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만에 풀린 獨 유대인 요양원 방화…범인은 '히틀러 숭배' 네오나치

1970년 뮌헨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7명 숨져
"당시 20대였던 극우주의자 소행…2020년 사망"

독일 뮌헨 라이헨바흐슈트라세 27번지에 있는 시나고그 외관. 이곳 유대인 공동체 건물에선 1970년 2월13일 방화 사건이 발생해 7명이 숨졌다. 사진은 2021년 10월12일 촬영됐다. ⓒ Kaethe17/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최악의 반유대주의 범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1970년 뮌헨 유대인 요양원 방화 사건 범인이 56년 만에 극우 성향의 네오나치였던 것으로 결론 났다.

20일(현지시간)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과 바이에른방송(BR) 등에 따르면 뮌헨 고등검찰청은 이날 해당 사건 재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당시 25세였던 독일인 '베른트 V'를 방화범으로 특정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여러 정황과 증언을 종합한 결과, 베른트가 단독으로 불을 질렀다는 증거가 명백하다"며 "다른 공범이 개입했다는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베른트는 2020년 사망해 형사 기소가 불가능한 상태다.

이 사건은 1970년 2월 13일 밤 뮌헨 라이헨바흐슈트라세의 유대인 공동체 건물에서 발생했다. 방화범이 건물 안에 가연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이면서 요양시설에 살던 유대인 7명이 숨지는 등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나치 시대를 살아남은 사람들이었고, 그중 일부는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였다. 방화 당시 건물 안엔 약 50명이 있었다.

당시 수사당국은 극좌 세력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범행 가능성 등을 놓고 수사했으나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이에 이 사건은 오랫동안 전후 서독 사회의 대표적인 미제 반유대주의 범죄로 남았다.

베른트도 일찌감치 수사선상에 올랐다. 그는 절도와 폭발물 관련 범죄 등을 저질러 여러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고 노골적인 반유대주의·극우 성향을 보였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시엔 베튼트를 방화 사건과 직접 연결할 증거가 부족했다.

반세기 넘게 묻혀 있던 이 사건의 전환점은 작년에 새로운 증언이 나오면서 마련됐다. 여성이 검찰에 자신의 친척이 과거 베른트와 함께 절도 범행을 저질렀고, 사건 당일 베른트와 함께 유대인 공동체 건물 인근 보석상을 털려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한 것이다.

베른트는 보석상 침입에 실패하자 유대인들을 욕하면서 인근 유대인 공동체 건물을 가리키며 '불을 지르겠다'는 취지로 말한 뒤 자리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뒤 실제로 해당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수사당국은 이 증언을 토대로 작년 4월부터 사건을 재수사했다. 그 결과, 과거 목격자들이 진술한 용의자 연령대·인상착의가 베른트와 부합했고, 그의 극단적 나치 성향을 보여주는 기록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단 게 당국의 설명이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베른트는 아돌프 히틀러 연설이 담긴 음반을 소유하고 있었고, 평소 나치즘과 히틀러를 숭배했다. 과거 재판에선 나치 친위대(SS) 소속이었던 삼촌에게서 '총통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는 취지로 말한 기록도 남아 있다.

또 베른트가 수감됐던 1970년대 초 한 동료 수감자가 '유대인 요양원에 불을 질렀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당국에 알렸지만, 당시엔 이 진술에 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베른트가 범행 당시 극단적 반유대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고, 사건 당일 범행 현장 인근에 있었던 사실 등이 맞물린다"고 판단했다.

ys417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