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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J의 야구수첩] 롯데의 '나승엽 도박', 시작도 결말도 코로나19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2020-09-23 06:01 송고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 /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 /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고교 유망주가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았다. 롯데 자이언츠의 모험수, 또는 도박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된 아이러니. 그 결말도 코로나19가 정한다.

롯데는 지난 20일 열린 '2021 KBO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나승엽의 이름을 불렀다. 나승엽은 덕수고에 재학 중인 우투좌타 내야수로 이른바 '5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느 팀이나 군침을 흘릴 자원이다.
사건의 표면적인 출발은 나승엽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이다. 1차지명 우선권을 갖고 있던 롯데는 나승엽의 메이저리그행 의지를 파악하고 1차지명에서 장안고 포수 손성빈을 지명했다. 여기까지는 고교 유망주의 용감한 도전에 박수를 보낼 내용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구단별로 돌아가며 선수를 지명하는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롯데가 나승엽의 이름을 부른 것. 나승엽이 예고대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경우 롯데는 상위 지명권을 그대로 날리게 된다. 그런데도 롯데가 나승엽을 지명한 이유는 뭘까. 그 안에는 복잡하고도 아이러니한 사정이 숨어 있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복수의 구단이 중상위 라운드에서 나승엽을 지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가까운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그러자 롯데는 나승엽을 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을 폈다. 10개 구단이 공평하게 지명권을 낭비하지 말자는 취지였다.
롯데(성민규 단장)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승엽을 지명 대상자에서 제외하기 위해서는 KBO 규약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이유로 반대하는 구단도 있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롯데는 거꾸로 2라운드에서 나승엽을 선택하는 역공을 펼쳤다.

지명 대상자에서 제외하자고 했던 선수를 지명해버린 롯데의 아이러니한 선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못 먹는 감을 찔러나 보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허를 찌르는 롯데의 선택에 타 구단의 나승엽 지명은 원천봉쇄됐다.

그러나 롯데 입장에서 나승엽 영입이 실패할 경우 소중한 지명권 한 장을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 단지 나승엽의 다른 구단 지명을 막기 위해 그런 커다란 위험을 감수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성민규 단장은 "하이 리스크(고위험) 하이 리턴(고수익) 전략"이라고 말했다. 롯데의 선택은 '리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코로나19다. 지난해까지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지고 말았다. 원래 메이저리그의 국제 아마추어 계약은 7월 초에 진행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이듬해 1월로 밀렸다. 그렇게 나승엽이 메이저리그 구단과 구두 계약만 마친 어중간한 상태로 KBO 신인 드래프트가 개최됐다.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는 나승엽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는 있다. 만약 내년 1월까지도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마이너리그 개막이 어려워진다. 이 경우 나승엽과 구두 계약을 해 놓은 구단이 정식 계약을 미루거나 취소할 수 있다. 나승엽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다.

롯데의 기대도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나승엽의 꿈을 응원하되, 그 꿈을 이루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 손을 내밀겠다는 것. 나승엽 측 역시 롯데의 지명을 '보험'으로 둘 수 있어 현재 상황이 나쁘지 않다.

나승엽과 구두 계약을 마친 구단은 미네소타 트윈스다. 미네소타가 제시한 계약금은 80만달러(약 9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2018년 KT 위즈와 계약한 강백호의 계약금이 4억5000만원이었다는 점에서 '오버 페이' 논란도 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9억 이상을 투자할 생각이 없는 롯데가 '재력'으로 미네소타를 이길 수는 없다. 나승엽이 KBO리그에 남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코로나19로 인한 미국 야구의 비정상화, 단 하나뿐이다.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이유로 롯데와 계약할 경우 나승엽의 도전정신에도 오점이 남는다.


doctor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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