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극우의 질주…'방어적 민주주의'의 균열②[최종일의 월드 뷰]

지난 2024년 6월 30일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이 북부 에냉보몽에서 총선 1차 투표서 1위를 한 뒤 밝은 표정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지난 2024년 6월 30일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이 북부 에냉보몽에서 총선 1차 투표서 1위를 한 뒤 밝은 표정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동시에 독일의 기성 정당들은 대안당과의 정치적 협력을 전면 거부하는 이른바 '방화벽(Brandmauer)' 전략을 유지해왔다. 방화벽은 원래 불이 다른 구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장벽을 뜻한다. 핵심은 대안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고, 대안당의 표에 의존해 정부를 구성하거나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며, 정치적 협력을 통해 대안당을 집권 세력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에도 이와 비슷한 정치적 방어선인 '공화국 전선'이 있다. 평소에는 이념과 정책으로 경쟁하던 정당들이 극우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선거에서 전략적으로 연대한다. 2002년 대선에서 극우 국민전선(FN·현 국민연합)의 장 마리 르펜이 결선에 진출하자 좌파를 포함한 주류 정치권과 유권자들이 자크 시라크 후보에게 결집했고, 극우 후보의 당선을 막는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배제와 낙인찍기의 한계…유럽을 흔드는 '포퓰리즘의 물결'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독일 민주주의를 지켜온 것으로 평가받아온 이 같은 제도와 정치적 장치가 극우의 확산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국제정치·외교 전문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극우파와 싸우기 위해 정치적 낙인찍기에 의존하는 방식의 한계는 프랑스가 국민연합(RN)을 겪으며 이미 보여준 바 있다"며 "독일의 '방화벽' 역시 선거 차원에서 대안당의 확산을 막아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극우 세력을 배제하거나 강하게 억제하려는 조치가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안당을 제도권 정치에서 배제하는 방화벽이 지지자들에게 '기성 정치권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억압한다'는 인식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대안당을 위헌 정당으로 지정해 해산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조치도 지지층 사이에서 '기득권 정치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세력을 탄압한다'는 이른바 순교자 서사를 강화해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로 헌법수호청의 극단주의 세력 분류에도 대안당의 지지세는 꺾이지 않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2029년 차기 연방총선에서 대안당이 약 28%의 득표율로 독일 제1당이 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채텀하우스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거대한 정치적 지진까지는 아니더라도 다가오는 지진을 알리는 전조 진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는 독일 동부만의 이례적인 현상도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각국에서도 고물가와 경제난, 이민자 갈등에 대한 불만이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로 결집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의 마린 르펜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극우 지도자들에게 이번 독일 선거 결과는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고무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 2027년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는 르펜이 여전히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가운데,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이 커지면서 극우의 집권을 막기 위해 주류 정당과 유권자가 결집하는 '공화국 전선'의 위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롤랑 레스퀴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RTL 라디오에 작센안할트주 선거 결과가 "매우, 매우 우려스러운 신호"라고 밝혔다. 그는 "이는 우리가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된 포퓰리즘의 물결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럽 극우 세력의 확산에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공개적인 지지도 한몫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센안할트주 선거 개표 결과가 전해지자 트루스소셜에 대안당이 다른 정당들을 큰 격차로 앞선 결과를 보여주는 이미지를 게시했다. 앞서 대안당이 '극단주의 세력'으로 지정됐을 당시에도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미국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대안당에 공개적으로 지지를 보내며 독일 기성 정치권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법적·제도적 장치들은 그동안 독일 민주주의를 지켜온 든든한 방파제였다. 하지만 극우 세력의 지지가 제도권 안에서 빠르게 확대되면서 그 장치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어려운 현실도 드러나고 있다. 배제와 낙인찍기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오히려 극우 세력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기성 정치권이 사회적 절망과 불만에 실효성 있는 답을 내놓고, 시민들이 냉철한 판단과 민주적 가치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극단주의의 확산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이 위기를 헤쳐갈 수 있는 힘이다. 사실 꼭 유럽 얘기만도 아니다.

allday3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