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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받을수록 손해"…50만 중증정신질환자 갈 병원이 없다

정부, 잇단 흉기난동 대책으로 '사법입원제' 검토
의료계 "병실부터 늘리고, 진료 수가 정상화 해야”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2023-08-08 05:01 송고 | 2023-08-08 09:29 최종수정
최근 도심 한복판에서 잇따라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들이 과거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무부가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법원 등 사법기관이 결정하는 사법입원제는 정신질환 관련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도입 필요성이 대두됐던 사안이다. 하지만 급성기 중증 정신 질환자가 병원에 간다 해도 막상 받아줄 병원이 없어 이에 대한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현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모 씨가 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2023.8.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현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모 씨가 5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2023.8.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 중증 정신질환 앓아도…“치료 안 받겠다” 거부하면 답 없어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려면 절차가 꽤 까다롭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를 비(非)자의, 다시 말해 본인의 의사에 와 무관하게 입원시키는 방법으로는 △보호자 2명 이상의 신청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 △경찰과 의사 동의로 3일 입원하는 ‘응급 입원’ △전문의 진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명령하는 ‘행정 입원’ 등이 있다. 보통 중증의 정신질환자는 병식(病識, 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없어 비자의 입원 비율이 높다.     

8일 홍나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질환자는 망상이나 환각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치료를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현재로선 타인을 해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중증 정신질환자라고 하더라도 현저한 자해·타해가 있어야만 입원을 할 수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대만은 자해·타해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하면 경찰, 소방이 의료기관까지 책임지고 이송해야 한다. 일본도 신고가 접수되면 지자체가 전문의를 집으로 보내 정신 상태를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정신건강복지법 응급입원규정에 따라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격리 조치를 할 수 없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할 수 있는 조치는 환자를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간 의료계는 사법입원제와 같이 국가에서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입원치료를 강제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6일 “현행법과 제도에 의한 정신질환자 치료와 회복을 위한 시스템은 더 이상 환자, 가족 그리고 국민 누구도 제대로 구할 수 없다”며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학회는 대의원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보호의무자 입원제도의 폐지와 사법입원 또는 정신건강심판원제도의 도입을 학회의 공식의견으로 채택한 바 있다.     

오강섭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우리나라의 비자의 입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호의무자 입원과 의무조항의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초기 현장 대응 인력에 적절한 권한을 부여하고 경찰에 의한 병원이송 또는 찾아가는 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정신질환자 계속 느는데, 수용할 병실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결국 사법입원제가 도입돼 중증 정신질환자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입원시킨다고 하더라도 ‘입원시킬 병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급성기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종합병원 이상 병상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이 발간한 ‘정신건강동향’에 따르면 자해, 정신장애, 행동장애 등 ‘정신응급’으로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환자는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총 46만6935명이다. 2014년 6만4825명에서 2019년 8만4507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같은 기간 10~20대 환자 수는 1만4452명에서 2만6274명으로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중증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도 치료나 요양 서비스를 받고 있는 환자는 현저하게 적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중증정신질환 환자 약 50만 명 중 정신의료기관과 정신요양시설에서 치료 및 관리를 받고 있는 환자 수는 약 7만7000명이다. 42만명에 달하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우리와 같은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도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했을 때 받아줄 마땅한 병원이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손지훈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직접 조사한 ‘서울 시내 정신 병상 현황’에 따르면 서울 시내 종합병원급 이상 병원 56곳 중 정신과 입원실을 유지 중인 병원은 25%에 불과했다. 그중 병상 가동률은 상급종합병원이 99%, 종합병원은 95%로 사실상 당일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상은 최대 18병상에 불과했다. 실제로 지난 6월 한 조현병 환자가 망상 증세가 심해져 병원을 찾았지만 입원할 곳을 찾지 못해 260㎞ 표류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환자 받을수록 손해…진료 수가 정상화해야”
     

이렇게 정신과 보호 병동이 문을 닫는 데는 결국 진료 수가와 관련이 있다. 환자를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상급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입원 일당 진료비는 25만134원으로 다른 진료과 평균의 39% 수준이다. 입원 진료가 많고, 정신질환 특성상 일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해 의료급여 환자가 많다 보니 병원에선 반길 수가 없는 입장이다. 통원보다는 입원 진료가, 건강보험보다 의료급여 환자의 수가가 더 낮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손지훈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금 대학병원들에선 정신과 병동을 쫓아내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내과 입원비의 3분의 1도 안 나오니 병원 입장에선 그럴 바엔 돈 되는 과를 더 들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체질환이 동반된 정신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 병상은 비현실적으로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만성적자로 10년간 1000개 병상이 감소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급성기 때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이 심해졌을 때 바로 반응해 치료에 들어가야 하는데, 저렴하게 운영할 수 있는 일반 정신병원에선 이런 대응이 쉽지 않다. 신체질환을 동반한 정신질환자의 치료도 불가능하다.    

손 교수는 “특히 조현병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의 급성기 치료는 일반 정신질환자의 3~5배 자원이 소모된다”면서 “비현실적인 수가 시스템으로 그 피해는 환자와 가족, 지역사회가 겪고 있어 현실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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