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독립투사의 건국훈장 애족장이 5년만에 전달된 사연은…

민영팔 선생, 2010년 추서되고도 가명 사용으로 家系못찾아 전달 늦어져

(용인=뉴스1) 김평석 기자 | 2015-11-06 07:00 송고
남창수(왼쪽) 수원보훈지청장이 민영팔 선생의 손자 민병진옹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전하고 있다.© News1
남창수(왼쪽) 수원보훈지청장이 민영팔 선생의 손자 민병진옹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전하고 있다.© News1

독립투사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지만 후손을 찾지못했던 민영팔(閔泳八) 선생의 훈장이 5년 만에 전달됐다.

남창수 수원보훈지청장은 지난 4일 저녁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민영팔 선생의 손자 민병진(91)옹의 자택을 찾아 훈장을 전했다.
남창수 수원보훈지청장은 “이제서야 업적을 제대로 기리게 돼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훈장이 늦게 전달된 사연은 민영팔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며 가명을 사용한 데다 가족과 친지, 지인과의 연까지 숨기며 살았던 데서 기인한다.

선생은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자 용인에 은신했다.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이어갔지만 이름을 민영덕으로 바꿔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독립에 기여한 선생의 공적을 기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지만 가계(家系)를 찾지못했고 훈장도 전하지 못했다.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선생의 옛 이름과 의병운동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있다’는 이야기를 지인이 선생의 증손자인 민선기(60)씨에게 전한 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등에 게재돼 있던 선생의 기록을 찾았고 족보와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보훈처에 제출했다.

보훈처는 수 차례의 자료검토와 분석 끝에 가족관계를 밝혀내고 이날 훈장을 전달했다.

1870년 충북 단양 출신인 선생은 1907년부터 1910년까지 강원, 경북, 충북 일대를 넘나들며 의병운동을 전개했다.

을미사변(1885년 10월9일) 때부터 의병을 일으켜 1896년(고종33) 11월 진도로 유배되기도 했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고, 이명상(李明相)과 함께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참여해 강원, 충청도 일대에서 활약했다.

1909년 4월경에는 김상한의진(金商翰義陣)의 간부로 경북과 충북 일대에서 활약했다.

또 1909년 5월부터 1910년 3월경까지 충주, 단양 일원에서 의병장으로 유격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증손자 민선기(60)씨는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가족들의 자긍심은 그동안에도 아주 컸다”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자랑스런 기록이 후손들에게 영원히 살아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고맙고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ad2000s@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