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서방 사이, 두 갈래 길에 선 조지아[최종일의 월드 뷰]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러시아 블라디캅카스로 이어지는 조지아 군사 도로 모습 ⓒ 뉴스1 최종일 기자

(트빌리시·스테판츠민다=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다국적 관광객 10여 명을 태운 조지아의 승합 미니버스 마르슈루트카가 수도 트빌리시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렸다. 목적지는 북부 코카서스의 산악 마을 카즈베기(스테판츠민다). 해발 2000m를 훌쩍 넘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끼고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졌다. 트빌리시에서 30도를 웃돌던 8월의 기온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빠르게 떨어졌다. 카즈베기에 가까워지자, 기온은 어느새 20도 아래로 내려갔다.

좁은 산악도로 앞에는 대형 화물트럭들이 줄지어 있었다. 무거운 짐을 실은 트럭들이 굽이진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가면 마르슈루트카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잇달아 추월했다. 창밖으로는 가파른 절벽과 깊은 계곡이 번갈아 나타났다.

트럭들은 관광객들과 목적지가 달랐다. 카즈베기를 지나 러시아 국경을 넘은 뒤 수십㎞를 더 달려 북코카서스의 거점 도시 블라디캅카스로 향한다. 트빌리시에서 약 212㎞. 험준한 코카서스를 넘어 조지아와 러시아를 잇는 이 길은 양국을 연결하는 사실상 유일한 육상 관문이다.

조지아 북부 코카서스의 산악 마을인 카즈베기(스테판츠민다)의 웅장한 풍경을 담은 사진이다. 왼쪽 전면에는 조지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레 카즈베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 뉴스1 최종일 기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도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길의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조지아 군사도로(Military Road)'다. 러시아 제국이 18세기 말부터 남코카서스에 대한 지배력을 넓히면서 병력과 물자를 신속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이 길을 정비하고 확장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동시에 이 도로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를 연결하는 역내 핵심 물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도로가 장기간 막히면 조지아의 운송·물류업과 대러 교역이 위축될 수 있고, 러시아와 육상 교역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이웃 아르메니아 역시 영향을 받는다.

러시아를 우회하는 길, BTC 송유관

조지아에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뻗은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 있다.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서 조지아를 가로질러 서쪽의 튀르키예로 이어지는 BTC(Baku-Tbilisi-Ceyhan) 송유관이다. 총연장 약 1768㎞, 하루 최대 120만 배럴의 수송 능력을 갖춘 이 송유관은 2006년 가동을 시작했다.

BTC의 가장 큰 특징은 러시아 영토를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스피해의 아제르바이잔산 원유를 러시아를 거쳐 흑해로 보내던 기존 수출로와 달리, 아제르바이잔→조지아→튀르키예→지중해로 이어지는 새로운 수출로를 열었다. 튀르키예 제이한항에 도착한 원유는 유럽 등 국제시장으로 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란 전쟁까지 겹치면서 러시아와 중동을 우회하는 에너지 수송로의 전략적 가치가 커졌고, 조지아에도 상당한 통과료와 관련 세수가 돌아간다.

조지아 군사도로가 러시아와 맞닿은 조지아의 지정학적 현실을 보여준다면, BTC는 러시아를 우회해 서방 시장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전략적 축이다. 하나는 러시아와 연결된 북쪽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를 거치지 않는 동서의 길이다.

우크라이나와 닮았지만, 같은 길은 아니다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조지아는 2003년 장미혁명을 계기로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정권을 무너뜨리고 후자의 길을 더욱 분명하게 모색했다. 미국과 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했으며, 유럽연합(EU)과의 통합을 국가적 목표로 내세웠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조지아의 서방 편입이 자국 영향권인 남코카서스에 서방의 정치·경제·안보 영향력이 침투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지정학적 갈등은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폭발했다.

소련 해체 전후 조지아에서 분리된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지역으로 굳어졌고, 전쟁 이후 러시아가 군대를 주둔시키고 독립을 승인하면서 조지아의 실효 지배에서 벗어났다. 이후 두 지역을 둘러싼 분쟁은 ‘동결된 분쟁(frozen conflict)’으로 남았다.

이것은 러시아에 강력한 전략적 지렛대가 됐다. 상대국 전체를 점령하지 않더라도 분쟁 지역에 군사력을 주둔시키고 영토 문제를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면 해당 국가의 외교·안보 선택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토 가입을 추진해온 조지아로서는 러시아군이 주둔하는 분쟁 지역 자체가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이 점에서 조지아의 궤적은 훗날 우크라이나와 겹쳐 보인다.

물론 2008년 조지아 전쟁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동일 선상에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나 유럽과 나토에 가까워지려 했고, 러시아는 주변국의 서방 편입을 자국의 안보 환경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러시아가 오랫동안 주변국에 대해 완충지대(Buffer Zone)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중시해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우호적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공간을 유지함으로써 자국의 안보 환경이 급격하게 불리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조지아가 서방의 안보·정치 질서에 깊숙이 편입될 경우 러시아는 남부 국경과 흑해에서 전략적 입지가 약화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조지아가 먼저 그 충돌의 충격을 경험했고, 14년 뒤 우크라이나는 훨씬 더 파괴적인 전쟁에 휘말렸다.

