십자라는 거대한 제약회사와 10년간 법정투쟁을 해서 이긴 신화를 창조했다. 에이즈에 걸린 혈우병 어린이들을 10년간 무료변론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연히 혈우병에 걸린 어린이들이 집단적으로 에이즈에 걸린 사연을 접했다. 이미 10년간 방치된 사건이었다. 의료 전문 지식과 법률 전문 지식을 모두 갖추어야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소명 의식과 함께 도전하고 싶었다. 가족을 우선 설득해야 했다. 가족들은 제약회사의 혈우병 치료제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에이즈 환자라는 것을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상대는 거대 제약회사였고, 재판에 대해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동원했다. 게다가 공소시효도 이미 오래전에 지나 승소가 불가능해 보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방대한 진료기록과 외국 판례 등을 연구해서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완전 패소했다. 혈우병 치료제와 에이즈 감염의 인과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어려웠다. 2심에서 패소하고 너무 실망해서 많이 울었다. 그때 한계를 느끼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을 때, 문득 정치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회의원이 돼야 했다.

“정치에 뛰어드는 것도 또 하나의 도전이었나?”
-처음 법조인이 됐을 때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이 많았다. 그때는 변호사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막상 정치판에 뛰어들려 할 때는 어느 정당도 손짓을 하지 않았다. 마침 18대 국회의원 선거철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민주당 비레대표 응시원서를 다운받아 작성해 여의도로 찾아갔다. 그런 과정을 거쳐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갔다. 정치권에 들어갈 때는 어떤 영입제의도 없었고, 도전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안된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했다. 윗몸일으키기 성공 DNA를 믿었다.

“정치판에 들어가서 또 하나의 신화를 썼다. 24년간 불모지였던 서울 강남에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그것 역시 본인의 의지였고, 도전이었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마칠 즈음 지역구 출마를 결심했다. 당시 민주당은 호남당으로 인식됐다. 서울 강남은 부(富)의 상징이었다. 경상도 출신 주민이 절반 이상이었다. 이왕 지역구로 출마하려면 강남에 출마하는 것이 의미가 있고,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지역주위와 계급주의를 깨고 싶었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라 해도 조금이라도 바위를 깨고, 무너뜨리는 마중물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대권도전자였던 정동영 의원이 같은 지역을 원해 당내 경선에서 패했다. 당에서는 아깝다며 다른 지역 출마를 권했다. 사전 여론조사를 해보니 당선이 유력하다고 설득하려 했다. 만약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것이 목표였다면 그 제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동기가 명분이 없어 거절했다. 정치판을 떠나 있는 동안 마침 혈우병 아동 에이즈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됐다. 만약 내가 그때 다른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면 그 재판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소송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 하늘의 뜻이고, 나에서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재판을 마무리하고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남에 출마, 마침내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내 안의 도전과 성공, 자신감 DNA가 발동됐다.

◇택시기사와 타다의 충돌 200번 쉬지않고 방문, 마음의 문을 열더라
“20대 국회의원 기간에 ‘사회 갈등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역시 무슨 비결이 있나?”
-소통이었다. 변호사는 끊임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마치 정신과 의사와 같다. 그렇게 변호사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의뢰인이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기도 한다. 나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장점이다. 혈우병 에이즈 사건도 사회에서 버려져 세상에 대한 분노와 화(火)를 가진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고 또 울었다. 택시기사와 타다회사가 충돌했을 때 ‘택시 카풀 태스크포스’ 위원장이 됐다. 당시 택시 기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연이어 택시기사들이 분신자살했고, 10만 택시기사들이 연일 시위를 벌였다. 내가 다가가면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고, 심지어 휘발유를 뿌리며 가라고 했다. 그런 험한 대접 처음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한 200번을 쉬지 않고 방문했다. 드디어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진심이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대 타협을 하지 않는다던 그들과 절충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어 냈다.

택시기사들과 타다 기사들과의 갈등을 합의로 이끌어내고 기자회견 하는 전현희 의원© 뉴스1
택시기사들과 타다 기사들과의 갈등을 합의로 이끌어내고 기자회견 하는 전현희 의원© 뉴스1

“지금은 국민의 억울한 일을 해결하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지 다섯달이 지났다. 자신의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치과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등 다양한 직업을 겪으며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사회적 큰 갈등도 해결하려 노력했다.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것이 신문고다. 이 자리는 국민들의 마지막 호소 장소인 신문고를 지키는 일이다. 나의 역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운명이라고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다.

