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변호사 출신' 파월의 항전 선포…2028년까지 이사 잔류 의미

트럼프의 개인적 모욕엔 침묵했지만 법무부 소환에 정면 대응
5월 임기 만료 후에도 트럼프 2기 내내 연준 독립성 사수 의지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매리너 S. 에클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본부 건물에서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이 건물의 25억 달러 규모 보수 예산 집행 과정과 관련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했다. 2026.01.12 ⓒ AFP=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워싱턴 정가와 월가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파월 의장은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차별적 인신 공격성 발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법무부가 파월 의장에게 소환장을 발부해 형사 기소 위협을 가하자 파월 의장은 사실상 '결사 항전'을 선언했다. 파월 의장은 올해 5월 임기가 끝나도 2028년까지 연준 이사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트럼프의 연준 장악 전술이 오히려 역풍을 맞고 또 다시 물러설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월가 변호사' 출신의 파월 역공…의장 물러나도 2028년까지 이사직 고수할 듯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경제 매체에 따르면 파월 의장이 오는 5월 의장 임기가 끝나더라도 2028년 1월까지 남은 연준 이사 임기를 모두 채우며 잔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분석이 월가와 워싱턴 정가에서 힘을 받고 있다.

파월 의장은 매우 이례적으로 일요일이었던 11일 저녁 영상 성명을 통해 법무부의 소환장 발부 소식을 전하며 통화 정책이 "정치적 위협이나 압박이 아닌 경제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법무부의 소환장 발부를 단순한 수사가 아닌 연준이라는 헌법적 기관에 대한 파괴 시도로 규정하고 정면 대응하겠다는 선언이다.

주목할 점은 파월이 경제학 박사가 아닌 월가의 투자은행(IB)과 법조계를 거친 노련한 '변호사'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바보", "고집불통"이라고 조롱할 때만 해도 묵묵히 통화정책에만 집중해 왔다.

하지만 법무부가 연준 본부 건물 보수 비용 등 엉뚱한 문제를 트집잡아 형사 기소 위협을 가하자,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전략적 대응에 돌입했다는 것이 월가와 워싱턴 정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로 파월은 단순한 연준 수장을 넘어 미국의 법치주의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수호하는 '상징적 인물'로 격상될 수 있다. 만약 그가 2028년까지 연준 이사로 남게 된다면, 트럼프 행정부 2기 내내 백악관의 통화정책 개입을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윌콕스 전 연준 고위 관리는 FT에 "이번 수사 발표로 파월이 5월에 떠날 확률은 거의 제로(0)에 가까워졌다"며 "그는 이제 기관에 닥친 위협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법적으로 공격한 것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특히 트럼프가 가장 선호하는 차기 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인준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블룸버그의 소식통들은 이번 소환장 발부에 따른 상당한 역풍을 예상하며 비난의 화살이 연준 공격을 주도해 온 빌 풀테 연방주택금융청장에게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소환장에도 신고가 쓴 뉴욕 증시… 시장은 왜 '타코(TACO)'에 베팅했나

이날 뉴욕 증시가 파월 악재에도 사상 최고를 경신한 것 역시 트럼프의 후퇴, 이른바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 베팅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타코 트레이드란 과거 트럼프의 관세 위협 당시 투자자들이 "결국 트럼프가 경제 파국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위협에서 물러설 것"이라고 베팅하며 하락시 저가 매수에 나섰던 행태를 뜻한다.

특히 파월이 일요일 저녁에 영상 성명까지 내면서 강하게 반발한 점은 자신의 전문 영역인 법률을 동원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시장에 안겨줬다는 설명이다.

또 트럼프가 연준의 독립성을 완전히 무너뜨려 장기 금리가 폭등하는 사태를 원치 않을 것이며, 결국 그가 이번에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고 시장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뉴욕증시의 간판지수 S&P500은 사상 처음으로 6900선을 넘기며 신고점을 새로 썼다. 장기 금리도 약 2bp 상승하는 데 그쳤고 10년물 국채 입찰 또한 견조한 수요를 보이며 시장 금리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서 낙찰됐다.

DWS 아메리카의 채권책임자인 조지 카트람본은 채권 수익률이 급등하지 않은 데 대해 타코 트레이드를 언급했다.

그는 블룸버그에 "행정부는 장기 금리가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연준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는 정확히 금리를 올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따라서 시장은 여전히 트럼프가 '레드 버튼'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shink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