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터닝포인트] 밋밋하고 지루한 것들은 이제 그만
‘조용한 럭셔리’는 이제 옛말이고, 이제는 ‘시끄러워지는 것’이 대세가 됐다.
내가 생각하는 맥시멀리즘(Maximalism, 과도하거나 극단적인 것을 추구하는 예술 경향)은 단순히 이것저것 더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보여주는 방식이다. 좀 과하고 아방가르드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건 곧 내 진짜 감각을 표현하는 길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맥시멀리즘을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의도를 안다. 맥시멀리즘은 색깔, 질감, 생동감, 그리고 큰 실루엣을 통해 개성을 만드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세상에 ‘내가 누구인지’를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젠더 플루이드(성 정체성이 고정적이지 않고 물, 공기처럼 유동적으로 전환되는 젠더)’ 의류 디자이너로서, 나는 맥시멀리즘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이는 모든 몸, 모든 젠더, 모든 상상력을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 덕분에 우리는 진정한 ‘나’에 가까워지고, 그것을 세상과 나눌 수 있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은 깊이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고 믿는다. 꾸밈없는 진솔함과 투명성, 즉 가공되지 않은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SNS 피드 속에서, 이런 탐색은 홍보 회사가 만들어낸 완벽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에서 벗어나려는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제 진정성을 향하고 있다.
내가 만드는 옷들은 물리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공간을 차지하도록 디자인됐다. 절대 숨거나 겸손하지 않고, 군중 속에 섞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당당하다.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는 이와는 정반대다. 아주 비싼 스웨터라는 것을 알아볼 소수의 사람에게만 당신의 지위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고급스럽긴 하지만, 그 옷이 말해주는 것은 단지 ‘돈이 많다’는 것일 뿐, 당신의 열정을 나타내지만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건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의 맥시멀리즘은 반항심을 드러낸다. 훨씬 더 접근하기 쉽고, 브랜드 라벨이 아니라 유쾌함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사람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세상에서, 남들과 섞여 들어가는 것은 침묵하는 것과 불편할 정도로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가 당연히 차지해야 할 공간을 위해 싸우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옷을 밝고 대담하게 입는 것은 더 이상 스타일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이 당신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방법이다.
역사적으로도 패션과 의복을 보면,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했다. 비싼 직물은 물론, ‘많을수록 좋다(more is more)’는 접근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영감을 얻으려고 역사 속 초상화를 즐겨 본다. 그것이 바로 맥시멀리즘의 정수다.
레이스 주름 장식(러프), 금실 브로케이드, 진주 귀걸이, 실크 타이츠, 메달, 담비 망토를 걸친 엘리자베스 시대 궁정 사람들을 보라. 과하다고? 아니, 부족하다! 심지어 보석 박힌 남성용 거시기 주머니(codpiece)까지 추가했다. 정말 상징적이다. 맥시멀리즘의 촉각적인 특성에는 점점 더 디지털화되는 우리 삶에 대한 강력한 해 독제 역할을 하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스크린의 깔끔한 편리함을 통해 세상을 보며 편안하고 고립된 생활에 익숙해졌다. 내가 고객을 위해 드미 쿠튀르(준 맞춤복) 드레스를 만들 때, 그것은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좋은 예는 내가 친한 친구 데미 무어를 위해 2024년 멧 갈라에 맞춰 만든 가운이다. 그것은 사랑과 손으로 하는 노동의 결실이었다. 영국의 회사 프로멘탈(Fromental)에서 보관하던 벽지에서 따온 멋진 꽃 장면을 만들기 위해 수천 시간을 손으로 수놓아야 했다.
우리는 그 꽃들을 검은색 공작 깃털과 풍부한 실크 벨벳의 질감과 나란히 놓았다. 런던 스튜디오 팀이 이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들었다. 이는 옷걸이에서 쉽게 고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고객들이 이즐겁고 노동 집약적인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를 되찾기를 원한다.
창작을 통한 이러한 자기 발견의 여정은 내가 어릴 때 처음 경험했던 것이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에서는 비디오 게임이나 TV가 허용되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가서 연극을 해봐, 작은 공연을 해봐”라고 말했다. 나는 아홉 살 때 손님방의 금색 커튼을 꿰매고 걸쳐서 토가 같은 가운을 만들었다. 그 작은 공연들 속에서 나는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았다.
나는 지금도 이런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획일성에 반항하며 “나는 남들과 똑같이 보이고 싶지 않아. 나는 나의 모든 복잡함을 담아 나처럼 보이고 싶어”라고 말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 외에도, 집을 꾸미는 방식 역시 맥시멀리즘이 대세가 되는 또 다른 영역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차고 8개, 침실 14개짜리 집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가진 공간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런던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작은 공간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내 침실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내가 ‘나의 퀴어 숲(queer forest)’이라고 부르는 것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진한 푸크시아, 탄 오렌지, 인디고 색상의 이끼 낀 숲이 펼쳐지고, 손으로 그린 물결무늬 실크 벽지에는 복잡하게 손수 수놓은 벌과 제비가 푹신하게 박혀 있다.
이 벽지는 파란색 래커 칠을 한 천장 아래에서 만난다. 그 위로는 야생의 섬세한 꽃들로 된 무라노 유리 샹들리에가 춤추고 있다.
이렇게 풍부한 질감, 색상, 색조로 나를 둘러싸는 것은 즉시 나를 넘치는 활기의 공간에 놓이게 하고, 나는 의도를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환상적인 삶을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내 집에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기를 원한다.
맥시멀리즘은 사람들이 “이게 멋져 보이나?”라고 묻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질문은 “이게 나다운 느낌인가?”여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이 “그렇다”이고, 그 모습이 가장 멋진 방식으로 시끄럽고, 거칠고, 과장될 때, 나는 바로 그곳에서 미래를 본다. 나는 그곳에 있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를 더 작고, 더 조용하고, 더 소화하기 쉽게 만들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일은 온전히, 당당하게, 그리고 지독하고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 위 내용은 뉴욕타임스(NYT)가 발간하는 새해 전망서 '터닝 포인트 어젠다 2026(이하 '터닝 포인트')'에 수록된 '(기사 제목)'의 기사다. 다채로운 콘텐츠로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혜안을 제공하는 '터닝 포인트'는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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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터닝포인트: 2025년 글로벌 런웨이 시즌은 맥시멀리즘으로의 거대한 전환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컬렉션에서는 과장된 질감과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극적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