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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인터뷰] '애비규환' 92년생 최하나 감독 "정수정, 첫 만남부터 좋았죠"(종합)

신인 감독, 첫 장편 데뷔작
"영화 마지막 장면은 일종의 전복"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2020-11-15 09:21 송고
최하나 감독/리틀빅픽처스 © 뉴스1
최하나 감독/리틀빅픽처스 © 뉴스1
*이 인터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애비규환'의 메가폰을 잡은 감독은 1992년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최하나 감독이다. 개성 넘치는 단편 영화 '고슴도치 고슴'(2012)에 이은 첫 장편 데뷔작 '애비규환'은 한예종 졸업작품으로 쓴 시나리오가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장편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애비규환'은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신부 '토일'(정수정 분)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 환규(이해영 분)와 집 나간 아이의 예비 아빠 호훈(신재휘 분)를 찾아 나서는 설상가상 첩첩산중 코믹 드라마다. 1990년대생, 신예 감독만의 통통 튀고 재기발랄한 연출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혼전 임신, 이혼, 재혼과 같은 이야기가 짐짓 무겁게 다가올 수 있으나, 영화는 이를 하나의 유쾌한 소동극으로 그려내며 부정적 시선을 걷어내고자 한다. 특히 아이돌 f(x)(에프엑스) 크리스탈을 주연으로 캐스팅, 매력적인 토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첫 장편 데뷔작을 선보이는 최하나 감독은 최근 뉴스1과 만났다. 작은 체구임에도 강단 있는 말투와 눈빛을 지닌 그는 "제 기준치가 높은 편이라 자신이 없어서 영화를 제대로 못 보고 괴로워했는데, 개봉하니 좋은 점만 보여서 이젠 두려움을 극복한 게 아닐까 싶어요"라며 웃었다.
'애비규환' 스틸 © 뉴스1
'애비규환' 스틸 © 뉴스1
-첫 장편 데뷔작을 선보이게 된 소감은 어떤가요.

▶기술 시사 때 감기에 걸려서 못 보고, 부산국제영화제 때 극장에서 처음 봤어요. 보면서 '이게 진짜 영화로 만들어졌네' 이런 생각부터 들었죠. 사실 영화과 다닐 때도 제가 만든 영화 시사할 때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두렵고 자신이 없었어요. 하하. '애비규환'도 작업하면서 못 찍었다는 생각에 괴로웠는데, 개봉하고 나니 이상하게 좋은 점만 보이기 시작해요. 속으로 '잘 만들었잖아?' 생각해요. 하하. 스스로 좀 극복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기 시작해요.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는데, 만족스러운 장면을 꼽자면요.
▶잘 찍힌 장면 중에 내가 여기서 기여한 게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봤어요. 사실 감독은 직접적으로 손대는 게 없으니까요. 촬영도 촬영감독님이 하시고요.(웃음) 꼽자면, 토일이가 친아빠와 마지막에 헤어지는 장면이 좋아요. 그때 시간이 없었는데 두 분이 연기를 너무 잘해주셨죠. 그리고 그 장면 촬영할 때 친아빠에게 포커스를 주지 말자고 했어요. 의견이 분분했던 장면이었지만,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토일이 고스(Goth) 분장하고 나오는 '고스족 토일'도 좋아해요. 사실 고스 분장을 하면 코믹해야 했는데, 수정씨가 너무 멋있더라고요. f(x) 시절 '레드 라이트'가 생각났어요. 저와 수정씨가 조금 더 웃기게 하려고 검은색 립스틱도 발랐어요. 너무 만족스러워요.

-정수정씨와 함께 다니며 토일을 준비했다고요.

▶처음 캐스팅하고 수정씨 만났을 땐 정말 말랐는데, 토일이가 임신부인 만큼 다이어트를 하지 말라고 했죠. 사실 여자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체형이 워낙 심하게 마른 형태잖아요. 토일이를 하면서는 그러지 않았으면 했죠. 그래서 제가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정씨도 먹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수정씨가 맛집을 정말 잘 아는데 어른 맛집은 잘 몰라서 제가 소개해주고, 같이 삼계탕 먹으러 다니곤 했어요. 디저트도 좋아해서 같이 많이 먹었죠. 수정씨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모습이 참 좋았어요. 하하.

