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美장기금리 상승세 금방 안끝나…초저금리 시대 끝나가"

30년물 장중 5.33%, 2007년 후 최고…이란전쟁·재정적자·AI 회사채 동시압박
美 세입 5달러 중 1달러 이자로…WSJ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시대의 정상화"

뉴욕증권거래소 ⓒ AFP=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19년 만에 최고로 치솟으면서 월가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졌던 초저금리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란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부터 막대한 미국의 재정적자, 인공지능(AI) 투자를 위한 기술기업의 회사채 발행까지 채권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겹치며 어느 하나도 단기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글로벌 채권 매도세가 정부와 기업, 가계의 차입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월가는 이 매도세가 조만간 끝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

월가가 주목하는 것은 높은 장기금리가 일시적 현상이 아닐 가능성이다. 이란 전쟁과 재정적자, AI 투자에 따른 자금 수요에 경제의 예상 밖 회복력까지 어느 하나 단기간에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당연하게 여겨졌던 저금리 환경 자체가 바뀌고 있을 수 있다.

30년물 5.33% 돌파…"기본적으로 정상화"

이날 미국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5.33%를 넘어 2007년 이후 19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이후 상승폭을 일부 축소해 5.28%대로 내려왔다. 10년물 금리는 4.70% 수준에서 거래됐다.

미국뿐 아니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2.955%까지 올라 3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고 독일 10년물 금리는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상승했다. 영국 30년물 금리도 5.858%까지 올랐다.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시장에서 이러한 채권 약세의 원인은 하나로 꼽기 어렵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데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AI 투자 붐에 따른 기술기업들의 회사채 발행까지 동시에 채권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

WSJ는 특히 높은 금리에도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하게 버티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과거에는 현재와 같은 금리 수준이면 경제성장이 크게 둔화하고 결국 금리가 다시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강했지만, 경제가 높은 금리를 견뎌내면서 장기채를 서둘러 매수해야 할 이유가 약해졌다.

이에 최근 상황을 금융위기 이후의 비정상적으로 낮았던 금리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로버트 팁 PGIM 크레디트 최고투자전략가는 WSJ에 "기본적으로 이것은 정상화"라고 말했다.

2008~2009년 금융위기가 초저금리 시대의 시작이었다면 지금은 그 이전과 비슷한 환경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가 당장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장기금리가 더 오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장기채를 매수하려면 그만큼 높은 수익률(금리)을 요구하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케빈 워시 신임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 취임식에서 워시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2026.05.22. ⓒ 로이터=뉴스1
美 세입 5달러 중 1달러가 이자로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재정이다. 미국의 일반 국민이 보유한 연방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00%에 달해 2차 세계대전 직후 기록한 사상 최고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부채가 불어난 상황에서 금리까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현재 연방정부 세입 5달러 가운데 거의 1달러가 이자 지급에 들어간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연방정부의 순이자 비용이 지난 50년간 GDP의 평균 2.1%였지만 올해 3.3%로 높아지고 2036년에는 4.6%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전망이 현재보다 낮은 금리를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CBO의 기존 전망에는 10년물 국채금리가 4.1% 수준이라는 가정이 반영됐지만 현재 금리는 4.7% 안팎이다.

CBO 추산에 따르면 시장금리가 기존 전망보다 0.1%포인트만 높아져도 순이자 비용은 3790억달러 추가된다.

마이클 스트레인 미국기업연구소(AEI) 경제정책연구 책임자는 "문제는 금리가 오르는 것 자체라기보다 재정적자"라며 "한 가지에만 우려해야 한다면 향후 10년간의 재정적자 전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높아진 금리가 정부의 이자 부담을 늘리고,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늘어난 국채 공급이 다시 금리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에 대한 우려인 셈이다.

실제 최근 미국채 입찰에서도 정부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크게 높아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10년물 국채 입찰금리는 4.683%로 19년 만에 최고였고 30년물 입찰금리는 5.216%로 25년 만에 가장 높았다.

AI 투자도 금리 밀어올려…美정부와 빅테크 자금 경쟁

AI 투자 붐이라는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국채와 회사채가 채권 투자자의 자금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WSJ는 이란 전쟁과 재정적자뿐 아니라 기술기업들이 쏟아내는 회사채가 채권 펀드의 자금을 놓고 미 국채와 경쟁하는 것도 최근 금리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자금조달 경쟁까지 겹치면서 채권시장의 공급 부담이 커지고 있다.

결국 미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찍는 동시에 실리콘밸리에서는 AI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해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양쪽이 같은 채권 투자자의 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28일(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05.28 ⓒ 로이터=뉴스1
베선트 움직였지만 금리는 상승…"정책 수단 한계"

채권금리 상승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도 부담이다. 미 국채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각종 가계·기업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추겠다고 공언해왔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역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기 재정적자를 줄여 10년물 국채금리를 끌어내리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WSJ는 최근 베선트 장관의 움직임 가운데 일부도 국채금리 추가 상승을 억제하려는 노력과 연결해 해석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이다. 미국이 일본의 엔화 방어를 지원하면 일본이 환율 방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미 국채를 매각할 필요성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장기금리는 계속 상승했다. 잭 그리피스 크레디트사이츠 투자등급·거시전략 책임자는 지금까지 재무장관의 조치가 기대했던 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 역시 금리 상승이 지속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당장 채권시장 충격이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번진 것은 아니다. 기업 실적이 견조한 가운데 뉴욕 증시는 최근까지 사상 최고 수준 부근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18일에는 금리 부담이 주식시장으로 번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나스닥종합지수는 1.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0.7% 하락했다. 특히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구성 종목 30개가 장중 일제히 하락했고 지수는 지난 6월22일 사상 최고 종가에서 약 19% 밀렸다.

키스 러너 트루이스트 어드바이저리서비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강력한 기업 실적 덕분에 시장이 지금까지 금리 상승을 무시할 수 있었다면서도 실적 시즌을 지나면서 "금리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