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지키다 희생된 엄마, 예비신부 두고 떠난 소방관…눈물바다 홍콩

"집 안에 청첩장 300장 그대로 남아 있어"…유가족 사연 봇물

27일 홍콩 타이포 지역 왕 푹 콕 아파트 단지 화재 이후 왕 푹 커뮤니티 홀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홍콩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초고층 단지가 예상보다 빠르게 불길에 휩싸이면서 대피가 지연됐고,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가족을 지키려 했던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28일 SCMP는 두 아이를 먼저 피신시키고 끝내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30대 여성 A 씨의 안타까운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당시 집 안에서는 외부 복도에서 강한 열기가 밀려오고 있었고, 벽면 마감재가 타들어 가며 파편이 거실과 방 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A 씨는 아이들이 있던 방 쪽이 상대적으로 연기가 덜하다는 판단하고 두 아이를 창가로 밀어냈으며, 뒤에서 밀려오는 불길을 막아내기 위해 손으로 떨어지는 불붙은 파편을 막아내며 시간을 벌었다. 인근 세대 주민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아이 둘을 구조했지만 그는 잔해가 무너지는 속도를 버티지 못했고 결국 외부로 추락해 숨졌다.

남편은 "아내는 마지막 순간에도 아이들만 생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SCMP는 전했다. 매체는 공식 브리핑에서 언급되지 않은 이 장면이 건물 내부에서 벌어진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희생자인 40대 후반 남성 B 씨는 아들과 함께 대피 하던 과정에서 서로 다른 동으로 이동하면서 구조되지 못했다. 당시 두 사람이 있던 층은 이미 계단실을 통해 연기가 빠르게 퍼지고 있었고, B 씨는 아들 방 쪽이 상대적으로 연기가 덜하다고 판단해 "잠깐 떨어져 움직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불길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됐고, 동과 동 사이의 이동로가 순식간에 막히면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들은 구조대에 의해 비교적 일찍 구조됐지만 B 씨는 이후 연락이 닿지 않은 채 실종됐고, 다음 날 내부 수색 과정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아들은 "함께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며 당시 판단 착오와 구조가 지연된 데 대한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에 매체는 대피 동선이 엇갈려 희생된 가족들의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27일 홍콩 타이포 지역 왕 푹 콕 아파트 단지 화재 현장. 주불은 진압됐지만, 아직 잔불이 남아 있어 소방 작업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 AFP=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추가로 확인된 희생자 가운데에는 결혼을 한 달 앞둔 20대 여성 C 씨가 연기를 들이마신 뒤 의식을 잃고 끝내 사망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화재 당시 C 씨는 실내로 유입된 강한 연기를 들이마신 직후 쓰러졌고, 같은 층 여러 세대에서 구조 요청이 동시에 접수되면서 해당 구역 접근이 지연된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대는 내부 진입이 가능해진 뒤에야 C 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12시간 만에 사망했다. 예비신랑은 "집 안에 청첩장 300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결혼 준비가 화재와 함께 멈춰버렸다"고 눈물을 보였다.

결혼을 한달여 앞두고 있었던 30대 소방관 호와이호우 씨가 홍콩 화재로 사망했다. 출처=SCMP
"나의 슈퍼히어로가 임무를 마치고 크립톤으로 떠났다"

30대 소방관 호와이호우(37)도 화재 진압 과정에서 순직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9년째 소방관으로 근무해 왔으며 공항 특수 경찰관 경력도 가진 베테랑이었다.

그는 화재 발생 당일 오후 현장에 도착해 지상층에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던 중 약 30분 만에 동료들과 연락이 끊겼고, 이후 수색 끝에 건물 외부 공터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특히호와이호우 씨는 10년 동안 교제해 온 연인과 다음 달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여행 와 한복을 입은 여자친구와 다정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순간에 동반자를 잃은 예비신부는 이날 스레드에 글을 올려 누리꾼들의 위로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는 "나의 슈퍼히어로가 임무를 마치고 크립톤으로 갔다"며 슈퍼맨의 고향인 가상의 행성 크립톤에 빗대어 연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동료 소방관들 또한 SNS를 통해 "이제 편히 쉬길 바란다"며 추모 글을 올렸고, 현지 소방 당국은 순직 경위와 당시 현장 대응 과정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홍콩 당국은 현재 희생자 신원 확인과 동별 대피 동선 파악, 구조 지연 경위 등에 대한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조사팀은 "구조가 늦어진 구역에서는 가족 단위로 이동이 나뉘는 사례가 많았고, 그 과정을 거치며 피해가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khj8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