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제재 뚫는 암호화폐…"北·러·이란 등에 지난해 '150조' 유입"
전년 대비 유입 액수 '8배'…WSJ "이란·러시아 대금지불 우회로"
-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이정환 기자 = 미국의 국제 제재 대상국인 이란, 러시아, 북한 등이 제재 회피를 위해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용을 급격히 늘리면서 지난해 암호화폐 유입 규모만 약 1000억 달러(약 153조 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블록업체 체이널리시스를 인용해 미국의 제재 대상과 연결된 암호화폐 주소가 지난해 1000억 달러 이상을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지난 2024년 수령한 금액의 거의 8배에 달하는 액수다.
최근 미국 당국자들은 적대 국가에서 암호화폐가 제재 회피 수단으로 인기를 끌면서 추적에 애를 먹고 있다. 암호화폐 산업 대부분이 규제되지 않고, 거래가 익명으로 이뤄져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최근 미국이 지정한 테러단체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암호화폐로 기부금을 요청해 오는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FBI가 자금 압류를 위해 제출한 법원 서류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한 FBI 요원이 텔레그램에서 우연히 하마스의 요청을 발견하면서 노출됐다.
이 요원의 정보원이 제공된 이메일로 연락하자, 하마스는 일반 화폐를 암호화폐로 환전해 주는 송금사무소를 방문한 뒤 창구 직원에게 돈을 보낼 지갑 주소를 제공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하마스가 기부금 유치에 사용한 8개 지갑은 2주일 동안 7만 달러(약 1억 700만 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FBI는 전했다.
이란에서도 자국 화폐 리알화 가치 하락과 서방의 제재 속에서 일반 시민들의 송금·저금 수요에 힘입어 최근 몇 년 동안 수십 개의 가상화폐 거래소가 생겨났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역시 석유 판매 대금을 받기 위해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러시아 은행들의 국제금융시스템 접근이 차단된 뒤, 암호화폐 사용에서 더욱 정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제재 대상인 몰도바 올리가르히 일란 쇼르 소유 기업과 러시아 국영 은행 프롬스비야지방크가 합작해 제작한 루블화 연동 토큰 'A7A5'는 다른 암호화폐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루블화 해외결제 제한을 우회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A7A5는 총 900억 달러(약 124조 원) 이상의 거래를 처리한 것으로 추정됐다. A7A5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의 교환 과정에서 중국 드론 공급업체로 대금이 지급된 정황도 감지다.
제재 대상 기업이 수출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제3국의 암호화폐 지갑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미국 검찰은 러시아와 기타 국가 고객들을 대행해 미국 금융시스템을 통해 5억 달러(약 7650억 원) 이상을 이동시킨 혐의로 미국 거주 러시아인 유리 구그닌을 기소했다.
구그닌은 자신의 암호화폐 계좌에 상당의 장비 구입 대금을 지불하려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의 공급업체로부터 100만 달러(15억 3000만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받았다.
구그닌은 거래소를 이용해 암호화폐를 달러로 환전, 뉴욕의 한 은행에 있는 자신의 회사 계좌에 입금한 뒤, 한국 소재 아시아 기업의 은행 계좌로 100만 달러를 송금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당국은 대형 거래소 노비텍스 등 이란 거래소 4곳을 제재하고 러시아를 지원한 혐의로 대형 거래소 HTX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분석 기업 TRM 랩스의 정책 책임자인 아리 레드보드는 "이 플랫폼들을 폐쇄한다고 해서 그 아래에 있는 구조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난해 이란과 러시아는 일회성 가상화폐 거래에서 벗어나 계층화된 제재 회피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단계로 이동했다"고 WSJ에 전했다.
jw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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