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 축소판 된 헝가리 총선…'오르반 구하기' 美·러 합심

12일 헝가리 총선, '美·러 대 유럽' 이례적 구도…판세는 野유리
오르반, 트럼프·푸틴 지지 모두 업고도 16년만의 실각 가능성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5.10.13 ⓒ 로이터=뉴스1

(런던=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오는 12일(현지시간) 치러지는 헝가리 총선 판세가 '미국·러시아 대 유럽'이라는 이례적인 경쟁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2기 들어 급변하고 있는 국제 질서가 고스란히 투영된 모습이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디언·폴리티코 등 외신을 종합하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러시아 정부 모두의 공개적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르반 총리의 유세 지원을 위해 지난 2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에 이어 JD 밴스 부통령을 헝가리에 급파했다. 밴스는 이날 부다페스트의 대형 축구 경기장에서 열릴 우파 집회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마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글로벌 동맹이다. 트럼프는 오르반을 '가장 강인한 세계 지도자 중 하나'이자 '절친'으로 표현해 왔다.

2010년부터 헝가리를 장기 집권 중인 오르반 총리의 보수 국수주의 포퓰리즘 정책은 마가 진영에 이념적 영감과 민족주의 통치 비전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의 헝가리 정치 개입설은 공공연하게 제기돼 왔다. 옛 소련권인 헝가리는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임에도 정치·경제·사회 전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착하며 러시아와 에너지 무역 협력을 강화했고, EU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제재에 매번 반기를 들었다.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025.11.28 ⓒ 로이터=뉴스1

러시아는 이번 총선에서도 오르반 총리를 물밑 지원하고 헝가리 야권이 우크라이나에 조종당한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하며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 사용하는 송유관을 우크라이나가 고의로 차단했다고 주장하는 등 우크라이나와 EU 지도부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선거 전략을 노골적으로 취하고 있다. 페테르 시야트로 헝가리 외무장관이 최근 EU 비공개회의 내용을 러시아 크렘린(대통령궁)에 몰래 보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페테르 크레코 헝가리 정치자본연구소(PCI) 소장은 "중·동부 유럽에서 미국과 러시아 양쪽이 공개적으로 같은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는 이례적"이라며 "헝가리가 지정학적 격전지가 됐다"고 분석했다. 영국 유력지 이코노미스트는 "헝가리가 1989년 공산주의 종식 이후 가장 중요한 선거를 치른다"고 평가했다.

미국·러시아의 동시 지원이 오르반 총리에게 어떤 총선 결과를 안겨줄지는 미지수다. 서유럽 국가들만큼은 아니지만 헝가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때리기에 대한 거부감이 감지돼 왔고, 최근 미국의 이란 전쟁은 이런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막판 여론 조사상 오르반 총리의 집권당 피데스는 페테르 머저르 대표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소수정당 티서에 평균 지지율을 역전당한 상태다. 주말 총선에서 티서의 승리라는 이변이 연출될 경우 오르반은 16년 만에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오르반의 퇴장은 트럼프와 푸틴에게도 악재다.

ez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