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위험 90%' 희귀 유전자 남성 정자 퍼졌다…197명 출산, 일부는 사망
TP53 유전자 돌연변이로 확인…리프라우메니증후군 유발
14개국 67개 클리닉서 사용…60세 이전 암 발병 확률 90%
- 소봄이 기자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암 발병 위험 증가와 관련된 희귀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정자 기증자가 유럽 전역에서 최소 197명의 아이를 낳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암으로 사망했다.
11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해당 기증자는 리프라우메니증후군(Li-Fraumeni syndrome)을 일으키는 TP53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었다. 이 증후군은 암 발병 위험을 크게 높이는 희 질환이다.
조사에 따르면 이 남성은 자신이 이러한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정자를 기증했다. 당초 이 남성의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는 유럽 8개국에서 최소 67명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최근 영국 BBC를 포함한 14개 유럽 공영방송사가 정보공개 청구와 의사·환자 인터뷰를 통해 파악한 결과, 현재까지 이 기증자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는 최소 197명으로 추정된다.
BBC는 "모든 국가의 자료가 확보된 것이 아니라 최종 피해 아동 수는 더 많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덴마크의 민간 정자은행인 유럽 정자은행(ESB)에 단일 기증자로 등록했지만, 그의 정자는 이후 14개국 67개 클리닉에서 사용됐다. 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해당 돌연변이를 유전 받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는 돌연변이를 유전 받은 사람 중 실제로 평생 암을 피해 갈 수 있는 비율은 극히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따르면, 이 질환을 가진 사람은 60세까지 암 발병 확률이 90%, 40세 이전 암 발병 비율은 약 50%에 이른다.
앞서 지난 5월 프랑스 루앙대학병원의 생물학자 에드위즈 카스퍼는 유럽 인간 유전학회 연례회의 발표에서 이 남성의 정자로 태어난 67명의 아동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카스퍼는 "그중 10명은 뇌종양, 호지킨 림프종 등 암 진단을 받았고, 또 다른 13명은 돌연변이를 지녔지만 아직 암이 발병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은 암 발병 위험이 높아 정기적인 의료 검진이 필요하다. 향후 이 아이들이 자기 자녀에게 돌연변이를 전달할 확률도 50%"라고 덧붙였다.
런던 암연구소의 클레어 턴불 암유전학 교수는 CNN에 "리프라우메니 증후군 진단을 가족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이라며 "평생 암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고, 어린 시기 발병 가능성도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또 턴불 교수는 "1만명 중 1명도 되지 않는 희귀 유전질환의 돌연변이를 가진 정자의 기증과 그 정자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출산에 사용됐다. 이번 사례는 이러한 두 가지 극히 드문 상황이 우연히 겹친 결과"라고 주장했다.
유럽 정자은행 대변인 줄리 파울리 부츠는 "이번 사건과 희귀 TP53 돌연변이가 여러 가족과 아이들, 그리고 기증자에게 미친 영향에 깊은 유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부츠는 "ESB는 과학적 기준과 법률에 따라 모든 기증자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고 개별 의료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단일 기증자를 통해 태어나는 아이 수에 제한을 두자는 요구에 동의한다"고 했다. 동시에 "관련 법류는 매우 복잡해 고려해야 할 요소도 많고 국가마다 규정의 적용 방식이 크게 다르다. 따라서 유럽 차원의 공통적이고 투명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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