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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고향 내려온 '역사스페셜' PD, 향토사 다시 쓴다

전남 함평 주포한옥마을서 인생2막 남성우 전 KBS PD
방송제작 경험 살려 지역 유물‧유적 직접 조사‧홍보 나서

(함평=뉴스1) 박영래 기자 | 2020-07-25 10:00 송고 | 2020-07-26 22:21 최종수정
편집자주 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에서 어촌에서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남성우 전 KBS PD와 부인 배성복씨가 툇마루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News1

다행이다. 1년 중 가장 덥다는 절기상 대서(22일)에 장맛비마저 오락가락하면서 후줄근한 날씨를 걱정했는데 인터뷰하기에 적당할 정도로 날씨는 선선했다.

광주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전남 함평군 함평읍에 조성된 주포한옥마을. 바닷가를 따라 50여채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아름다운 전원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을 포함해 다양한 역사 관련 TV프로그램을 전문으로 제작했던 남성우 전 KBS PD(72)와 부인 배성복씨(68)가 반갑게 기자를 맞아준다.

노부부의 얼굴에서는 삶의 여유로움이 물씬 풍겨온다.

40여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이들 부부는 2015년 1월 남편의 고향인 함평으로 내려와 인생 2막을 열었다. 벌써 6년이 다되어 간다.

노년의 여유를 찾아 고향에 내려왔는데 말 그대로 '웬열?'이다. 고향은 그에게 가만히 쉴 여유를 내주지 않았다.
  
남성우 전 KBS PD. /© News1

"엄밀히 말하면 우리 부부는 농사를 지으려는 귀농도, 어촌생활을 위한 귀어도 아닌 귀향이자 귀촌이다. 노년을 보다 조용히 쉬면서 지내려고 이곳에 내려왔는데 할 일이 너무 많더라."

당장 거물급 방송 프로듀서 출신의 귀환을 가장 먼저 반긴 곳은 함평군이었다.

남씨 부부가 귀촌의 여유를 잠시도 즐길 틈 없이 함평군은 그에게 지역축제위원장이라는 자리를 맡겼다.

축제위원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함평나비대축제와 가을에 개최하는 국화축제를 총지휘하는 자리다.

남씨는 축제위원장 자리를 3년 동안 맡았고,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근의 광주시 역시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광주시는 세계김치축제위원장 자리를 2년 동안 그에게 맡기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두자리 '감투'를 모두 내려놓고 다시금 여유를 찾아보려던 그에게 두번째 과제가 던져졌다.

인생2막을 다시금 열정적으로 살게 만든 건 바로 고향인 함평 역사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남성우 전 KBS PD와 부인 배성복씨가 툇마루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News1

"곳곳을 둘러보니 함평에는 옛날 무덤인 고분이 엄청 많고, 다양한 종류의 고분이 산재해 있다는 게 보이더라. 말 그대로 함평은 '고분의 야외박물관'이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했는데 매번 깜짝깜짝 놀랐다."

함평과 관련된 다양한 역사기록들을 살펴본 그는 "특히 무덤의 규모도 커 마한의 어떤 세력 하나가 백제가 세워지기 전까지 함평에서 융성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직접 연구하고 널리 알리고픈 생각이 들었다.

역시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했던가. 오랜 방송 경험과 역사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해 왔던 그는 지역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고 이를 주민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방송국에서 영상물 제작하는 능력과 역사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한 것이 내 자산이라면 자산이다. 지역의 정사와 함께 야사나 감춰진 역사이야기들을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료 구축이 시급하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이야기 나눌 공간이 없다는 점도 느꼈다."

그는 그동안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우선 현재 살고 있는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세 번 정도 강연할 기회를 가졌는데 의외로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 소문을 듣고 함평군농업기술센터에서는 귀농귀촌 교육생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해 직접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남성우 전 KBS PD의 전남 함평 주포한옥마을 자택. /© News1

"이전에 알지 못했던 당당한 역사를 가진 곳이라고 내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이걸 사람들한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마음먹은 그의 귀촌생활은 더욱 바빠졌고, 자료를 모아 강의를 준비하는 동시에 '함평역사이야기'를 제목으로 책자 발간도 준비하고 있다.

'역사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은 인생2막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1974년 TBC에서 PD로 첫발을 내딛은 그는 1980년 계엄 하에서 언론검열 거부운동에 참여했다가 해직됐다. 1984년 계약직 신분으로 KBS에 복귀한 뒤 1989년에야 KBS 일반직 PD로 완벽하게 복직했다.

그해 KBS의 첫 광주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인 '광주는 말한다'를 제작했으며, 이후 'TV조선왕조실록', '역사스페셜', '역사추리', '역사의 라이벌' 등 주로 역사를 소재로 한 교양 프로그램 제작에 힘써 왔다.

"'광주는 말한다' 프로그램을 계기로 상당히 유명세를 탔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직에 이은 상당히 '의식 있는' 프로듀서로 성격이 규정됐다. 이후 현대사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게 됐다."

TV본부 기획제작국장, 심의평가실장, KBS 편성본부장 등을 거쳐 2008년 퇴사 뒤에는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남성우 전 KBS PD가 자신이 제작했던 역사프로그램 관련해 보수단체가 내걸었던 항의 벽보를 들어보이고 있다. /© News1

고향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통해 이제 인생2막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농촌은 블루오션"이라고 정의했다.

"비록 아이들 교육이 가장 큰 숙제지만 교육 인프라를 갖추는 데 지자체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아등바등하는 도시의 삶 보다는 농어촌에서는 몇 배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아버지의 그같은 신념은 곧바로 아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남씨의 장남 역시 서울 삶을 조만간 정리하고 함평으로 내려와 축산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주포한옥마을 조성 때부터 마을조성위원장, 자치위원장 등을 맡아 마을사람들과 함께 정원이나 텃밭을 만들면서 공동체를 이끌어 온 그에게 또 한가지 작은 목표는 농어촌지역의 문화적 격차 해소다.

"이전에 영화 '기생충'이 온갖 상을 휩쓸었을 때 시골사람들에게도 이에 대해 뭔가 설명해줄 사람과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농어촌지역 문화격차 해소에 힘닿는 데까지 최대한 노력해볼 생각이다."


yr200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