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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골프·문화강좌·삼시세끼까지…아파트 '커뮤니티'가 집값 결정?[박원갑의 집과 삶]

(서울=뉴스1)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 2023-10-30 08:05 송고 | 2023-10-30 08:51 최종수정
서울 송파구 서울스카이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망대 너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크리스찬 리버스 감독의 영화 <모털 엔진(2018)>은 움직이는 도시들의 전쟁 이야기다. 3000년대 초반 세계전쟁으로 겨우 살아남은 인류는 오염된 땅에서 더 이상 정착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이동 도시’를 만든다. 이동 도시는 움직일 수 있도록 바퀴와 모터를 단 거대한 구조물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평화롭지 않다. 강하고 큰 도시는 이동하면서 작은 도시를 사냥하고 식량과 자원을 약탈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약탈로 몸집을 더욱 크게 불리려는 큰 도시와 이를 막으려는 작은 도시 간의 생존을 건 싸움을 그리고 있다. 도시 간의 드마라틱한 약육강식 전쟁이다. 모든 생활은 이동 도시 안에서 이뤄진다. 곡식 창고도 별도의 공간에 싣고 다닌다. 한마디로 자급자족 생활이다.

이 영화의 거대 도시를 보면서 중세 유럽의 성(城)이 떠올랐다. 요즘 대단지 아파트는 이동만 하지 않을 뿐 거대한 ‘콘크리트 캐슬’이다.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대부분 자체적으로 편의시설의 니즈를 해결한다는 측면에서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선 지 오래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를 훌쩍 넘어서면서 주거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 그만큼 사람들이 좀 더 차별화된 주거 서비스를 원하기 마련이다.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커뮤니티형 아파트가 관심받는 이유다. 아파트는 이제 여러 기능을 합친 복합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기존 아파트로 치면 다용도실의 공간이 확장되고 고급화된 것이다. 커뮤니티 시설은 아파트가 양적 공급에서 질적 공급 시대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역사는 1세대(연탄 난방 저층 아파트), 2세대(엘리베이터와 중앙난방 아파트), 3세대(3베이 혹은 4베이 혁명,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를 거쳐 이제 4세대로 접어들고 있다. 4세대 아파트의 차별화 포인트는 바로 아파트 내의 커뮤니티 시설이다. 미세먼지와 혹한, 혹서의 날씨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아파트 안에서 거주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커뮤니티 시설이 매우 중요해졌다. 지하층에 찜질방, 수영장, 헬스장, 골프 연습장,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북카페, 커피숍까지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문화강좌도 자체적으로 연다. 자녀의 소규모 과외수업까지 커뮤니티 시설의 소규모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폐쇄형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대단지 아파트 단지는 마치 콘크리트 소공화국 같다.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전용면적을 넘어 지하층 편의시설이라는 외연이 확장된 공간을 구매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공간을 이용하는 개념이 크게 바뀌고 있다. 다만 외부와 격리된 폐쇄형 커뮤니티라는 점에서 과거 전통적인 커뮤니티와는 큰 차이가 난다. 닫힌 문안에서만 서로가 소통한다. 커뮤니티 시설은 아파트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규모 빌라와 아파트 단지 간의 가격 차이는 바로 커뮤니티 공간 값 차이라고 말할 정도다. 커뮤니티 시설은 입주민이 어느 정도 많아야 운영할 수 있다. 최근 신축 대단지 아파트가 인기를 끄는 데는 다양하고 활용도도 높은 커뮤니티 시설이 한몫하고 있다.
최근 수도권 외곽의 한 아파트 단지를 탐방할 일이 있었는데 커뮤니티 시설 수준을 보고 놀랐다. 입주민들이 스크린 골프장에서 내기 골프를 치고 있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아파트에 한 번 살면 어지간한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는 편의만 생각한다면 현대인에게 최적화된 주거 공간이다.

요즘 고급 아파트 단지에선 입주민에게 호텔 수준의 ‘컨시어지(concierge) 서비스’도 제공한다. 컨시어지 서비스는 고급 호텔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종합적인 편의 서비스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세탁과 내부 청소 대행, 발레파킹, 카 셰어링, 세차 등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입주민을 대상으로 조식과 석식을 제공하는 단지들도 부쩍 늘었다.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파트 단지에선 주부들의 부엌일도 크게 줄 것이다.

집에 칩거하면서 세끼를 챙겨 먹는 삼식(三食)이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아내에게 밥을 차려 달라고 요구하면 지하 레스토랑에서 해결하라고 핀잔을 주지 않을까. 하루에 한 끼도 집에서 먹지 않는 영식(零食)이가 대세가 될 것이다. 아마도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커뮤니티 시설에서 스몰 웨딩 방식으로 결혼식도 열리지 않을까 싶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h99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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