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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정리뷰] 이윤택 이후 한국연극사 첫 문장은 '말뫼의 눈물'

미투폭로 김수희 연출… 치밀해진 연출·배우들 연기 돋보여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2018-04-08 10:24 송고 | 2018-06-24 11:42 최종수정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국립극단 기획초청 공연인 '말뫼의 눈물'은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작·연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미투(#Metoo, 나도 말한다)운동에 동참해 이윤택 성폭력 의혹을 최초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서울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개막한 첫 공연을 지켜보면서 공연 중반부터 막이 내릴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의 첫 번째 이유는 등장인물을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한 배우들의 연기력이지만, 두 번째 이유는 제작진들이 폭로 이후 미투 2차피해를 겪으면서도 지난해 초연보다 치밀해진 작품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경외심이다.
연극 '말뫼의 눈물'은 골리앗 크레인으로 상징되는 한국 조선업계 종사자들이 겪는 질곡을 다룬다. 연극 제목인 '말뫼의 눈물'은 경남 울산 현대중공업 육상건조시설에 자리 잡은 골리앗 크레인의 별칭이다. 높이 128m(미터), 폭 164m, 인양능력 1500t(톤)급을 자랑하는 이 크레인의 고향은 스웨덴이다.

스웨덴 조선업계는 1980년대까지 세계 조선산업을 호령했지만 '신흥강자' 한국에 무릎을 꿇었다. 이후 이 골리앗 크레인은 2003년 단돈 1달러에 스웨덴 말뫼시(市)에 있는 코쿰스 조선소에서 울산으로 팔려갔다. 한국으로 실려 가던 날, 수많은 말뫼 시민들이 조선소로 몰려와 이 장면을 눈물로 지켜봤다.

작품은 '말뫼의 눈물'이 14년 후 '한국의 눈물'로 반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화려했던 한국의 조선업계는 중국과 동남아에 밀려 국제 경쟁력을 잃고 서서히 추락한다. 이런 상황은 강두금 할머니(남미정)가 조선소 인근에서 운영하는 구멍가게 겸 하숙집을 중심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진다.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극이 진행되는 동안 조선소 근로자가 다쳤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린다. 한해에만 13명이 사망하지만 언론은 무심하고, 구세대를 상징하는 강두금과 정규직 노동자 황근석(남문철·정나진)은 '우리 때는 된장 바르고 하루 누워 있으면 될 일'이라며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한다.

황근석의 외아들 진수(김규도)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128m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인다. 정규직 노동자인 황근석은 진수를 징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발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해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고공농성이 3개월을 넘기자 사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황근석의 돌발행동 때문에 다른 정규직 숙련공들이 한꺼번에 명예퇴직을 당하게 된다. 또한, 고공농성으로 조선 작업이 중단되자 임금이 체납되고 지역 경제가 멈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치매에 걸려 갑작스레 사망한 강두금의 장례식이 열린다. 손녀 김수현(최정화)이 홀로 상주 노릇을 하고, 고공농성으로 인해 손해배상 16억원 가압류 등기를 받은 황진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의 곁을 지킬 뿐이다.

이 작품에서 빛나는 미덕은 묵직한 주제를 끌고가면서도 균형감을 놓치지 않은 작가 김수희의 시선이다. 그는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적확하게 파악해 그려내면서도 따뜻한 인간적 시선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악역이라고 할 만한 조선소 하청업체 사장 김인하(조주현)마저도 인간적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한편, 김수희 대표를 비롯해 출연진과 국립극단 관계자들은 이번 재공연을 올리기까지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다. 이윤택 성폭력 의혹 수사가 아직 진행중인 데다가 미투 폭로 이후 '2차 가해'도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연 전,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갤러리(이하 연뮤갤)에선 단편적 사실을 짜깁기한 추측성 게시물이 연이어 올라오면서 연극 '말뫼의 눈물'에 관한 악성 루머를 확대·재생산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문체부와 국립극단에 이번 재공연을 취소해야 한다고 항의 전화를 넣으면서 공연 중 날계란을 투척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북에는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서문이 없다. 공동주최인 국립극단의 공연에서 예술감독의 글이 빠진 것은 이례적이다. 국립극단 관계자들은 2차피해로 예민해진 김수희 대표와 출연진들이 편하게 연습할 수 있도록 통상적인 업무 소통조차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식으로 이들을 믿고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 '말뫼의 눈물' 출연진들은 민감한 상황 속에서도 초연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세밀하게 다듬어 재공연 무대에 섰다. 초연보다 훨씬 세련되고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을 지켜보자니 존경의 눈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마치 영화 '패왕별희'에서 폭력이 싫어서 경극단에서 도망친 아이들이 경극을 훔쳐보다가 '얼마나 맞으면 저렇게 잘할까'라며 우는 마음과도 비슷했다.

오는 22일까지 이어지는 연극 '말뫼의 눈물'은 미투 이후 한국 연극계가 폐허가 됐다는 식의 비관적 편견을 단숨에 부수는 작품이다. 또한, "한국의 현대연극사는 이윤택이 인권을 유린해 세워온 연극이 아니라, 용기내어 그를 고발한 연극인들에 의해 쓰이게 될 것"이라는 어느 연극인의 예언처럼 '앞으로 쓰여질 한국연극사의 첫 문장에는 김수희가 주어'임을 선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연극 '말뫼의 눈물' 공연 장면 (제공 국립극단)©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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