◇41년간 소외된 삶을 살아온 경주 한센인촌 주거환경 개선 가장 보람
“그동안 한 일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정부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지난 41년간 소외된 삶을 살아 온 경주시 한센인촌 거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한 일이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은 경주 보문단지를 개발하며 한센병 퇴원자 486명을 경주 천북면의 희망농원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정부가 생계용으로 지어준 닭장은 석면이 날리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들어져 있고, 정화조, 하수도가 노후화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왔다. 수차례 민원이 제기됐지만 외면 당한 이들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올해 초 다시 민원을 제기했다. 그동안 경상북도, 경주시, 포항시 등 지자체와 환경부 등과 협의, 최근 해결 방안을 이끌어 냈다. 관련 예산을 확보해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경주 한센인 희망농장을 살피는 전현희 위원장© 뉴스1
경주 한센인 희망농장을 살피는 전현희 위원장© 뉴스1

“한 해 제기되는 민원은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나?”
-온라인 신문고에는 한해 무려 800만건의 민원이 접수된다. 엄청난 민원이다. 1차로 관련 부서로 배정하고, 관련 부서에서 해결이 안되는 민원을 직접 해결한다. 또 여러 부처에 걸쳐있는 복합 민원도 중간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최근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개정된 내용은?”
-공익신고자를 우선 보호해야 하는데, 보호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검토하는데만 5~6개월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왕따를 당하는 공익 신고자들이 많았다. 공익 신고를 하면 일단 보호부터 해주고 신고 내용을 검토할 수 있게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공익침해 행위를 규정한 법률도 기존 284개에서 182개 늘어나 467개가 됐다. 직장 내 성희롱, 보이스피싱, 신체 무단 촬영 등을 신고하면 신고자를 공익신고로 보고, 비밀보장, 신변 보호, 책임 감면 등 조처를 받을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무원의 부패를 감시하는 반부패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한국 공무원 청렴도는 어느 정도인가?”
-지난 2002년 생긴 부패방지위원회,행정심판위원회,청렴위원회가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됐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가 각국 공무원의 청렴도를 짐작하게 해준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 청렴도 순위가 52위에서 지난해 39위로 매년 순위가 올라갔다. 전체 180개국 가운데 상위이지만 한국의 국가적 위상을 감안할 때 아직 부족하다. 내 임기 중 20위로 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서울시장은 사명감이나 큰 동기가 있을 때 도전…지금은 권익위 전념
“12월 1일부터 제19차 국제반부패회의(IACC)가 한국에서 온라인 화상회의로 열린다. 이 대회의 의미는 무엇인가?”
-국민권익위원회가 국제투명성기구(TI)와 함께 진행한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독일 베를린에 본사를 둔, 반부패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다. 이번 회의는 국제기구와 각나라 정부, 기업, 학계, 시민사회 등 전 세계 140여개국 전문가 500여명이 최신 반부패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세계 최대의 반부패 연대의 장이다. 코로나 탓에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참가비를 없앴다. 7개의 전체 세션과 100여개의 워크숍 등 크고 작은 회의를 통해 ‘새로운 청렴전략’, ‘가짜뉴스’, ‘자금세탁’, ‘포스트 코로나 시대 반부패 과제’ 등 최근 국제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반부패 이슈와 해결책을 모색한다.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참여하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특별 대담도 있다. 청년 패널들이 화상전화로 샌델 교수와 직접 질의 응답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사회적 갈등에 선제적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의미인가?”
-사회적 갈등은 국가 정책과 관련있다. 최근 문제가 된 부동산 정책, 의사고시문제, 택배기사 처우 문제 등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국가의 제도, 정책이 갈등의 배경이다. 이런 제도와 정책은 대부분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결정됐다. 정책을 입안하는 고위 공무원과 실제 정책에 영향을 입는 일반 국민들과 소통이 충분하지 않아, 시행 과정에서 불만이 생기곤 했다. 입안자의 선한 의지와는 별도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생각함’에는 수많은 국민들의 불만이 들어온다. 정부가 국민들과 소통하는 가장 큰 온라인 장치다. 이를 빅데이터로 매주 분석한다. ‘국민신문고’의 내용도 함께한다. 이는 결코 여론조사가 아니라 당사자들에 대한 설문조사이다. 문제를 분석해 제도 개선에 나선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바텀-업 방식이다. 이렇게 미리 정부가 대처를 해야 큰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바로 선제적 소방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1.2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내년에 실시되는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된다. 이전처럼 새로운 일에 도전할 마음이 있나?”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명감이나 큰 동기가 있을 때 비로소 도전한다. 지금은 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이다.” 

전 위원장의 어머니(84)는 62살 때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 합격했다고 한다. 도전의 뜨거운 피는 유전인가 보다. 그의 운동화가 날렵해 보인다.  


kichen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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