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PICK] 가위 없이 피운 꽃…파리에서 한지의 ‘쓸모’를 다시 묻다

한국 공방의 기술에 디자인 얹은 佛 작가…종이가 가구·조명으로
창호·장판에 쓰던 한지, 오늘의 쓰임은…작품에서 생활용품까지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열린 '한지마니아'(Hanjimania) 전시 개막행사에서 관람객들이 작가 이선의 한지를 활용한 조명 작품 '오너먼트 인 트랜슬레이션'(Ornament in Translation)을 둘러보고 있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한지를 활용한 한국과 프랑스 창작자들의 작품을 오는 27일까지 선보인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노르 빌팽트 전시장에서 열린 '메종&오브제'(Maison&Objet) 한지관에서 관람객이 펼쳐진 노란 한지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한지관에는 국내 7개 기업이 참여해 한지 원지와 생활용품 등을 선보인다. 박람회는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열린 '한지마니아'(Hanjimania) 전시 개막행사에서 관람객이 스튜디오 KO의 조명 작품 '오브'(Aube)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아치형 목재 구조에 한지 두 장을 결합한 이 작품은 김혜경 여사와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지난 8일 전시장을 찾아 양쪽에 한 장씩 직접 한지를 끼워 넣어 완성했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파리=뉴스1) 이준성 특파원 = 꽃을 만드는 데 가위도 칼도 쓰지 않았다. 한지를 손으로 찢었다. 그렇게 만든 꽃 가운데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의 오텔 드 라 마린. 한지 전시 ‘한지마니아’ 공식 개막행사에서 만난 심지선 작가는 자신의 작품 ‘나만의 정원’에 핀 꽃들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식물들이다. 잎을 모으면 꽃이 되고, 꽃을 펼치면 다시 잎이 된다.

꽃을 받치는 선반에도 보통의 선반 판이 없다. 한지로 감싸 주름을 만든 틀 사이에 실을 수없이 감아 면을 만들었다. 심 작가는 종이를 뜰 때 쓰는 ‘한지발’에서 구조의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이 선반을 한지와 한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표현하는 저만의 언어”라고 설명했다.

작가 심지선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열린 '한지마니아'(Hanjimania) 전시 개막행사에서 자신의 작품 '나만의 정원 - 뿌리없는 꽃 프로젝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새로운 선반을 구상한 작가의 시선은 종이를 만드는 도구로 향했다. 같은 전시에 참여한 프랑스 디자이너는 한국 파트너의 제작 기술에서 디자인을 시작했다. 두 작업은 전통 기술이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데 어떻게 쓰이는지 보여준다.

프랑스 디자이너 제레미 프라디에 쥬노는 서울 여행 중 박물관에 있던 전통가옥의 한지 창문을 보고 한지에 매료됐다고 회상했다. 글쓰기·인쇄·포장에 쓰는 종이에 익숙했던 자신에게 한지는 도자기처럼 형태를 만들고 구축할 수 있는 재료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가 이번 전시에 내놓은 ‘아르테미스’(Artemis)는 한지를 활용한 가구와 조명으로 구성됐다. 제레미에 따르면 작품의 구상에는 한국 파트너가 한지에 주름을 잡고, 엮고, 결합하는 기술이 바탕이 됐다.

“제 자신의 미적 언어를 그분의 작업에 맞췄습니다.”

그는 파트너의 작업이 없었다면 지금의 작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지로 만들 수 있는 형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국 창작자의 기술이 그의 디자인에 영향을 준 것이다.

프랑스 디자이너 제레미 프라디에 쥬노(Jérémy Pradier-Jeauneau)가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열린 '한지마니아'(Hanjimania) 전시 개막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레미는 이번 전시에서 한지를 활용한 가구와 조명으로 구성된 '아르테미스'(Artemis)를 선보인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열린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심 작가는 협업 과정에서도 기존 제작법을 유지했다고 했다. 프랑스 디자이너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살펴 인상적인 작업을 고르고, 이를 바탕으로 스케치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는 “제 작업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접근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지마니아는 안강은과 카트린 뤼로가 공동 기획한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다. 안 공동기획자에 따르면 프랑스 디자이너·스튜디오 6팀과 한국 창작자의 협업 작품, 한국 작가 11명의 현대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열린다.

