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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의 국경이 자유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

[NYT 터닝포인트]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2020-01-02 10:05 송고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0'이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도전의 시대 새로운 희망: 시험대 오른 민주주의'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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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전 세계 국경 지역에서의 분쟁은 극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계속해서 멕시코와의 국경에 수백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벽을 건설하려 했다.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수십년간 해묵은 갈등도 다시 불붙었다. 또한 브렉시트 위협도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다.

이러한 갈등들이 폭발하고 격화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투고 있는 많은 국경이 처음부터 공정하거나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경들은 포괄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 식민지주의, 조약, 혹은 왕실 간의 결혼에 따른 산물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인 하비에르 살라이 마틴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이 화성에서 온 외계인에게 자신이 사는 사회에 대해 우리는 민주적인 법과 선거를 통해 직접 통치하지만, 국경은 식민지 시대의 조약이나 오랜 전쟁의 결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면 그들은 당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국경을 줄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경을 줄이면 스페인과 프랑스를 합쳐 파리를 수도로 삼을 수도 있고, 프랑스와 독일을 합쳐 베를린을 수도로 삼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그 나라의 재정과 인적 자원들이 수도에 집중되면서 정치와 경제는 더욱 중앙집권화하고 빈곤과 불평등만 초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브렉시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이 서유럽 국가 중 가장 중앙집권화한 국가 중 한 곳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도 수도인 마드리드에 권력과 자원이 집중되면서 재정 상태가 열악하고 노령화한 많은 지방에서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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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지역은 2017년 정치, 역사, 경제 등의 이유로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시행했다. 하지만 스페인 중앙 정부는 카탈루냐 지역의 어떠한 독립 시도도 거부했고, 스페인 헌법재판소도 주민투표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주민투표에 참여하려는 이들을 강경 진압했다. 이후 사회 지도자들과 일부 카탈루냐 정부 관계자들은 재판도 받지 않은 채 2년 동안 수감됐고 4명은 망명했다. 수감자 중 9명은 2019년 10월 선동죄로 징역 9~13년 형을 선고받았다.

나는 스페인 정치인들이 국가의 통합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EU에 속해 있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나 인권보다 국가 통합을 더 우선시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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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터키와 중국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터키는 쿠르드족 정치인을 처형한 것이 스페인의 선례를 따른 것뿐이라며 정당화했다. 중국도 홍콩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탄압을 카탈루냐 지방에서 스페인 경찰들의 강제 진압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국경 분쟁이나 독립 시도를 해결하는 것은 향후 전 세계 영토 문제를 격화하는 것이다. 또한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소수 민족에 대대 자행되는 폭력을 인정하는 선례를 남기는 셈이다.

카탈루냐 지역의 2017년 주민투표는 우리 현대 사회에서 국경의 중요성과 작은 지방 및 자치지역의 주권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통제하려는 욕망을 정당화하기보다는 민주주의와 분권화를 위해 우리의 국경을 유지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역사가 정한 국경으로 인해 소외되었던 이들도 자율권을 가질 수 있다.

인구가 770만 명인 덴마크와 같은 작은 국가는 더 큰 이웃 국가에 병합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효과적인 통치를 할 수 있다. 인구 750만 명의 카탈루냐도 EU하에서 독립국 지위를 갖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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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는 큰 나라보다 평화 유지와 교역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의존할 내부 시장이 없기 때문에 이웃 국가와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한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노동조합조차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고 민주적인 10개국 중 적어도 절반은 인구가 1,000만 명 미만이다. 이들 국가는 인권을 가장 지지하는 국가로, 영토 통제보다는 국민의 삶 향상에 더 관심이 있다.

우리는 카탈루냐 지역과 같은 곳이 안전하면서도 독립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영국과 캐나다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캐나다는 1980년과 1995년 퀘벡주의 독립 주민투표를 허가했다. 영국도 2014년 스코틀랜드의 독립 주민투표 시행을 승인했다. 이들 사례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전 세계 국가들이 영토 분쟁 해결 방안과 관련해 참고해야 할 자료다.

국경 분쟁을 겪는 주민들은 세계의 국경을 재정의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국가들은 전 세계에 자유민주주의를 확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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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레 푸이데몬트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카탈루냐 제130대 수반을 지냈다.


yellowapoll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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