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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농부, 법학도를 꿈꾸다…"공부하는 인생 즐거워"

광주지역 최고령 고졸 검정고시 합격자 김용남씨
매일 왕복 2시간 차 타고 학원에…"사회불평등 개선하고파"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2020-06-28 08:00 송고 | 2020-06-28 10:06 최종수정
26일 오후 광주 동구 한 자취방에서 광주지역 최고령 검정고시 합격자 김용남씨(83)가 책을 들고 웃고 있다.2020.6.27/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이 나이에 책에 있는 글자가 보이는 것도 감사한데 매일 앉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인생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최종학력 초졸. 83년 농부 외길인생. 광주지역 최고령 검정고시 합격자. 법학도를 꿈꾸는 만학도. 올해 83세에 접어든 김용남씨를 부르는 수식어들이다.

지난 26일 오후 광주 동구의 자취방에서 만난 김씨는 <뉴스1>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주며 연신 따뜻한 미소로 자신의 인생역정을 풀어줬다. 그는 이번 시험을 앞두고 4개월 전부터 이 자취방을 얻어 생활해 왔다.

전북 고창 출신인 김씨는 가장이 된 15살 때부터 농사를 시작했다. 고추농사를 시작으로 한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그가 숱한 도전 끝에 중등, 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광주지역 최고령 검정고시 합격자라는 수식어까지 얻게 됐다.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뜻을 펴지 못하고 평생의 한으로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용남이 서당에 보내자'고 했는데 어머니께서는 '굶어죽게 생겼는데 무슨 공부냐'며 반대를 하셨다. 몇 번이고 그렇게 두 분이 실랑이를 하시다 어린 마음에 나 때문에 두 분이 싸우실까 싶어 '나 서당 안 갈라요' 했다. 그리고는 인근 야산에 올라서 미친 듯이 악을 썼다. 어렸지만 그때도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거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용남씨는 공부하고픈 열정을 신문에서 찾았다. 83세가 된 지금까지 매일매일 신문을 읽었다. 군대에 갔을 때도 하루도 신문을 빼지 않고 읽을 정도였다. 김씨는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떼고, 신문으로 한문을 익히고, 중학교에 다니는 옆집 친구에게 영어를 배웠다.

하지만 농사일과 자식들 먹여 살리기 바빠 제대로 된 공부는 해보지 못하고 어느덧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게 됐다.

그런 그가 초등학교 졸업 이후 다시 펜을 잡게 됐다. 지난 2016년 12월28일 우연히 뉴스에서 본 치매 할아버지 사연 때문이었다.

"TV에서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다 교장으로 정년을 맞이한 분인데 갑자기 치매에 걸려 아들딸 이름도 기억을 못 하시는 분 사연을 봤다. 공부를 한 사람도 치매가 오는데 평생 농사만 지은 나한테도 저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그날 이후 김씨에게 공부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올랐다. 치매가 오기 전에 평생 한이었던 공부를 원없이 해보고 싶었다. 그날로 용남씨는 전북 고창에서 광주까지 매일 왕복 2시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첫차에 올라 광주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으로 향했다. 고령에 원정을 다니며 공부를 하려니 차 안에서는 너무 졸려 잠을 자기 바빴다. 그러다 버스 종점에서 잠을 깨 헐레벌떡 학원으로 향한 적도 많았다.

"제가 늙은 사람치고는 체력이 좋은데 늘그막에 공부를 하려니 힘이 들었죠. 버스에서는 너무 졸려서 매번 졸았고 종점에서 깨면 '아이고야' 싶어서 다시 버스를 잡아타고 학원으로 갔습니다. 오전, 오후 수업 듣고는 다시 고창으로 가면 잠 좀 잤다 일어나서 그날 공부를 복습했습니다."
26일 오후 광주 동구 한 자취방에서 광주지역 최고령 검정고시 합격자 김용남씨(83)가 자신의 필기공책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모든 과목을 공책에 필기하면서 공부를 한다고 자신의 비법을 소개했다.2020.6.27/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용남씨는 2017년 8월에 두 번의 도전 끝에 중등고시에 합격했고 지난달 23일 네 번의 낙방 끝, 다섯 번째 도전만에 고등고시에 합격하게 됐다. 지난해 답안지를 밀려쓰면서 6점 차이로 아깝게 시험에 낙방하기도 했지만, 다시 심기일전해 올해 드디어 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김씨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뭐든 노력하면 다 이해가 되던데 수학은 노력을 해도 정말 어렵더라고요. 요즘 학생들이 왜 수학을 포기하는지 알 것 같았어요. 또 젊은 친구들과 학원에서 공부하니 점점 젊어지는 것 같고 손자뻘 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됐죠. 예전보다 필기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깜빡깜빡하던 것도 많이 줄었습니다. 다 공부를 한 덕분이죠."

초졸에서 중졸, 고졸까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온 용남씨는 이제 또 다른 계단을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용남씨는 2021년 조선대학교 법학과를 진학하는 것이 목표다. 늦깎이 꿈을 이루려는 만학도들을 위한 '기회균등 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법학도가 돼 자신처럼 배우지 못하고 사회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제가 이 나이에 법학과를 간다고 판검사를 하겠나요. 그저 이 사회에 부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배워서 알리고,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아닌 것을 맞게 하는 법조인들을 보면서 제가 분통이 터진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만연하면 사회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공정한 사회 만들기 위해 배워서 책을 내고 싶습니다. 그렇게라도 이 사회에 마지막으로 공헌을 하고 싶습니다."

용남씨는 최근 유은혜 교육부 장관에게도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는 "올해부터는 학교 면접을 통과해도 교육부 장관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왜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지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써서 장관님께 보냈습니다. 아직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제 진심이 전해져 계속 공부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라며 웃음지었다.


beyondb@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