-토일이의 10대 모습을 그려낼 때 '고스' 분장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토일이가 가족들과 함께 나올 때, 청소년기에 갈등의 골이 가장 깊었던 때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면서도 코미디 영화 톤을 유지하려면 고스족이 재밌을 것 같았죠. 제 학창시절에 그렇게 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 이미지를 떠올렸죠. 관 모양으로 된 가방이나 해골 무늬가 있는 소품들을 구하려고 했는데 요즘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분장에 힘을 줬어요. 토일의 방도 미술감독님과 상의해서, 현아빠가 들여다보기 두려울 정도로 무섭게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청소년 시기, 갈등이 초절정인 상태의 토일의 모습을 다크하고, 코믹하게 그려내고 싶었어요.
'애비규환' 스틸 © 뉴스1
'애비규환' 스틸 © 뉴스1
-작명법도 독특해요. 토일이가 현아빠와 만난 후 '김토일'(금토일)이 됐는데 의도했나요.

▶김토일, 한자로는 '금토일'이 되는 걸 의도했죠. 최토일은 그냥 이름같지만, 김토일은 진짜 놀림 받기 좋은 이름이잖아요. 토일이는 아빠가 바뀌면서 성도 바뀌었고, 하필 '김'씨라 더 짜증이 났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토일이의 불만이 가중될 만한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토일은 실제 친구의 친구 이름에서 따왔어요. 그 친구가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태어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토일'을 쓰고, 반전 요소인 '일월'이까지 파생됐어요. 중간에 잠깐 등장한 '수영'이라는 이름도 이름의 아이러니를 이용하고 싶어서 그렇게 지었어요. 호훈이는 어감이 좋지 않나요. 전 남자친구 가족이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 '호훈'이었는데, 충견이었어요. 호훈이가 진짜 충성스러워서 그렇게 지었어요. 하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은데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요.

▶영화는 토일이의 임신, 결혼보다는 이혼 가정과 나아가 가족에 대해 더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토일의 결혼식 시작 장면으로 끝나는 것으로 염두에 뒀죠. 사실 결혼식 장면에서 두 아빠 중에 누구를 택해야 할지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저 그런 결말이잖아요. 엄마가 왜 안 되냐는 생각에 토일이 엄마 선명과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결말을 하나의 선택으로 제시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이게 일종의 전복이죠.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반전처럼 보이진 않았으면 해서 토일이가 엄마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에 설득력을 더 실어주려고 했어요.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결혼식 형태를 보여주면 그것 또한 의미가 없다고 느꼈어요. 요즘은 파티처럼 한다고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토일이가 엄마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것은 전통에 대한 전복이 잘 드러나지 않다고 봐서 외적으로는 평범한 결혼식 모습으로 꾸몄어요. 이러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죠.

-정수정 장혜진 배우도 엔딩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어요. 처음에 배우들 반응은 어땠나요.

▶신기하게도 토일의 아빠를 연기한 최덕문 이해영 선배님이 극 중 토일의 손을 잡고 들어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어요. 대본 리딩할 때 덕문 선배가 영화 말미 토일이가 친아빠와 이야기하는 신을 읽더니, 토일이가 누구를 골라도 섭섭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해영선배 역시 극 중에서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이미 잘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다들 좋아하셨어요. 장혜진 선배가 슈트를 입은 모습이 너무 멋있는데, 풀샷이 안 나와서 아쉽죠.
최하나 감독/리틀빅픽처스 © 뉴스1
최하나 감독/리틀빅픽처스 © 뉴스1
-'애비규환'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다 매력적이에요. 어떻게 캐릭터를 구축했나요.

