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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박원순과 백선엽, 이제 '냉정한 평가' 시작해야

(서울=뉴스1) 심언기 기자 | 2020-07-14 11:04 송고 | 2020-07-14 11:31 최종수정
고 박원순 서울시장 발인이 엄수된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박 시장 생가에 영정사진이 들어오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 발인이 엄수된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박 시장 생가에 영정사진이 들어오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시민사회 운동의 '대부'(代父)이자 3선 서울시장, 차기 유력 대선 후보.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산파이자 남북전쟁의 '살아있는 전설'
박원순 서울시장과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을 일컫는 수식어다. 한 명은 시민사회 활동과 서울시 행정으로, 한 명은 국방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한 이들의 헌신적 행위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여기 '성추행'과 '친일 행적'이란 수식어가 하나씩 보태지면서 대중은 혼란에 빠진다. '옥에 티'라 치부할 수 없는, 성추행과 친일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는 그만큼 무겁다. 공과(功過)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백 장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 그는 일제시대 만주군 장교로 임관해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역사적 기록은 사료로도 남아있다. 때문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9년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했다.
백 장군의 친일 행적은 비교적 뚜렷하지만, 해방 이후 분단 과정에서 북한의 남침때 그가 이룬 공적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작전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둬 한국군 최초로 30대에 대장에 올랐다. 동맹인 미국군 전사(戰史)에 기록된 전설적 인물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승만 권위주의 정권과 군부 독재를 거치며 그의 친일 행적은 단죄받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교통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일평생 영예를 누렸다. 부끄러운 과거임이 분명하다. 과실 보다 공적이 더 부각된 백 장군은 논란 속에서도 결국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우리나라 시민사회 운동과 서울시정을 이끌며 큰 족적을 남긴 박 시장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우호적이다. 하지만 생의 끝자락에 큰 오점을 남겼다.

성추행 주장과 고소 시점, 피소를 인지한 후 산으로 향한 박 시장의 행적 등을 종합하면 피해고소인의 호소는 상당히 신빙성이 높아보인다. 고소인이 변호인을 통해 밝힌 성추행 방법과 장소에 관한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며 증거도 경찰에 제출했다. 모든 정황이 성추행 의혹이 실제일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박 시장 지지자들은 그의 죽음으로 큰 상실감에 빠졌다. 문제는 아쉬움과 원망의 감정이 엉뚱한 음모론과 현실부정으로 이어지는 점이다. 굳게 닫힌 박 시장의 입과 그의 인품에 대한 맹목적 믿음만 가득하고 성추행 관련 정황은 애써 외면한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서슴지 않는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0.7.1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백선엽 장군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2020.7.1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일반 대중의 성숙한 여론형성이 아쉽지만, 결정적으로 두 인물의 냉정한 평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정치권이다. 내 편은 감싸고 이념지향이 다른 인물은 깎아내리는 데 주력한다. 얕은 정치 셈법 속에 국민분열은 가속된다.

여권은 박 시장의 공을 부각하며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성대하게 예우했다. 반면 성추행 의혹 관련 언급은 극도로 꺼렸다. 여당 대표는 성추행 의혹 관련 질문에 무례하다며 욕설을 내뱉는다. 의혹 제기에 대해선 '사자 명예훼손'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유족의 아픔을 얘기하며 피해자를 향해 장례기간 중에는 입을 닫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보수층을 겨냥한 야당은 백 장군의 친일 행적에 대한 언급은 쏙 빼고 홀대론을 제기하며 정쟁의 불쏘시개로 활용했다. 홀대론의 근거는 안장지가 서울이 아닌 대전이라는 이유다. 현충원에도 '급'이 있다는 황당한 논리다.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이 통탄할 일이다.

정작 본인들은 원하지 않았을 분란을 남긴채 박 시장과 백 장군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사망에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고 이제는 냉정한 이성으로 그들을 엄정히 평가할 때다.

박 시장 성추행 의혹은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고 피소 사실이 경찰과 청와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누설된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공소권없음' 처리로 덮는 것은 논란만 더 부추길뿐 바람직하지 않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피해호소인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백 장군 친일 행적 역시 추가 사료조사 등을 통해 그에 걸맞은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남북전쟁의 공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들을 탄압한 과거는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파묘'(破墓) 법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관련 절차에 따른 엄정한 처리가 반드시 이뤄지길 바란다.


eonk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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