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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00℃] 유럽 축구 챙겨보는 북한…"우리도 메시·호날두 안다"

(서울=뉴스1) 김정근 기자 | 2020-08-22 10:00 송고 | 2020-10-15 09:27 최종수정
편집자주 [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속 리오넬 메시 선수의 모습.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속 리오넬 메시 선수의 모습.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메시는 11m 벌차기(페널티킥)도 실수가 좀 많단 말입니다."

2018년 KBS의 '걸어서 세계속으로' 평양편에서 평양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를 계기로 북한을 방문한 이들의 '평양 탐방기'가 공개됐다. 해당 방송에선 남측 인원과 북측 수행원이 나눈 축구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유럽 축구를 보느냐는 질문에 북측 수행원 입에서 아르헨티나의 국가대표 선수이자 유럽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의 이름이 나왔다. 전 세계 사람 누구에게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유명 축구 선수인 메시였지만 북한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외부와 단절된 줄로만 알았던 북한에서 해외 축구를 안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는 그가 단순히 축구 팬이 아닌 유럽 축구 리그를 챙겨보는 '진성 팬'임을 직감하게 했다.

북한에는 어떤 선수가 많이 알려져 있냐는 질문에 수행원은 "네이마르, 수아레즈, 음바페, 그리즈만, 베일과 호날두가 유명하다"라며 유럽에서 뛰는 축구 유명 선수의 이름을 줄줄이 댔다.

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스페인을 떠나 이탈리아로 적을 옮긴 것을 두고 "베일이 (그동안 호날두에) 눌렸다"라며 "그래서 네이마르도 (메시를 피해) 떠나지 않았나"라고 나름 깊이 있는 축구 지식을 뽐내기도 했다.
어떤 선수가 유명한 지는 사실 경기의 주요 장면만 챙겨봐도 대략은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먼 유럽 축구 리그의 주요 선수들의 이적 동향과 그 배경까지 알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북한에서도 TV와 신문, 잡지를 통해 유럽 축구를 접할 수 있다는 수행원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진 순간이었다.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속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의 모습.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속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의 모습.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강팀 위주로 경기 챙겨보는 북한…유럽 5대 리그부터 챔피언스리그까지

최근 북한 조선중앙TV의 편성표를 살펴보면 거의 매일 오후 4시쯤 해외 축구 경기가 녹화 방영되고 있다. 과거 편성표에도 해외 축구 중계가 이따금 눈에 띄긴 하지만 일주일에 5~6회, 주기적인 시간에 중계 일정이 잡힌 것은 지난해 말부터로 파악된다.

TV에는 2019-2020 시즌의 영국·독일·이탈리아·프랑스 리그와 함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번갈아 가며 중계된다. TV는 한 경기를 60분 내외로 편집하거나 경기마다 4분가량의 주요 장면을 따로 모아 내보낸다. UEFA 챔피언스리그의 경우 '인상 깊은 득점 장면들'이라는 제목의 특집 방송이 구성되기도 한다.

보도일(22일) 기준으로 이번 시즌 가장 많이 방영된 축구 리그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로 총 68회 방송됐다. 이탈리아 세리에A(28회)와 독일 분데스리가(21회), 프랑스 리그1(4회)이 그 뒤를 이었다.

각 리그의 방영 횟수가 차이 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선호도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또 각 리그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과 인기가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다.

같은 리그에 속해 있다고 해도 모든 팀의 경기가 중계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강호이자 명문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경기가 주로 방영된다. 최근 강호로 떠오른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도 자주 눈에 띈다.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2019-2020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간의 경기. 화면 왼쪽 아래의 '비데오보조주심체계'는 비디오 보조 심판(VAR)을 뜻하는 말이다.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2019-2020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간의 경기. 화면 왼쪽 아래의 '비데오보조주심체계'는 비디오 보조 심판(VAR)을 뜻하는 말이다.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이탈리아 세리에A에는 전통 강호인 유벤투스와 AC밀란, 인터밀란 등의 경기가 주로 이어진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팀의 경기가 많이 중계됐다.

유럽 축구 강호들이 한자리에 모인 UEFA 챔피언스리그의 경우 16강전에 올라간 모든 팀의 경기를 방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유럽 축구 내에서 강호로 손꼽히는 스페인 축구 리그가 편성에서 빠져있다는 점이다. 앞서 북측 수행원이 언급한 축구 선수들이 대부분 스페인 리그 소속이라는 점에서 북한에 해당 리그를 접하는 창구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 창구로는 지난 2015년 북한이 조국해방(8월 15일) 70주년을 맞아 신설한 '체육 텔레비전 방송'이 유력하다. 또 북한에는 '체육신문'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스포츠 스타의 이적이나 사생활 문제 등을 다루는 스포츠 전문 매체도 발행되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북한이 독일과 중국 등 외국 축구협회로부터 해당 콘텐츠를 지원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북한이 130억 원에 달하는 중계권을 사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지난해 8월 7일 체육신문사에서 체육출판물과 체육정보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체육정보열람체계 '체육열풍'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메아리' 갈무리)© 뉴스1
북한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지난해 8월 7일 체육신문사에서 체육출판물과 체육정보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체육정보열람체계 '체육열풍'을 개발했다고 보도했다. ('메아리' 갈무리)© 뉴스1