▶각각의 사람들이지만 영화 속에서 요약해서 설명하면 누구의 엄마, 아빠로만 나오는 사람들이기도 해요. 영화는 토일의 얘기가 중심이니까요. 그래서 단순히 엄마, 아빠로 소개되지만, 그 전형성을 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정한 엄마, 가부장적인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배우분들이 다들 알아서 잘해주셨죠. 고스족 토일이가 집에서 갈등을 빚을 때, 덕문 선배가 설거지를 하다가 뛰쳐나와요. 그런데 촬영장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거기에 거품까지 묻혀서 나오시더라고요. 덕문선배가 태효의 성격을 생각해서 미리 디테일하게 파악하신거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현장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 외에도 현아빠 태효가 항상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그건 제가 바라고, 제시하고 싶은 아빠 상이었어요. 호훈이네 부모 역시 전형적이었다면 토일이가 결혼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호훈이네 부모가 '쿨'하니까 가능했죠. 캐릭터 모두 뭔가 장치로 쓰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감독님도, 정수정씨도 서로 '아싸'(아웃사이더)라고 했다는데.(웃음)

▶수정씨와 두 번째 만났을 때 얘기하다가 혹시 '아싸'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자신이 아싸라고 해서, 저도 아싸라고 답했어요. 하하. 그러니까 수정씨가 저보고 처음에 보자마자 아싸인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나름 외향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는데.(웃음) 이런 게 잘 맞았나 봐요.

-90년대생, 젊은 연출가로서 현장에서 호흡하는 것은 어땠나요.


▶선배님들 만나기 전에 두려움과 부담감이 컸죠. 제가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유로 현장에서 저를 못 미더워하는 선배는 정말 한 분도 없었어요. 제가 혜진선배 처음 만났을 때, '봉준호 감독님 다음에 저와 하게 됐네요'라고 하니까, 혜진선배가 '저는 감독님 시나리오 보고 온 건데, 흔들리지 말고 감독님을 믿어라'고 하시면서 저를 설득했어요. 그 말을 듣고, 현장에서 몇 회차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졌고, 내가 이런 사람들과 작업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죠. 정말 편하게 촬영했어요.
최하나 감독/리틀빅픽처스 © 뉴스1
최하나 감독/리틀빅픽처스 © 뉴스1
-한예종 재학 당시 감독님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여성혐오적 영화를 찍겠다는 배우 구인 전단이 올라오자, 감독님이 그 바로 옆에 이러한 영화를 찍는 남성 감독의 영화를 찍겠다는 전단을 붙인 게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어요.

▶영화과 다니면서 제가 체구도 작고, 어려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무시당하기도 하다 보니 꽤 호전적이었죠. 하하. 전단 사건은 20대 초중반 때 일인데,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는 걸 봤어요. 물론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보면 조금 더 잘 얘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무언가를 모르면 배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분도 지금은 알았을 수도 있고요.

-과거 영화 현장 분위기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어요. 이번에 작업하면서 90년대생들이 현장에 참여해 달라진 부분이 있었나요.

▶제가 영화과 다닐 때만 해도, 선배들이나 동기들이나 여자 감독과 여자 스태프에 대한 근거 없는 반감이 분명히 있었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그들도 조심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장편영화는 처음이라 이번 현장으로 보자면, 90년대생 스태프도 있었고, 연출부나 제작부에도 또래가 있었고, 배우분들도 수정씨나 재휘씨처럼 90년대생이 있었는데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물론 연장자분들도 우리를 존중해주지만, 90년대생들은 부당함, 불평등, 무례함에 대한 즉각적인 거부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떠한 설득이 필요 없이 '그런 건 당연히 안 된다'라는 분위기요. 확실히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감각이 있다고 느꼈죠.

-토일이가 사실 보편적인 선택을 하는 캐릭터는 아니에요. 이런 모습을 통해 '애비규환'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을까요.

▶토일이가 보편적이지 않고 임신 역시 계획에 없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토일이의 선택으로 봤어요. 물론 토일이의 선택을 이해 못 하는 또래 여성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각자 나름의 이유로 우리는 다른 선택을 내리잖아요. 그런 선택에 대해 너무 무조건 적으로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 예정돼 있다고 보지는 않았으면 해요. 당연히 20대 초반에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일이지만, 저는 토일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보면서 '이런 가족도 있구나' 이렇게 느껴주셨으면 해요.


seung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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