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선트, 장기금리 낮추려 국채시장 개입…美 연준 독립성 논란
19년래 최고 금리에 장기채 바이백 2배 확대…연준 긴축 효과 상쇄 우려
시장금리 중시하는 워시와 충돌…측근 드러켄밀러도 "가격 관리·실수"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장기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한 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더 올려야 할지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재무부가 장기금리를 끌어내리면 금융여건을 완화해 통화긴축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주 1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장기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해 장기채 바이백(조기 환매)을 최소 2배 확대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최근 연준은 현재 금리가 물가를 잡기에 충분히 높은지를 놓고 내부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3명의 위원이 금리 인상을 요구하며 동결 결정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부의 바이백으로 장기 국채금리와 차입비용이 내려가면 연준의 긴축 효과가 약화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최근 3명의 연준 의장을 보좌했던 존 파우스트는 베선트의 개입이 장기금리와 차입비용을 낮추는 데 성공한다면 "FOMC의 거의 모든 사람을 금리 인상 쪽으로 더 밀어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신호 중시하는 워시…재무부 개입에 '엇박자'
이번 논란은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통화정책 접근법과도 맞물린다.
워시는 연준이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 말을 줄이고 시장가격에서 왜곡되지 않은 신호를 읽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에는 국채금리 상승을 채권시장이 스스로 금융여건을 긴축하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무부가 장기 국채시장에 개입해 금리를 끌어내리면 시장금리가 투자자들의 경제·통화정책 전망을 반영한 것인지 재무부 개입의 결과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파우스트는 정부의 자금조달 필요에 통화정책이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베선트의 말과 행동은 워시에게 정말 골칫거리"라고 평가했다. 잭슨홀 심포지엄 직전 바이백 확대를 발표한 데 대해서도 "상당히 사려 깊지 못하며 모욕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베선트와 워시는 정부에 합류하기 전부터 서로 잘 알고 지낸 사이로, 둘 다 유명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긴밀하게 일한 인연이 있다.
하지만 드러켄밀러조차 이번 바이백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이번 주 WSJ 기고에서 재무부의 바이백 계획을 "가격 관리(price management)"라고 규정하고 "40억달러라는 규모가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이번 바이백 확대는 방식과 시점도 이례적이었다.
2024년 시작된 바이백 프로그램은 당초 거래가 뜸한 기존 국채를 사들여 시장 유동성을 개선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난주에는 시장 기능에 뚜렷한 문제가 없었는데도 베선트가 장기금리 수준이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바이백을 확대했다.
WSJ는 이 같은 발언이 바이백의 초점이 시장 유동성 개선에서 장기금리 상승 억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발표도 재무부가 통상 부채관리 정책 변경을 공개하는 정례 분기 차입계획 발표가 나온 지 불과 2주 만에 이뤄졌다. 이에 장기 국채 발행 규모 축소 등 금리를 낮추기 위한 추가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베선트가 연준과 관련해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부터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통화정책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던 역대 재무장관들의 관행과 거리를 뒀다.
또 지난 3월 이후 총재 자리가 공석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차기 수장 인선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역 연은 총재들은 순번에 따라 FOMC에서 금리 결정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달 초 일본의 엔화 방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는 연준에 해외 중앙은행들이 달러를 더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일본이 엔화를 방어하기 위해 미 국채를 매각할 경우 국채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재무부는 이러한 조치가 연준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통화정책을 정부의 자금조달 필요에 종속시키려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재무부 대변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부채관리 결정이 전적으로 재무부의 재량이었다며 베선트 장관 아래 재무부가 "미국 납세자에게 가능한 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연방정부에 자금을 조달한다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러한 권한을 되찾고 있다고 밝혔다.
베선트 역시 국채 바이백이 통화정책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무부와 연준의 경계를 둘러싼 논란은 두 기관의 역사적 관계도 다시 주목하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준은 전쟁 자금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국채금리를 낮게 유지했다. 이 체제는 한국전쟁 당시 갈등 끝에 1951년 '재무부-연준 협정(Treasury-Fed Accord)'으로 종료됐으며 이 협정은 오늘날 연준 독립성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워시는 지난해 이 협정을 현대적으로 다시 쓸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제 워시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는 동시에 장기금리를 낮추기 위해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나선 베선트와 재무부를 마주하게 됐다고 WSJ는 전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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