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스로 만든 안보전략도 저버린 이란전쟁 [최종일의 월드 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이란 전쟁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2026.04.01 ⓒ 로이터=뉴스1 ⓒ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이란 전쟁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2026.04.01 ⓒ 로이터=뉴스1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정책 기조는 얼핏 그럴듯하다. "실용적이되 실용주의자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적이되 현실주의의 틀에 갇히지 않으며, 원칙을 지키되 이상주의에 치우치지 않는다. 매파처럼 호전적이지 않으나 강인하고, 비둘기파처럼 유약하지 않으나 절제되어 있다."

공자의 중용(中庸) 철학을 언뜻 연상시키는 이 문구는 지난해 11월 백악관이 발간한 미국의 최상위 전략 지침서인 '국가안보전략(NSS)'에 실제 명시돼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이념적 가치를 벗어던진 거래적 현실주의의 표방이자, 예측 불가능성을 무기로 삼아 오직 미국의 국익만을 추구하겠단 선언으로 보아도 된다.

그렇다면, 지난 2월 말 시작된 이란 전쟁에서 미국이 보여준 행동은 과연 NSS가 내세운 이상적 원칙과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

첫째, '유연한 현실주의(Flexible Realism)'의 실종이다. NSS는 상대의 체제를 인정하고 민주주의를 강요하지 않으며 실질적 상업 이익을 추구한다고 정의했다. 이는 트럼프의 '마가(MAGA)'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실제 이란 전쟁은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강압적 현실주의로 변질됐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만족시키고 군사 작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결정적 승리가 필요해지자, 미국은 '최대 압박' 전략에 매몰됐다. 그 결과 부분적 타협조차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정치적 이해득실 앞에서 외교 원칙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둘째, 명분과 행동이 따로 노는 '비개입주의'다. NSS는 모든 국가가 독자적이고 평등한 지위를 가질 권리가 있다면서, 개입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전장의 미국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때 이번 군사 행동의 목표가 "이란 국민의 자유에 있다"며 사실상 정권 교체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전황이 급박해지자 그는 "그런 목표를 설정한 적 없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수사가 후퇴했음에도 군사적 타격은 이란 심장부 깊숙이 이어졌고, 명분과 실천의 괴리는 극에 달했다. 여기에 원하지 않았지만 정권 교체가 사실상 이뤄졌다는 엇갈린 메시지까지 더해지며 혼란이 심화됐다.

NSS는 '국익의 명확한 정의'도 원칙으로 내세웠는데 전쟁의 최종 목표가 불분명하다 보니, 미국이 피를 흘려 무엇을 얻으려는 지조차 모호한 상황이다.

셋째, '힘을 통한 평화'의 역설이다. 압도적 우위로 침략을 저지하겠다는 이 전략은 오히려 적대국들의 반발과 새로운 저항 수단을 낳았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무기화했다. 미국의 힘이 평화를 가져오기보다, 상대에게 더 정교한 저항 수단을 고안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략의 실패다.

넷째,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의 자가당착이다. NSS는 "지배적 적대 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해 동맹과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나토(NATO) 탈퇴를 강력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서양 동맹은 유례없는 위기에 처했고,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은 이란에 맞서 미국과 연대하고 있으나, 동시에 미국의 안보 보장에 대한 의존을 재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NSS는 미국이 지난해 6월 '미드나잇 해머' 작전을 통해 "이란의 핵농축 능력을 완전히 말소(obliterated)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능력 불능화를 목표로 계속 내세우고 있다.

또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주요 해상로를 통한 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포함해 중동에서의 핵심 이익을 계속해서 보호할 것"이라고도 했지만, 트럼프는 1일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해협 봉쇄를 방치한 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다.

트럼프 외교는 NSS가 내세운 원칙과 현실 사이의 거대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유연한 현실주의는 강압으로, 비개입주의는 깊숙한 개입으로, 힘을 통한 평화는 새로운 긴장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여전히 막강한 힘은 지녔지만, 원칙 없는 힘은 전략이 아니라 국가적 부담이 될 뿐임을 이번 전쟁을 보여주고 있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