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연내 김정은과 회담" 강한 의지…비핵화 목표 접을 심산

11월 中APEC 계기 추진…'핵무기 57개' 공개하며 핵보유국 인정하는 인상 줘
이란전 곤경서 '외교 이벤트' 노려…美전문가 "핵보유 현실 바탕 접근 합리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임기 때인 2018년 6월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합의문을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워싱턴=뉴스1) 이훈철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대북 유화 메시지를 내놓은 데 이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집권 2기 첫 북미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공개적으로 피력하면서 한반도 안보 시계가 빨라질 조짐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 총비서와 친분을 강조하고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하는 데는 거리를 두고 있어, 자칫 정상회담 성사 자체에만 집착할 경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만 인정해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올해 안에 김 총비서와 만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만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만남이 성사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임기 첫 북미 정상회담이자, 1·2기 임기를 통틀어 김 총비서와의 네 번째 정상회담이 된다.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르면 올가을 김 총비서와의 만남을 추진하도록 참모들에게 압력을 넣고 있다고 보도했다.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계기 아시아 순방에서 회동을 갖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최근 며칠 간 김 총비서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SNS 게시글과 직접 발언을 이어간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회담'이라는 구체적인 시간표까지 제시하며 북미 대화 재개에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미 연합훈련 대폭 축소'라는 대북 유화책까지 일방적으로 꺼내드는 무리수까지 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나는 김정은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현명한 대통령(트럼프)을 두는 한 그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 자신이 김 총비서를 잘 관리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파격 행보를 두고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복합적인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란 전쟁 장기화 등으로 외교·안보에서 곤경에 처하자, 한반도 문제에 전격 관여함으로써 대형 외교 치적을 올려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총비서와의 만남 자체를 성사시키는 데 주력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과 다시 관계를 맺으려는 과정에서도 당신의 목표는 여전히 비핵화인가. 첫 임기 때 성공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간 한미 정부는 여러 차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가 변함이 없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혀 온 점에 비춰보면 이 목표를 사실상 폐기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언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0일 취임 첫날부터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는 등 여러 차례 핵보유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북한이 "매우 강력한 핵무기 57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구체적인 숫자로 언급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자신이 북한의 핵탄두 보유 숫자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음을 드러내는 특유의 과시욕을 반영한 발언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무력 완성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됐다는 지적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보유를 전제로 한반도 비핵화 목표 대신 거래적 대북 외교를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외교 치적 만들기에 급급해, 북한이 원하는 '핵보유국' 인정을 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핵 보유를 현실로 인정한 상태에서 핵·미사일 감축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다.

빅터 차 미 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이날 워싱턴포스트(WP) 기고글에서 "이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 보유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협상과 위협 감축, 그리고 핵보유국 북한을 관리하는 실용적이고 타협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이중잣대로 부르는 건 적절치 않다. 두 핵 프로그램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은 합리적"이라며 "북한의 경우 이미 약 60개의 핵무기와 약 30개를 더 만들 만큼의 핵 물질, 여러 핵투발 수단을 가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 전환 논란과는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유화적 언행으로 인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앤드류 여 한국석좌는 이날 뉴스1에 "김 총비서가 트럼프의 제안을 무시한 1년 전보다 현재 더 유리한 협상 위치에 있는 반면, 트럼프의 위상은 약화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김 총비서가 만남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총비서는 비핵화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없음을 재확인할 것이고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추가 축소나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여 석좌는 다만 "한국 입장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미국이 한국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연합훈련, 주한미군 태세에 대해 양보하거나 북한을 영구적인 핵보유국으로 암묵적 승인할 경우 트럼프-김정은 중심의 프로세스에서 한국이 소외되는(sidelined)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 외교적 대화를 환영하되, 확장억제와 한미동맹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면서 평양과의 어떤 합의도 한국의 안보 이익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접근 방식을 취하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boazho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