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초기 분단 독일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 [역사&오늘]

5월 12일, 소련의 베를린 봉쇄 해제

서방 연합국의 베를린 공수 작전. (출처: Henry Ries / USA, 흑백사진(1948),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9년 5월 12일, 소련이 11개월간 실시해 온 서베를린 봉쇄를 해제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후 극도에 달한 냉전 초기의 긴장이 일시적으로 완화됐으나, 동시에 독일은 45년간 지속된 분단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연합국(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의해 4개의 점령 구역으로 분할됐다. 수도 베를린은 둘로 나뉘어 베를린 동쪽 지역은 소련이, 베를린 서쪽 지역은 서방 연합국인 미국·영국·프랑스가 공동으로 통치권을 행사했다.

1948년 6월 서방 연합군은 분할 통치 지역을 서독으로 통합하고 기존의 '제국 마르크' 대신 '독일 마르크'를 발행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소련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해 서베를린에 대한 도로 및 철도 접근을 차단, 베를린 봉쇄가 시작됐다. 서베를린 250만 주민들은 심각한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많은 사람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

서방 연합군은 소련에 대응해 베를린 공수 작전을 진행했다. 연합군은 비행기를 통해 서베를린에 식량, 의약품, 연료 등 필수 물자를 공급했다. 하루 평균 2500톤의 물자가 공수됐다. 한때 양측 간 군사 충돌 위기도 있었으나 공수 작전은 약 1년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소련은 결국 봉쇄를 해제했다. 국제적 여론의 압박과 서방 연합군의 강력한 대응에 따른 것이었다. 1949년 9월 서방 연합국 점령지구에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수립됐다. 한 달 후인 10월 소련 점령지구에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들어섰다. 이로써 유럽이 서구권과 동구권으로 갈라지며 1950년대 동서 냉전체제가 틀을 잡았다.

베를린 봉쇄 해제는 서베를린 주민들의 자유를 위한 중요한 사건이었고, 독일 분단의 현실을 확인시키는 사건이기도 했다. 동시에 서방 연합군의 단결과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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