◇북한 주민들은 손흥민을 알까…TV에선 보여주지 않는 'SON'의 경기

북한 주민의 해외 축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미루어 볼 때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손흥민 선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조선중앙TV에서는 손흥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가장 많이 방영하는 북한이지만 손흥민이 몸담은 토트넘 훗스퍼(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한 번도 전 경기 중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각 라운드의 주요 장면을 모은 '인상 깊은 경기 장면들'이라는 특집 방송을 통해서는 토트넘의 경기가 이따금 등장한다. 하지만 모두 손흥민이 결장한 경기였다.

특히 손흥민이 득점에 성공한 아홉 번의 경기가 치러진 라운드에는 특집 방송이 없거나 토트넘 경기를 제외하고 편성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올라간 토트넘이 독일의 라이프치히를 상대한 경기는 1·2차전 모두 중계됐지만 손흥민은 당시 부상으로 결장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손흥민의 등장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북한 해설자로서도 손흥민의 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조심스러울 듯하다.

그런데 과거 북한 TV에 손흥민의 활약상이 공개된 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2012년 10월 중앙TV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SV에서 뛰던 손흥민의 활약상을 전한 바 있다.

중앙TV는 함부르크SV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간의 독일 리그 경기를 중계하며 "측면 돌파에 의한 연결차기(패스)로 함부르크 팀에서 먼저 한 골을 넣었다"라고 손흥민의 득점 소식을 보도했다. 다만 당시에도 중앙TV는 남한 출신임을 고려한 듯 손흥민의 이름을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손흥민이 지난해 10월 평양을 방문해 시합을 치렀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15일 남북은 월드컵 예선을 위해 평양에서 맞붙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의 무관중 경기 및 비공개 결정으로 손흥민의 이름과 모습은 북한 주민들이 보는 매체에 등장하지 못했다. 

북한 조선중앙TV에 소개한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결과.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 훗스퍼는 '토텐햄 호츠퍼'라고 표기돼 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북한 조선중앙TV에 소개한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결과.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 훗스퍼는 '토텐햄 호츠퍼'라고 표기돼 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자본주의 문물' 가득한 유럽 축구 방송…북한에서 봐도 문제없을까

축구 경기에는 축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관중이 있고 광고가 있다. 특히 골대 뒤 전광판에 크게 표시되는 스포츠 브랜드·맥주·자동차 광고 등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일부 편집이 있겠지만 이러한 자본주의 요소들은 유럽 축구를 통해 필연적으로 북한 TV 화면에 드러난다. '신세대'의 기강 해이를 무엇보다 경계하는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흔적을 보여 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북한의 "악랄한 책동 속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으며 주변 세계를 다 목격하고 들을 것도 다 들은 인민"이라는 발언 등에서 보인 사상적 단속에 대한 자신감이 유럽 축구를 내부에 공개할 수 있게 한 배경이 아닐까 싶다. 또 해외 스포츠 애호가로 스포츠 산업 성장을 장려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취향도 일부분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외신도 북한의 해외 축구 시청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영국 매체 '더 선'은 지난달 15일(한국시간) 북한 주민들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시청을 두고 "북한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문이 생겼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2019-2020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 전광판으로 유명 자동차 회사의 광고가 눈에 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북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2019-2020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 전광판으로 유명 자동차 회사의 광고가 눈에 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뉴스1

◇유럽 무대 진출한 북한 선수들…'대북제재'로 설 자리 잃나

북한 내부의 유럽 축구 열풍에 힘입어 한때 북한 축구 선수들도 대거 유럽 무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엔(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후 북한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제재 위반 사항이 됨에 따라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지난 2017년 12월 세계 각지로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이 북한의 무기 개발에 사용된다고 보고 유엔 회원국들에 "현재 고용 중인 북한 근로자들을 2019년 12월 22일까지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라"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에 지난 4일 오스트리아 SKN 장크트 푈텐에서 활약하던 박광룡 선수(29)가 팀으로부터 '계약연장 불가' 통보를 받고 방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박광룡이 오스트리아 당국으로부터 노동 허가를 받지 못한 이유로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꼽았다.

또 '북한의 호날두'로 불렸던 한광성 선수(23)는 지난해 9월 이탈리아의 명문 팀 유벤투스에 입단했으나 지난 1월 카타르의 알두하일 SC로 이적했다. 이적 배경은 상세히 전해지지 않았지만, 유엔 결의안에 유벤투스 구단 수뇌부가 부담을 느꼈을 거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직 북한 축구 선수를 보유한 모든 국가에서 유엔 결의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해당 제재는 앞으로 한동안 북한 선수들이 유럽 무대로 진출하는 데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된다.

박지성과 손흥민 등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을 통해 유럽 축구의 매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던 우리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 같은 북한의 현 상황은 북한의 축구 산업 발전에 있어서는 아쉬운 대목일 수밖에 없다.


carro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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