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아웃'에 안방 잃어버렸던 선수들…홍명보호, 차가운 짐 덜었다

정몽규 KFA 회장 북중미 월드컵 끝난 뒤 사퇴 선언
"본선 좋은 성적 위한 지원, 협회장 마지막 소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C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태국과의 경기를 찾은 붉은악마 응원단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향한 항의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다. 2024.3.21 ⓒ 뉴스1 민경석 기자

(솔트레이크시티=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9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끝나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온 발표다.

축구협회 주요 관계자들도 정 회장의 결정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북중미 월드컵 대비 사전 캠프를 진행하고 있는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역시 발표 2시간 전에서야 내용을 전달 받았을 만큼 전격적이었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축구계가 뒤숭숭하다. 무엇보다 월드컵 개막을 2주 앞두고 발생한 이번 파장이 대표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쏠리는데, 선수들 입장에서는 차갑고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결단이 내려졌다.

정몽규 회장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축구협회를 맡아 운영하는 동안 여러 가지 논란과 비판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다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월드컵이 끝난 뒤 축구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7일 오후 충남 천안 서북구 코리아풋볼파크 개관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2026.4.7 ⓒ 뉴스1 구윤성 기자

정 회장은 지난 2013년 제52대 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53대, 54대 연임에 성공했고 지난해 55대 선거에서도 85.6%의 지지를 얻어 재신임 받았다. 스스로 '마지막 임기'에 대한 의지가 컸는데,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팬들은 싸늘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각계의 사퇴 압박에 시달렸다. 특히 최근 문체부가 축구협회에 대한 특정감사를 실시, 정 회장에 대해 운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요구하는 직접적인 압박을 가했고 협회의 항소에 법원이 적법 판결을 내리면서 더 궁지에 몰렸다. 결국 정 회장은 마지막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자진 사퇴 결정을 내렸다.

정 회장은 무려 13년 동안 '한국 축구대통령' 자리를 유지했는데 이는 1993년부터 2009년까지, 역대 최장인 16년간 대한축구협회장을 지낸 정몽준(75)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 다음으로 긴 임기다.

재임 기간 동안 2017 U20 월드컵 유치,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그리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다질 코리아풋볼파크 건립 등 '공'도 적잖다. 하지만 축구인 기습 사면 시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절차 논란 등 미흡한 행정력으로 인한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정 회장과 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면서 나라를 대표해 최선을 다해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도 피해가 뻗쳤다.

한국 축구의 성지로 통하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르는 '홈 경기'에서 야유가 쏟아지고, 국민들 가슴을 뜨겁게 만들던 '대~한민국' 대신 '정몽규 아웃'을 외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등돌린 '12번째 선수들'은 대표팀 경기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4강전을 앞두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4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 센터에서 대표팀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2024.2.4 ⓒ 뉴스1 김성진 기자

월드컵 예선을 치르며 안방보다 원정에서 더 좋은 결과와 내용이 나오는 설명하기 힘든 일이 비단 '잔디 상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축구인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언제나 '편'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으나 팬들은 냉정했다. '흥행 보증수표'라 불리던 축구대표팀의 A매치 경기장에 언제부터 빈자리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한 축구인은 "정 회장과 축구협회의 미숙한 행정력 때문에 축구대표팀까지 같이 화살을 맞고 있다. 사정을 다 알지 못하는 '라이트 팬'들은 협회와 대표팀을 동일시 여기고 한꺼번에 비난한다"며 "대표팀이 국내 출정식 없이 바로 미국(사전캠프)으로 넘어갔는데, 과연 A조에 편성돼 일정이 빨리 시작하는 이유 때문에 서둘렀을까"라며 홍명보호도 적잖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월드컵이 열리는 것조차 모르겠다"는 조롱 섞인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선수들이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사기가 떨어지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자 결국 정 회장이 결단을 내린 모양새다.

정몽규 회장은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성과를 내도록 지원하는 것이 협회장으로서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정 회장은 오는 6월 9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베이스캠프로 넘어가 선수단을 격려하고 이후 현장에서 대표팀 경기를 지켜보며 지원할 예정이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