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韓인기 대단…'얼죽아' 편해진 半한국인"[대사에게 듣는다]
예르네이 뮐러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
"한반도 비핵화 등 韓 대북정책 전적으로 지지…양국 협력 견고해져"
- 김지완 기자, 이정환 기자
(서울=뉴스1) 김지완 이정환 기자
"유럽이 가진 모든 지형적 특징이 슬로베니아에 들어 있다"
예르네이 뮐러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는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사관에서 진행된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슬로베니아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우리는 인구 200만 명의 소국"이라면서도 "북부에서는 산, 남서부에서는 바다, 동부에는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불리는 저지대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모든 지형적 특성이 슬로베니아에 있다는 것이다.
뮐러 대사는 슬로베니아에서 한국이 갖는 위상도 전했다. 그는 슬로베니아의 한 대학교에 정원이 30명인 한국학 수업에 100명의 넘는 학생이 등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슬로베니아 국민들이 기존에 주로 공부했던 프랑스어보다 선호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협력에 관해서는 "올해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관을 새로 설치했으며, 이를 통해 정치적 관계는 이미 발전하고 있다"면서 "양국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모든 사안에서 입장이 같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부임한 뮐러 대사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부임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문화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양국이 거의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며 "나는 서울을 사랑하며, 이곳이 내 두 번째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뮐러 대사와의 일문일답.
―슬로베니아와 한국 관계는 현재 어떤 상황인가.
▶양국 협력은 매우 견고하다. 우선 슬로베니아가 한국에 대사관을 열었고, 한국도 올해 슬로베니아에 대사관을 열었다. 양자 협력은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정치적 협력은 대사관을 설치하기 이전부터 2024~2025년 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함께 활동하는 등 상당히 강했다. 이때 양국 실무진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양국 간 입장을 조율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또 한국의 외교정책과 대외정책을 다루는 방식을 보고 우리와 매우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슬로베니아는 자동차·제약 산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기업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슬로베니아 기업들은 자동차 부품 생산에 강하다. 전 세계 자동차 대부분에는 슬로베니아산 부품이 최소한 한 개는 들어간다. 코로나 이전에는 독일 자동차회사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시장을 찾는 중이다. 지난해 슬로베니아 경제부 장관이 현대차·기아 공급망 참여를 모색하고자 자동차 부품 기업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제약 분야는 전통적으로 강세였다. 슬로베니아는 인구 대비 대학에서 배출되는 전문 인력이 많아 강력한 연구개발(R&D) 기반을 갖추고 있다. 또 이번 방한에서 한국의 송도 바이오클러스터와 유사한 환경을 슬로베니아에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 등에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슬로베니아 관광이 늘고 있다. 슬로베니아의 매력은.
▶슬로베니아는 '유럽의 심장'이자 '유럽의 축소판'이다. 인구 200만의 작은 나라지만 북쪽의 알프스산맥, 남서쪽의 아드리아해, 동쪽의 평원, 그리고 중앙의 카르스트(석회암) 지형까지 유럽 모든 지형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음식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발칸의 영향이 섞여 다양하다. 우리는 현지보다 음식을 더 잘한다고 농담하곤 한다.
추천 명소로는 수도 류블랴나가 있다. 인구 40만 명의 아담한 도시로, 도심 차량 통행을 제한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 좋다. 블레트 호수는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호수 가운데 섬과 교회가 있고 절벽 위에는 성이 있는데, 한국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젊은 층 사이에서 K-팝과 K-컬처의 인기가 대단하다. 류블랴나 대학의 한국학 전공은 가장 인기가 높아, 매년 100명가량이 지원하지만 정원은 30명뿐이라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어를 제외하면 프랑스어 등 다른 외국어 학습 열기는 주춤했지만, 한국어 학습 열기는 뜨겁다. 내 친구나 지인들의 자녀들도 한국에 가고 싶어 해서 부모들이 한국 여행을 계획할 정도다.
―슬로베니아의 양봉 문화가 유명하다는데, 소개를 부탁한다.
▶양봉은 슬로베니아 문화의 핵심이다. 현대 양봉이 슬로베니아에서 시작됐다. 유엔이 5월 20일을 '세계 벌의 날'로 지정한 것도 슬로베니아의 제안으로, 날짜도 슬로베니아 현대 양봉의 선구자 안톤 얀샤의 생일에서 따왔다. 슬로베니아에서는 많은 가정이 벌통을 두고 직접 꿀을 생산한다. 대사관 옥상에도 벌통을 설치해 도시 양봉(urban beekeeping)을 장려하고 있으며 도시 양봉 스타트업 '어반비즈서울'과 협력해 관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가. 유럽 안보 환경 변화 속에서 슬로베니아의 전략은?
▶우리는 이 사안을 지정학 경쟁이 아니라 '국제법 준수의 문제'로 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소국인 슬로베니아에 국제법과 유엔 헌장 준수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현재 평화 협상에 관해서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우크라이나의 동의'다. 우크라이나가 동의한다면 영토 양보를 포함한 어떤 조약도 우리는 존중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의사가 배제된 채 강요되는 평화는 안 된다. 또 다른 원칙은 '이런 일이 다른 나라에서도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러시아가 발트 3국 등 구소련 시절 일부였던 다른 국가를 또다시 침략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북한군 파병 등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한 슬로베니아의 정책은 무엇인가.
▶대북 문제에 있어 슬로베니아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우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도발에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특히 북한이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병력을 파병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동북아시아 안보 관점에서 주요 위협은 북한, 그리고 러시아 같은 북한의 동맹국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서울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다른 대사관들과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의 비정부기구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과 함께 몇 차례 비공식 대화 행사를 열었다. 다른 대사관 관계자들을 초청해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3년간 한국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많은 사람들이 내게 한국에 가면 문화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한국에 막상 와보니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집처럼 편안했다. 특히 음식을 한가운데 두고 나눠 먹는 문화는 슬로베니아의 가족 식사 문화와 매우 비슷하다. 인상 깊었던 건 엄청난 커피 소비량과 카페 수였다. 영하의 날씨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문화에 놀랐지만, 이제 나도 아침에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반(半) 한국인'이 되었다. 서울을 특히 사랑하며, 서울은 이제 내 두 번째 고향처럼 느껴진다.
gw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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