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미국 여행 떠나고 싶나요 [최종일의 월드 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료사진> ⓒ AFP=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올 여름 휴가 때 미국을 다녀올까 잠시 생각하다 바로 마음을 접었다. 앨리샤 키스가 매력적인 보이스로 '뉴욕'을 외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 그리고 아련한 감정을 남기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뿜어대는 미국이란 나라의 매력이, 극심한 불안정과 혼란으로 점철된 최근 미국의 모습에 완전히 지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암살 시도를 비롯해 보수 운동가 찰리 커크와 미네소타 주의회 멜리사 호트먼 하원의원 부부 피격 사망,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피살,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관저 방화사건 등은 갈등과 분노가 터져 나오면서 정치 테러와 공포가 만연했던 1960년대로 미국이 되돌아 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

불법 이민자 단속 강화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됐다고 주방위군과 해병대를 LA에 배치한 모습은 중남미 빈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소셜미디어로 쏟아내는 뾰족한 발언과 정책은 2021년 1월 미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의견이 다른 세력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정치의 양극화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트럼프의 정치가 1기 때를 넘어 만개하고 있다.

우려의 시선이든, 조소의 시선이든 미국의 이미지 추락은 분명하다. 미국의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대한 호감도와 비호감도는 지난해에 각각 54%, 31%였지만 올해는 두 항목 모두 49%로 같았다. 호감도는 5%포인트(p) 하락했고, 비호감도는 무려 18%p 치솟았다. 미국이 관세로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멕시코에서 호감도가 32%p 빠졌고, 비호감도는 36%p 급등했다.

한국은 지난해에 77%였던 호감도가 61%로 떨어졌고. 비호감도는 19%에서 39%로 뛰었다. 이 조사는 올 봄에 진행됐기 때문에 비호감도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한국인 노동자 대규모 체포·구금 사태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관세 폭탄과 대미 투자 3500억 달러 선불 압박은 큰 실망과 우려를 낳았기 때문이다.

브랜드로서 미국의 평판도 덩달아 크게 나빠졌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기업 웨버샌드윅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해외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행정부와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거나 주요 정치 문제에 빠르게 개입하는 기업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유럽에서 테슬라의 판매 부진을 사례로 들었다. 파리에 본사를 둔 여론조사 기업 입소스 조사에서도 미국 브랜드는 구매 의도와 신뢰도 항목에서 평판이 크게 하락했다.

미국의 이미지 추락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MAGA)'면서 채택한 '미국 우선주의' 기조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경제적 번영을 회복하고 국제적 위상을 재확립하자는 취지이다. 미국의 국제적 위상 하락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 세계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차 대전 이후엔 40% 이었지만 지금은 25% 내외로 크게 낮아졌다. 중국은 17~18%로 미국을 바짝 추격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중인 외환보유액에서 미국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1세기가 시작됐을 때 70%였지만 현재는 60%선이 무너진 상태다.

일방주의 기조가 저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특정 국내 목표를 달성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국제적 리더십 약화와 경제적 비효율성이라는 상충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위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군사력이나 경제력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조지프 나이 주니어 전 하버드 케네디 스쿨 학장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강제적 수단이 아닌, 매력과 설득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국가의 문화와 정치적 가치, 그리고 외교 정책의 매력에서 발생하는 힘이 군사력이나 경제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5월 타계한 그는 3월 언론 기고문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외교 정책에서 소프트 파워가 어떤 가치라도 가진다는 생각을 거부한 첫 번째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 민주주의는 트럼프의 4년을 견뎌낼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가 파괴한 것을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향후에)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