뤼로는 일부 팀이 한지의 특성과 제작 여건에 맞춰 처음 제안한 크기·비율·디자인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참여자들도 프랑스 디자이너의 낯선 접근에서 평소와 다른 작품을 만들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한지마니아'(Hanjimania) 공동기획자인 카트린 뤼로(Catherine Lurault)와 안강은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열린 전시 개막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한지를 새롭게 쓰려는 시도는 같은 날 파리 근교 노르 빌팽트 전시장에서 열린 디자인 박람회 메종&오브제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이 마련한 한지관에는 국내 기업 7곳이 참여해 수제 원지와 생활용품 등을 선보였다. 산업디자인 스튜디오 SWNA는 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가구를 내놓았다. 박람회는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노르 빌팽트 전시장에서 열린 '메종&오브제'(Maison&Objet) 한지관에 다양한 색의 한지 원지가 펼쳐져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한지관에는 국내 7개 기업이 참여해 한지 원지와 생활용품 등을 선보인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노르 빌팽트 전시장에서 열린 '메종&오브제'(Maison&Objet) 한지관에서 관람객이 한지 원지와 공예품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한지관에는 국내 7개 기업이 참여해 한지 원지와 생활용품 등을 선보인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이곳에서 만난 고소미 작가는 한지가 본래 생활 가까이에 있던 재료라는 점을 짚었다. 글을 기록하는 데 쓰는 것은 물론 창호와 벽지, 장판으로도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한지의 활용 범위를 넓히는 작업에는 일상에서 쓰던 재료를 지금의 생활에 맞게 다시 사용하는 의미도 있는 셈이다.

고 작가는 한지가 지금도 줄 수 있는 감각으로 촉감을 꼽았다. 손으로 뜬 종이에는 장인의 시간과 수고가 남으며,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단단한 표면을 접하는 시대에 이런 질감이 새로운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김지원 공진원 전통문화확산본부장도 보존과 함께 사용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지를 보존할 전통문화나 고급 예술 재료로만 바라보면 활용 범위를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에서 만들고 쓰던 재료인 만큼 지금 사용할 제품과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공진원에 따르면 ‘한지 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는 오는 12월 결정될 예정이다. 안강은 공동기획자는 한지의 가치를 알리고 등재 추진에 힘을 보태려는 뜻에서 한지마니아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지가 낯설게 다가간 사례는 향수에서도 나왔다. 향료기업 IFF의 조향사는 전시를 위해 향수 ‘한지마니아’를 만들었다. 뤼로는 지난 8일 전시를 찾은 김혜경 여사와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한지 향이 나는 향수가 있다는 설명에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김혜경 여사와 프랑스 대통령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8일(현지시간) 파리 오텔 드 라 마린에서 열린 한지마니아 특별전에서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2026.9.9 ⓒ 뉴스1 이재명 기자

이 관심을 다음 전시로 이어갈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뤼로는 한국에서 작품을 다시 선보이는 일이 재정 지원 확보에 달려 있다고 했다. 프로젝트를 계속할 의지는 있지만, 전시 장소와 함께 지원할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 작가는 작품 설치 중 오텔 드 라 마린 직원들에게 꽃을 아트숍에서 팔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전시를 위해 만든 작품이지만 꽃 한 송이씩을 장식물로 판매하는 가능성도 생각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작업에서 남은 자투리 한지를 꽃으로 만든 작가에게, 이번에는 그 꽃을 일상에서 쓰자는 제안이 돌아온 셈이다.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열린 '한지마니아(Hanjimania)' 전시 개막행사에서 관람객들이 한지를 활용한 조명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열린 '한지마니아(Hanjimania)' 전시 개막행사에서 관람객들이 한지를 활용한 조명 작품을 살펴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오텔 드 라 마린(Hôtel de la Marine)에서 열린 '한지마니아'(Hanjimania) 전시 개막행사에서 김원천 작가의 항아리 형태 조명 작품 '종이의 집 2 — 빛이 사는 곳'이 불을 밝히고 있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노르 빌팽트 전시장에서 열린 '메종&오브제'(Maison&Objet) 한지관에서 관람객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한지관에는 국내 7개 기업이 참여해 한지 원지와 생활용품 등을 선보인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 노르 빌팽트 전시장에서 열린 '메종&오브제'(Maison&Objet) 한지관에서 관람객이 한지 두루마리 너머에서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한지관에는 국내 7개 기업이 참여해 한지 원지와 생활용품 등을 선보인다. 박람회는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2026.9.11 ⓒ 뉴스1 이준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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