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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프라이드…국민 엔트리카 30년만에 역사 속으로

(서울=뉴스1) 임해중 기자 | 2017-12-19 15:03 송고
사진 왼쪽부터 프라이드 1세대, 2세대, 3세대(기아자동차 제공)/News1
사진 왼쪽부터 프라이드 1세대, 2세대, 3세대(기아자동차 제공)/News1


'1세대 모델 내수 판매 70만1876대, 글로벌 누적판매 600만대 돌파'
한때 국민차로 불렸던 프라이드가 남긴 기록이다. 서민의 발 노릇을 톡톡히 하며 과거 소형차 부흥기를 이끈 프라이드는 우리 국민들의 엔트리카(생애 첫 차)로 인기를 구가했다.

프라이드는 기아자동차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모델이지만 이제 내수시장에서 자취를 감춘다.  기아차가 18일 신형 프라이드(4세대)의 내수판매 중단을 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프라이드는 앞으로 해외시장 수출 모델로만 역할을 한다. 러시아와 유럽 등에선 여전히 소형차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 국민 첫차 프라이드 "자동차 대중화 이끌어"

올해로 출시 30년째를 맞은 프라이드는 저렴한 가격과 젊은 감각의 디자인으로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국산차 간판모델이다.
1세대 모델인 프라이드(Y)는 87년 3월 출시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연평균 10% 이상의 가파른 경제성장이 거듭됐다. 경제호황기와 맞물려 출시된 프라이드는 첫해에만 8만8709대(내수 2만8623대, 수출 6만86대)가 팔렸다.

마이카 시대가 열리기 전이었던 80년대에 내수에서만 3만대 가까이 팔린 프라이드는 출시 이듬해부터 글로벌 판매 10만대(내수 4만5276대)를 넘어섰다. 단숨에 소형차 간판 모델로 등극한 프라이드는 "한 집 걸러 한 대는 프라이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굉장했다.

인기 비결은 저렴한 가격과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1세대 프라이드에는 1100cc와 1300cc 두 등급의 엔진이 장착됐는데 각각 330만∼360만원, 340만∼390만원대에 판매됐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200만원 미만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이 선호하는 국민차 대접을 받았다.

생산 초기에 3도어 해치백으로 출시됐던 프라이드는 1988년 5도어 해치백, 1990년 4도어 프라이드 베타(세단), 1992년 3도어 해치백 밴, 1996년 5도어 스테이션 왜건으로 라인업이 확대되며 승승장구했다.

1차 단종이 결정된 2000년까지 14년 동안 풀 체인지 변경이 없었음에도 내수에서만 70만1876대의 판매고를 기록한 프라이드는 소형차를 상징하는 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 서민의 발 프라이드, 가이차에도 효자 모델

프라이드는 기아차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모델이다. 일본 마쓰다와의 제휴로 70년대 브리사를 내놓은 기아차(옛 기아산업)는 엔진, 구동축, 변속기 등을 자체 생산하며 완성차 제조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아차는 80년대 정부의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7년 동안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해당 조치는 1980년 2차 석유파동을 겪은 뒤 내수 자동차 수요 증가 억제와 관련 산업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박정희 정부가 이듬해 내놓은 정책이다. 버스 및 트럭(5톤 이하) 생산만 가능했던 기아차는 승용차 제조에 손을 대지 못하면서 현대차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드는 1987년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되자 기아차가 곧바로 내놓은 모델이다. 브리사 완성 이후 프라이드 개발·생산 준비를 마쳤던 기아차는 정책에 변화가 생기자 발 빠르게 대응했다. 덕분에 현대차와의 격차를 좁히며 국내 자동차 산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외환 위기 이후 경영상황이 악화된 기아차가 2000년 현대차에 인수됐지만 프라이드는 명맥을 계속 이어갔다.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프라이드는 많은 이들에게 향수를 부르는 모델이라는 점을 감안해 2005년 생산이 재개됐고 2011년까지 내수에서 12만9217대가 판매됐다.

2011년 출시된 3세대 모델을 더해 30년 동안 글로벌 판매량 634만1634대를 기록한 프라이드는 기아차 성장을 이끈 대표적인 효자로 꼽힌다.


haezung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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