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유럽, AI 성장과 주권 위해 데이터센터 구축 서둘러야"

FT 기고문…"수요의 파편화는 대규모 컨소시엄 결성으로 해결"
"수요→투자 이끌어내기→인프라 구축의 선순환 만들어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전총리 2022.07.04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낸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가 뒤떨어진 유럽의 인공지능(AI) 발전을 위해 데이터센터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선 AI 수요를 한데 모으고 창출하는 것으로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일(현지시간) 드라기 전 총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유럽은 경제 성장과 주권 유지, 환경·분배의 가치를 모두 지켜야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고 이 세 과제와 모두 관련된 것이 AI라면서 AI의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유로존과 미국 간의 시간당 생산성 격차는 2018년 9달러에서 2025년 21달러로 확대되었다"면서 AI의 전면적 도입이 정체된 생산성 성장을 타개할 가장 확실한 해법으로 꼽힌다고 주장했다. 드라기는 "ECB 시나리오에 따르면 AI의 빠른 도입은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을 연간 0.3~0.4%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드라기 전 총재는 AI 주도 성장은 유럽의 '주권'과 심각한 마찰을 빚는다고 보았다. 유럽이 AI 개발 등에 뒤처져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의존해야 하고, 미국이나 중국 등 파트너 국가들이 AI 접근 권한을 디지털 규제 완화나 관세 분쟁의 지렛대로 악용할 위험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드라기 전 총재는 유럽이 성장과 주권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영역을 '데이터'로 보았다. 기고문에 따르면 유럽은 2030년까지 800억 유로(GDP의 5%)를 넘는 거대한 규모의, 공공 보건 기록부터 막대한 산업용 데이터에 이르는 데이터 경제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려면 대규모 AI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환경적 비용과 에너지 우려 등에 대해 드라기 전 총재는 "유럽이 직면한 문제는 정반대"라면서 미국과 달리 유럽은 심각한 인프라 부족에 시달려 전 세계 AI 연산 능력의 75%를 미국이 쥐었지만, 유럽은 5%에도 못 미친다고 전했다.

드라기는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환경·에너지 우려는 청정에너지 의무화, 폐열 재활용, 부지 선별 및 망 비용 분담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허가 지연(미국 24개월 대 독일 42개월)이나 비싼 전기세도 문제긴 하지만 진짜 문제는 ‘수요의 파편화’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은 대형 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계약을 주도하지만, 유럽은 수요가 수백만 개 기업에 흩어져 있어 투자 유치가 어렵다면서 이를 타개하려면 유럽의 대기업들이 다년 계약을 위한 대규모 컨소시엄을 결성해 집중된 수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표준화된 용량의 다년 구매를 보장함으로써 투자를 끌어내고 자국 내 인프라를 구축하는 선순환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기 전 총재는 "여러 컨소시엄이 수요를 결집하면 더 많은 공급자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이들 간의 경쟁은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아준다. 누진세 제도를 도입하면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그 혜택을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성장, 주권, 가치 사이에서 양보하는 대신 '과두제 없는 AI'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