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영/ 본인 제공 |
'한산: 용의 출현'이 흥행 가도의 정점을 달리고 있을 무렵 만난 윤진영은 영화의 성공에 기뻐하면서도 크게 들떠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번 영화로 정극 연기에 도전해 제대로된 첫 걸음을 뗐다고 자평한 그는 "지금 더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며 조용히 의욕을 충전하고 있었다. "숫자도 숫자지만 '한산: 용의 출현'이라는 큰 배에 승선한 자체만으로 큰 영광입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이 많아서 배운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어요. 다른 희극 배우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의미에서 정극 도전의 제대로된 첫 걸음을 뗀 것 같아요."
영화에는 오디션을 통해 합류하게 됐다. 송희립은 지금까지 윤진영이 해 온 역할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고 존재감이 있는 캐릭터였다.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배역을 준 김한민 감독이 정말 큰 용기를 내어준 것이라 생각한다며 평생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했다.
윤진영/ 본인 제공 |
김한민 감독에게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이후에 깊은 존경심이 생겼다. 연기를 할 때는 잘 몰랐지만 붙여놓은 작품을 보니 이제서야 현장에서 했던 감독의 디렉션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연기 시작했을 때부터 제 꿈이 저를 믿고 기용해주시는 감독님들께 평생 잘해야겠다 하는 거였어요. 저는 희극 배우의 모습도 강했어서…(부담이 있으셨을 거예요). 살면서 보답하면서 살아야겠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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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웃긴 상황이긴 한데 박해일 선배님과 촬영장 밖에서도 계속 무언의 눈빛을 많이 주고 받았어요. 역사 속에서도 송희립 장군이 실질적으로 이순신 장군과 제일 많은 전투를 함께 다니셨고, 옆에 좌장으로 같이 계셨거든요. 저희끼리도 밥을 먹거나 회식하면 항상 제가 선배님 왼쪽에 앉았고, 선배님은 제게 '그래 진영아, 한잔해' 하시면서 챙겨주셨죠.(웃음)"
윤진영은 박해일에게 감동을 받았던 일화도 전했다. 2017년 결혼한 그는 2020년 딸을 품에 안게 됐는데, 그의 득녀 소식을 들은 박해일이 직접 고른 특별한 선물을 줬다는 것.
"아내의 임신 소식을 알고 나서 그 다음날 '한산: 용의 출현' 캐스팅 연락을 받았었어요. 그리고 저의 마지막 촬영이 끝난 날에는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해일이 형은 갑옷 입으시면 장군님으로 변신하세요. 저희가 압도당할 정도로요. 여수 세트장 근처에 바다가 있는데 해일 형이 긴 칼을 차시고 촬영 전에 항상 이순신 장군이 된 듯한 모습으로 바다를 보세요. 어느 날 선배 매니저가 차에 올라가더니 선물을 하나 주더라고요. 아기 내복과 배냇저고리였어요. 주시고 나서 선배는 별 말씀도 없어요. 저쪽에서 늘 그렇듯 바다를 보고 계시길래 '장군님'하고 부른 뒤에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죠.(웃음) 이후에 이야기를 들었는데 주말에 매니저와 함께 시내에 잠깐 나갔는데 '차 좀 세워줘' 하더니 아기 용품 가게에서 한참 안 나오시더래요. 엄청 감동이었죠."
윤진영은 2013년 '푸른거탑-제로' 이후 정극 연기에 꾸준히 도전해왔다. 영화 '악녀' '퍼펙트맨' '월하' '블랙머니' '이 안에 외계인이 있다' '경관의 피' 등에 출연해 영화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개그맨에서 배우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배우라는 직업 안에서 활동 영역이 달라진 것이라고 자신의 행보를 설명했다.
"저는 개그맨 연기 따로, 정극 배우 연기 따로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연기라는 상위 개념에서 희극적인 연기가 부각되는 연기를 해왔고, 지금은 확장을 시켜서 정극적인 요소가 더 가미된 연기를 하는 거죠. 짐 캐리와 주성치 같은 배우들이 어릴 때 제 롤모델이었어요. 짐 캐리도 희극 배우로 나오지만, 동시기에 정극 배우로도 연기를 하곤 했었으니까요. 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개그맨 활동을 했었는데 한국의 상황은 그게 어려웠죠. 그래도 제 진정성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전 소속사에 있을 때 회사의 허락 하에 제 프로필과 건강음료를 들고 영화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윤진영/ 본인 제공 |
그런 윤진영에게는 데뷔 초기 비슷한 고민을 했던 희극인 동료가 있었다.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에 깜짝 출연해 놀라움을 줬던 개그우먼 김신영이다.
"신영이는 SBS 공채 동기고 20대 때는 같은 코너도 했었고, 회사도 같았었어요. 어릴 때부터 '개그맨 따로 배우 따로가 아니다'라는 대화를 둘이 하고는 했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고 신영이가 '헤어질 결심'을 찍은 줄은 모르고 있었어요. 제 입장에서는 '한산: 용의 출현'에 나오기 직전 신영이가 그렇게 화제가 돼 너무 반갑고 고마웠어요. '한산: 용의 출현' VIP 시사회에 박해일 선배의 초청으로 신영이가 왔었는데 둘이 서로를 보자마자 말없이 포옹을 했어요. 어린 시절에 같이 지방공연을 하면서 '우리도 (정극 연기)할 수 있는데 그치?' 하면서 '언젠가 하자' 했었는데, 이제 마흔 한 살이 넘어 이렇게 바뀌어 있는 우리를 보니 너무 감사했어요."
윤진영은 개그를 했던 것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여전히 희극 연기가 자신의 근간이자 뿌리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처럼 정극 연기와 희극 연기에 모두 열정을 갖고 있는 후배 희극 배우들이 용기를 내서 계속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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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영의 인생에 '한산: 용의 출현'은 시발점으로 남을 작품이다. 송희립 장군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연기하며 중압감을 크게 느꼈다. 그래도 결국 그는 그 중압감을 견디고 연기로 좋은 평을 받았다.
"저는 제 포지션에 경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연기라는 틀 안에서, 영화 드라마 안에서 그 안에서 짐 캐리와 주성치처럼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음 작품을 논의 중이에요. 이제 반 발짝 떼는구나, 시작하는구나 하는 무게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