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 우회로…'강제노동' 내세워 무효화된 관세 부활

사법부 제동에 '법적 근거' 갈아타기 반복…IEEPA에서 301조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07.20. <자료사진> ⓒ AFP=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강제노동'을 명분으로 한국 등 60개 경제권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각국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제대로 집행하지 않고 있다며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관세를 부과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제노동 문제는 명분일 뿐이며, 실질적인 목적은 연방대법원에서 무효화된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관세를 다른 법적 근거를 이용해 되살리는 데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24일 0시 1분부터 60개 경제권의 수입품에 10~1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보도했다. 이번 관세는 같은 시각 만료되는 기존의 글로벌 10% 관세를 대체한다.

표면적인 명분은 강제노동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외국 정부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대로 제정하거나 집행하지 않아, 관련 규정을 준수하는 미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설명에는 의문이 남는다. 이번 관세 대상에는 이미 강제노동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캐나다와 유럽연합(EU)도 포함됐다. 캐나다에는 10%, EU에도 10%의 관세가 부과된다.

미국 정부는 이들 국가가 관련 법률을 충분히 집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비판론자들은 강제노동 문제가 실제 관세 부과의 핵심 기준이라면 국가별 관세율이 왜 기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협상 결과와 사실상 일치하는지를 되묻고 있다.

피터 해럴 조지타운대 법학대학원 객원연구원은 캐나다와 EU, 중국 간 관세율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USTR이 강제노동 조사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 이론과 선호에 따라 부과하고 싶어 하는 관세의 구실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한마디로 "실제로 강제노동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부과의 법적 근거를 끊임없이 바꾸고 있다는 점도 의혹을 키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이른바 '해방의 날' 관세를 비롯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올해 2월 이 법을 이용한 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약 1600억 달러에 달하는 관세 수입을 환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1974년 제122조를 임시 대안으로 꺼내 들었다. 이 조항은 국제수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지만, 관세 부과 기간이 150일로 제한돼 있다. 이 역시 법적 도전에 직면했고, 지난 5월 연방 무역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가 법률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무역법 301조로 방향을 틀었다.

301조는 외국의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인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당시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에 이 조항을 활용했고, 법원에서도 여러 차례 법적 도전을 견뎌냈다.

문제는 이번에는 적용 범위가 전례 없이 넓다는 점이다. 특정 국가나 산업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을 이용해 수십 개 국가에 동시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

피터 해럴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301조 해석이 법률이 당초 의도한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그는 301조가 원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시정하도록 상대국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의 모든 수입품에 영구적인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론 와이든 상원의원도 의회 청문회에서 "트럼프의 다음 무역 구상은 강제노동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 아래 USTR에 불법적인 글로벌 관세를 재구성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행정부가 정말 강제노동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하고 싶다면 첫 단계는 미국 자신의 법 집행 기록부터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역시 노동권 보호와 강제노동 규제에서 완벽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은 거의 한 세기 동안 노예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해왔지만, 노동단체들은 교도소 노동 가운데 일부가 강압적인 조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이번 조치의 핵심은 강제노동이라는 명분 자체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데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제이미슨 그리어는 의회에서 "이번 행정부가 사용하는 구체적인 법적 권한은 바뀌었지만 무역 전략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산업의 재건과 미국 노동자 보호, 임금 인상,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관세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하나의 관세 부과 수단을 막으면 다른 법률을 찾아 관세를 다시 부과하는 방식이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에서 무역법 122조로, 다시 301조로 이어진 법적 우회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단순한 무역정책을 넘어선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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