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이어 바브엘만데브까지…후티 진격에 중동전선 확대
예멘 후티, 이란 지원 속 모카·하니시 확보…"전쟁의 중요 이정표"
사우디·美, 확전 부담에 대응수위 조절…'이중 초크포인트' 우려
- 장용석 기자, 김경민 기자,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장용석 김경민 윤다정 기자 = 미국·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선박 통항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 남부 항구도시 모카를 장악하면서 중동의 또 다른 핵심 해상 교통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에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후티의 모카 장악이 곧바로 이 해협 통제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홍해 연안을 따라 남진한 후티가 해협에 군사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전진 거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브엘만데브는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좁은 해협으로서 수에즈운하를 거쳐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핵심 해상 교통로다. 모카는 바브엘만데브 해협 페림섬(마윤섬)에서 북쪽으로 약 80㎞ 떨어져 있다.
11일 AFP·로이터통신과 CNN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모카를 장악한 후티는 홍해 남단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하니시 제도까지 세력을 넓혔다.
이에 예멘 정부군과 사우디아라비아 지원 세력은 현재 두바브와 페림섬 일대에 병력을 보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이 방어선까지 밀릴 경우 후티는 미사일·드론 등 비대칭 전력을 이용해 해협을 오가는 선박에 훨씬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후티가 해협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점령하지 않더라도 상선들이 통항을 꺼릴 정도의 위험을 조성하는 것만으로 역내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후티의 이번 공세는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이란의 긴밀한 지원이나 협의 속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역내 소식통들을 인용, 이란이 최근 후티에 사우디 공격을 확대하도록 요구하면서 무기와 자금, 인력을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예멘 군 소식통들도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해외 특수부대 쿠드스군 고위 지휘관 압돌레자 샬라이가 이번 작전을 지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측은 모카 진격 자체에 대해선 후티의 독자적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란 정부 관계자는 후티의 공격이 유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미국과 사우디를 압박한다는 점에서 이란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평소에도 전략적 가치가 크지만 지난 2월 말 미·이란 간 전쟁이 시작된 후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 호르무즈 해협 마비로 현재 중동산 원유와 석유제품 일부가 홍해 방면으로 우회 운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역시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동서 송유관을 이용해 원유를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옮겨 수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불안해지면 중동의 두 핵심 해상 병목 구간이 동시에 흔들리는 이른바 '이중 초크포인트'(dual-chokepoint) 위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얀부에서 홍해를 거쳐 아덴만으로 빠져나와 아시아로 향하는 사우디 원유 수송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아시아·유럽을 오가는 선사들도 홍해와 수에즈운하 항로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할 경우 운항 기간이 열흘 이상 늘어 운임과 보험료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즉, 후티의 남진은 단순히 예멘 내전 전선이 이동하는 문제를 넘어 이미 불안정해진 글로벌 에너지·물류망에 새로운 위험을 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와 미국 모두 확전 부담 등을 의식한 듯, 후티를 적극 저지하진 못하는 모양새다.
예멘 정부는 앞서 후티가 모카를 향해 진격하자 사우디 측에 수도 사나를 비롯한 후티 거점과 유류 저장고 등 주요 전략 자산에 대한 공습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예멘 정부군에 대한 물류와 무기, 정보 지원을 이어가면서도 공습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자우프·마리브주 북부 전선에 제한했다.
예멘 관계자들은 사우디가 후티의 드론·미사일 보복으로 자국 영토와 에너지 시설이 다시 공격받을 가능성을 우려해 확전을 피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미국은 최근 사우디에 100명 이상의 군사고문을 배치해 후티를 겨냥한 작전에 정보와 표적 선정 등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전장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는 표적 지정 도구와 지리 공간 정보도 사우디에 제공하고 있다고 CNN이 전했다.
그러나 미군은 사우디의 후티 공습에 참여하거나 전투기에 공중급유를 제공하는 등 작전에 직접 개입하진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미 6개월을 넘어 7개월째로 접어든 이란전으로 미군의 역내 전투 역량에 상당한 부담이 누적된 데다, 호르무즈 해협 주변 작전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홍해에 또 다른 전선을 펴기가 쉽지 않단 판단 등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경험도 미국을 신중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국은 2015년부터 이어진 사우디 주도 예멘 군사작전을 지원했다가 대규모 민간인 피해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후티가 이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남진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확전을 꺼리고 미국도 직접 개입을 자제함에 따라 향후 전황은 당분간 후티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후티가 실제로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에 나서거나 국제 상선을 대규모로 공격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미국이 현재와 같은 간접 지원에만 머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경우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란 두 해역에 동시에 군사력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는 이란과의 장기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미군 전력과 탄약, 방공 역량을 한층 더 분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예멘 분석가 아흐메드 나지는 "후티의 서부 해안 공세가 단기간에 준비한 작전이 아니다"며 이들의 모카 장악을 전쟁의 중요 이정표로 평가했다.
현재 호르무즈에선 미국·이란이 직접 대치하고 홍해와 예멘에선 후티와 사우디가 충돌하는 가운데, 그 배후에선 이란과 미국이 각각 무기와 정보,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복수의 전선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특히 이들 전선은 서로 연결돼 있으면서도 각자 독자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향후 미·이란이 휴전에 합의하더라도 후티와 사우디 간 충돌이나 예멘 내전까지 자동으로 멈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결국 모카 함락의 가장 큰 의미는 미·이란 간 전쟁이 더 이상 양국 간 직접 충돌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km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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