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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이 아틀란티스가 되지 않도록…워터월드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영화 속 육지는 전설이 됐는데…전세계 해수면 30년간 9.8㎝↑
해빙 면적 역대 최소…해상 부유 도시 콘셉트는 '실현 진행중'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2023-07-15 07:30 송고
영화 워터월드의 한 장면 © 뉴스1 DB
영화 워터월드의 한 장면 © 뉴스1 DB

'저 먼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다른 무언가 세상과는 먼 얘기.'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는 여름, 가수 보아(본명 권보아)의 정규 3집 대표곡 '아틀란티스 소녀'는 여전히 우리에게 청량함을 선물해 준다. 상쾌한 느낌과 함께 미지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동경, 잃고 싶지 않은 기억에 대한 두근거림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 노래가 출시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흥얼거리던 이 노래의 가사는 한참 기후변화를 취재하던 필자에게 '인류에게, 바다 끝에 더 이상 닿을 땅이 없어진다면 어쩌나'하는 상상과 이어져 어떤 영화를 오버랩했다. 케빈 레이놀즈 감독의 1995년작 '워터월드'다.

케빈 레이놀즈 감독은 30년 전에 지금의 이 사달, 기후변화로 높아지는 해수면을 예상했을까. 영화는 바다밖에 없는 배경에서 시작된다. 극지방의 빙하가 모두 녹아 지구 전체가 물에 잠긴 상태에서 배나 인공섬에 유지해 생명을 부지하면서 '마지막 육지'라고 불리는 드라이랜드를 찾아 헤매는 설정이다.

몇 가지 장면이 겹친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수몰 위기에 처한 태평양 도서국 투발루다.

해발고도가 4m 안팎인 이 섬나라는 40~50년 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지난 2021년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무부 장관이 장딴지까지 물이 차오른 바다에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향해 기후 난민 수용과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당시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무장관은 해수면이 높아진 투발루 앞바다에서 다리를 바닷물에 담근 채 연설을 했다. © 뉴스1 DB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당시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무장관은 해수면이 높아진 투발루 앞바다에서 다리를 바닷물에 담근 채 연설을 했다. © 뉴스1 DB

그러나 해수면 상승은 멈추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전세계 평균 해수면은 1993년부터 2022년까지 9.8㎝ 상승했다. 연평균 상승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최근에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지난 20세기 동안은 평균 해수면이 매년 약 1.5㎜씩 상승했는데 1990년대 초에 들어서는 매년 2.5㎜씩,  2010년대 이후에는 3.9㎜씩 상승했다.

사실 세계적 해수면 상승보다는 우리나라의 수변이 문제다. 한강을 낀 서울을 제외하더라도 인천과 부산, 울산, 포항, 광양, 여수 등 주요 산업 시설이 있는 도시는 모두 해안과 접해 있다. 유종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연구팀의 연구모델에 따르면 이번 세기말인 2100년에는 부산 지역의 '해일고'가 최고 1.36m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부추기는 해빙(解氷)도 지속되는 상황. 미국 국립설빙데이터센터(NSIDC)는 남극 대륙의 얼음 면적도 지난 겨울 191만㎢로 역대 최소 크기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극지방 얼음이 녹을 경우 햇빛을 반사하는 구역이 줄어들면서 얼음은 더 빠르게 녹게 된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인공섬을 '신세계' 삼아 새로운 생활양식에 적응(adapt)해 간다. 태어나서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아이들은 흙을 신기해 하고 오줌을 걸러서 마시거나 흙을 교환수단(돈)으로 사용한다.

육지가 모두 사라진다면 인류는 워터월드 속 인류처럼 인공섬을 짓거나 배에서 살게 될까. 한 기후변화학자는 "인공섬 건설을 고민하기 전에 식수나 식량 부족, 폭염과 폭우, 폭설 등 극한 기상현상, 이에 따른 신체·정신 질환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절망적인 '디스토피아'를 상정했다.

사실 인공섬은 이미 실재한다. 중국 하이난성 앞바다의 '음양도'나 두바이의 팜 주메이라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는 비교적 얕은 바다를 매립해서 섬을 만드는 것으로 배처럼 바다를 표류하는 건 아니다.

바다를 떠다니는 섬을 기획·건설하려는 시도도 있다. 일본 기업 엔 아크는 1만명이 거주 가능한 '고리형 해상 부유 도시' 도겐시티(Dogen city)를 구상해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에 발표했다. 이 도시는 해수면에 뜬 상태로 자체 생존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다만 제작 단계까지 추진된 게 아니라 아직은 과학적 상상에 불과하다.

미국 국립기상센터에서 황덕현 사회정책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땅이 잠길 듯 퍼붓는 장맛비에 화들짝 놀라는 때가 느는 요즘, 이 비가 그치면 또 얼마나 더울까,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까, 눈은 얼마큼 많이 올까 생각하게 된다. 반복되는 '기후 스트레스'에 앓는 동안 해수면은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다. 인류의 남은 땅이 워터월드 속 '드라이 랜드'나 '아틀란티스 소녀'의 모티브가 된 전설 속의 아틀란티스가 되서는 안 될 것이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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