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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선택 예고' 내연녀에 살충제 사준 40대…2심도 자살방조 무죄 왜

피해자 사인 '불명'…살충제 음용 여부 판단할 증거 없어
법원 "스스로 목숨 끊을 것이라 예견했다고 단정 어려워"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2020-07-31 14:46 송고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극단적 선택을 예고하며 살충제를 사달라는 내연녀의 부탁을 들어준 40대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윤강열 장철익 김용하)는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신모씨(40)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31일 밝혔다.
유부남인 신씨는 미혼인 피해자 A씨(여)와 2011년 수도권의 한 직장에서 만나 이듬해 연인관계가 됐다. 그러던 중 신씨의 부인에게 관계가 발각되자 A씨는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A씨는 재취업에 계속 실패하자 경제적·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신씨의 아내로부터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힘들어하던 중 신씨가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자 극도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2016년 여름 A씨는 신씨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사용할 살충제와 번개탄을 사달라고 요구했고 신씨는 이에 응했다. 신씨가 A씨에게 살충제 등을 건넨 당일 A씨는 한 건물의 여자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발견됐다. 며칠 뒤 A씨는 대사성 산증 등으로 인해 사망했다.
신씨는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같이 죽자'고 말하고, 살충제와 번개탄을 건네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심리적으로 동조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제공한 혐의(자살방조)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심은 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의 사망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신씨가 살충제를 건넨 행위와 A씨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적어도 살충제 등 범행도구를 구해주는 신씨의 정신적 방조행위로 인해 A씨의 자살동기가 강화돼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 증명된다"며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우선 사건 당일 A씨가 신씨가 사다준 살충제를 마셨는지를 인정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고 봤다.

사건 당일 A씨는 신씨에게 살충제를 절반 정도 마셨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와 살충제를 입에 머금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신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다만 A씨가 쓰러져 발견된 장소나 주변에서 A씨의 소지품과 피우지 않은 번개탄은 발견됐지만, 살충제가 담긴 병이나 그 흔적은 발견이 되지 않았다.

또 A씨가 사망하기 전 이뤄진 소변검사에서 약물성분은 검출되지 않았고, A씨 사망 이후 혈액을 채취해 일반독물 분석이 진행됐지만 살충제의 주요 성분인 '마트린'이 검출되지 않았다.

A씨의 직접 사인은 '불명'으로 판단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는 "피해자는 불명의 이유로 대사성 산증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직접적인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으므로 사인은 불명"이라는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A씨에 대한 치료가 이뤄지기 전에 소변이나 혈액을 채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여지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A씨가 어떻게 사망하게 됐는지 밝혀진 바 없다"고 설명했다.

설령 A씨가 살충제 일부를 마셨다고 가정하더라도 살충제 음용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재판부는 "쥐에 대한 급성경구독성시험 결과를 체중 값만 달리해 사람에게 적용하면 A씨와 같이 체중이 약 55㎏인 사람이 살충제의 약 275㎖를 마시더라도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전문가들이 "피해자가 당뇨로 인한 대사성 산증의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가 과다 알코올 섭취, 영양부족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 "농약중독보다는 다른 원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점도 판단에 고려됐다.

검찰은 항소심에 이르러 예비적 공소사실로 '자살방조미수' 혐의를 추가했지만, 재판부는 "신씨는 A씨가 실제로 자살하거나 살충제를 음용하는 행위로 나아갈 것을 예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판결에 재차 불복한 검찰이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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