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주부 피살 사건…남편은 26년간 월세 내며 현장을 지켰다[이세별사]
고교 시절 사랑 고백 거절하자 부인 대상 범죄…1999년 자택에서 발생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아" 스스로 경찰에 DNA 제공…범행 일체 자백
- 김학진 기자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1999년 11월 13일 일본 나고야시 니시구의 한 주택가.
맑은 가을 햇살 아래 주부 다카바 나미코(32)는 두 살배기 아들과 함께 병원 진료를 마친 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따가 점심 먹고 아기 재우고 대청소 좀 하려고요"
남편 사토루에게 전화를 건 나미코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평화롭던 나미코의 가정은 참혹한 범죄 현장으로 바뀌게 된다.
오후 2시 반쯤 집주인의 아내는 감나무에 열린 감을 수확해 평소 감을 좋아하던 나미코에게 주기 위해 집에 방문했다. "똑똑똑. 나미코 상 집에 있어요? 똑똑똑"
집안에서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TV 소리가 뒤섞여서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 외에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예감이 좋지 못했던 집주인의 아내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채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집안을 빠져나왔다.
거실로 이어진 복도 끝, 나미코는 얼굴을 아래로 한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목에는 여러 개의 자상이 있었고, 손에는 격렬히 저항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옆에서는 두 살배기 아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무런 상처도 없이, 멍하니 엄마만 바라본 채.
현지 방송들은 일제히 '나고야 주부 피살'이라는 긴급 속보를 내보냈다. 수사 초기 경찰은 피해자 집 내부의 혈흔 분석에 착수했다.
시신 주변에는 세 갈래로 혈흔이 뿌려져 있었고, 화장실 세면대에도 피를 씻은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DNA 분석 결과 그 피의 혈액형은 피해자의 것이 아니었다.
주변 목격자들은 사건 당일 "손을 감싸 쥔 채 어딘가를 급히 뛰어가는 파마머리의 여인을 보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한 주민은 공원 주차장 근처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여성이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그 여성은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우지 못했다. 세면대에 남아있던 B형 여성의 혈흔. 타살의 정황이 유력했다. 경찰은 곧바로 '피를 흘린 중년 여성'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성과는 없었다.
이 사건은 2014년 9월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법이 개정되어 시효가 폐지됐다. 그렇게 수사는 활력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지속됐다.
그 후로 26년.
남편 다카바 사토루는 여전히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사건 1년 뒤 주거지는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사건 현장 보존을 위해 매달 월세를 내며, 아내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던 공간을 그대로 유지했다.
넘어진 청소기, 멈춰 있는 텔레비전, 여성의 발자국 그리고 바닥의 핏자국까지…아무것도 치우지 않았다. 당시까지 낸 금액은 2200만 엔, 한화 약 2억 원에 달했다.
"언젠가 이 피가 무언가 말해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20년 넘게 틈틈이 이어져 온 기자회견과 장기 미제사건으로 분류된 피해자들의 추모제에 참여했고,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이끌어낸 시민 모임 '소라노카이'의 간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치현 경찰은 재조사 과정에서 보관 중이던 혈흔 DNA가 한 여성의 것과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를 확보한 것.
그녀의 이름은 야스후쿠 쿠미코(69). 나미코의 남편 사토루와 같은 고등학교 소프트테니스부에서 활동한 동창생이었다. 2024년 당시 수사관들이 수차례 DNA 채취를 요청했으나 끝까지 거부하던 그녀는 갑자기 경찰서에 출두해 이에 응했고, 스스로 DNA를 제출하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의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이젠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NHK와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야스후쿠는 "사건 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숨이 막혔다"며 "신문에서 그날을 다룬 기사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범행 동기에 대해 "남편 사토루를 향한 질투와 과거의 감정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학창 시절 같은 클럽에서 활동하며 교류가 있었고, 고등학생이던 쿠미코는 밸런타인데이에 편지와 함께 초콜릿을 건네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지만 같은 반에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던 사토루는 이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거부당한 사랑은 세월이 흘러 왜곡된 집착으로 변해 있었다. 그 광기의 끝은 사랑의 기억을 가장한 잔혹한 복수로 귀결됐다.
남편 사토루는 야스후크의 체포 소식을 듣고도 담담했다.
"아내에게 조금은 미안함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그 집의 문을 닫을 때가 온 것 같네요"
그가 지켜온 집, 피로 얼룩진 그 공간은 그렇게 마지막 임무를 다했다.
그리고 며칠 뒤인 지난 2일, NHK는 예정대로 '미해결 살인 사건 시리즈'를 방영했다.
수개월 전부터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주제는 '나고야 주부 살인사건'이었다.
화면 속에는 범행 현장과 흑백으로 바랜 가족사진, 아기 홀로 앉아있었던 의자의 모습이 비쳤다. "지금도 진실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오른쪽 하단에는 한 줄의 자막이 조용히 깜빡였다.
"26년간 발견되지 못한 이 사건의 용의자는 이틀 전 체포되었습니다"
진실은 늦게 밝혀졌지만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26년간 어둠 속에 멈춰 있던 시계가 마침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khj80@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국내를 비롯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기묘하고 충격적인 사건을 소설처럼 정리해 전해드립니다. 현실보다 낯선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사건이 많습니다. '기묘한 세상!'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났습니다. 뉴스1은 이 세상 별 사건을 소개하는 '이세별사'를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