그러나 조지아가 우크라이나와 똑같은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서방은 조지아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지지했지만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러시아군이 여전히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에 주둔하는 현실에서 조지아가 러시아와 정면으로 충돌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는 절대 작지 않다.

러시아를 끊을 수 없는 현실

경제적 현실도 조지아의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러시아는 여전히 조지아의 주요 교역 상대국 가운데 하나다. 대러시아 수출과 관광, 송금 역시 조지아 경제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비중을 차지한다.

조지아 군사도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 속에서 러시아가 육로로 외부와 교역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핵심 통로로 급부상했다. 조지아산 와인과 농산물이 이 길을 통해 러시아로 대거 수출되고, 각종 중계·통과 물류가 오가면서 조지아의 운송·통관업은 실질적인 경제적 수입을 얻고 있다.

서방으로 가고 싶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기도 어려운 나라. 이것이 오늘날 조지아가 처한 가장 근본적인 딜레마다.

서방을 향한 열망, 다시 깊어지는 갈등

이런 현실 속에서 집권당 '조지아의 꿈'은 서방과의 관계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는 실용주의·현상 유지 노선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이 줄타기는 국내에서 거센 후폭풍을 불러왔다.

많은 조지아인에게 EU 가입은 여전히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목표다. 반면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며 러시아와의 충돌을 피하는 데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조지아 정부는 EU 가입협상 개시를 2028년까지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친유럽 성향의 야권과 시민사회, 정부 사이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는 이유다.

빼앗긴 땅, 지켜낸 정체성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도심 풍경을 담은 사진이다. 왼쪽 상단 성벽 위로는 트빌리시의 창건자로 알려진 와흐탕 고르가사리 왕의 동상이 우뚝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붉은 지붕의 전통 가옥들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언덕 지형을 따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멀리 능선 위에는 도시를 상징하는 조지아의 어머니상(로스카바)이 작게 보인다. ⓒ 뉴스1 최종일 기자

조지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구 약 370만의 이 작은 나라가 외세 사이에서 생존하는 일은 결코 새로운 과제가 아니다.

페르시아와 비잔틴제국, 몽골, 오스만제국, 그리고 근현대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조지아 주변에는 언제나 더 강력한 제국이 있었다. 코카서스의 좁은 길목을 차지하려는 제국들의 각축 속에서 조지아는 반복해서 침략당했고 영토를 빼앗겼다.

그럼에도 조지아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 바탕에는 언어와 문자, 그리고 신앙이라는 오래된 문화적 자산이 있었다. 조지아어는 주변의 인도유럽어나 튀르크어와 계통이 다른 카르벨리어족 언어다.

둥근 고리나 물결을 이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고유한 조지아 문자는 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 속에서도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온 상징이었다. 4세기 초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조지아 정교회 역시 민족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중요한 구심점이 됐다.

외세는 칼과 권력으로 조지아의 땅을 빼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코카서스 산골짜기에서 이어진 언어와 문자, 오래된 수도원의 종소리까지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트빌리시 솔롤라키 언덕 정상에는 '조지아의 어머니상'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 손에는 와인잔, 다른 손에는 검을 들고 있다. 친구에게는 와인으로 환대하지만, 적에게는 칼을 든다. 조지아의 역사를 압축한 상징이다.

조지아 트빌리시의 골목길 풍경을 담은 사진이다. 건물 외벽은 유럽연합(EU)의 깃발을 상징하는 파란 바탕에 노란 별무늬와 함께, 조지아 국기, 그리고 러시아의 침략과 점령을 규탄하는 반러시아 메시지와 그래피티로 화려하고 강렬하게 채색돼 있다. 벽면에는 '러시아는 점령자다', '조지아 영토의 20%는 러시아에 점령당했다', '다시는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와 같은 문구들이 적혀있다. 벽면의 숫자들은 조지아의 역사 속에서 러시아(제국 및 소련)의 지배나 개입, 주요 갈등이 발생했던 시기들을 나타낸다. ⓒ 뉴스1 최종일 기자

지금도 트빌리시의 지하도와 골목 곳곳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분노를 담은 그래피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전쟁과 압하지야·남오세티야의 동결된 분쟁은 과거형이 아니다.

EU와 나토를 향한 열망, 집권당의 현실주의적 회귀,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그늘까지. 분열된 지형과 엇갈리는 길목 위에 조지아는 서 있다.

코카서스의 좁은 산길에서는 오늘도 트럭이 러시아 국경을 넘고, 트빌리시의 골목에서는 러시아를 향한 분노가 이어진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생존과 미래를 동시에 찾아야 하는 조지아의 현실은 이 두 장면 사이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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