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맥] 이동국 자서전 제목을 아시나요
- 임성일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솔직히 '마지막'도 생각했다. 운동을 너무 오래 한 것은 아닌지, 올해가 정말 마지막인 것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다. 교체를 위해 몸을 풀다가 결국 투입되지 못하고 그대로 경기가 끝난 적도 있다. 전북에 와서는 처음 겪어본 일이었던 것 같다. 이 팀에 더 이상 내 자리가 없는 것은 아닌지,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했었다."
평생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 같은, 만년 후보선수의 넋두리일 것 같은 이 푸념은 놀랍게도 지난 7월 이동국이 꺼내 보여준 속마음이다. 2017년 초 이동국은 그만큼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부상과 부진이 합쳐져 출전기회가 줄어들었고 전북의 상징과 같았던 그는 김신욱과 에두의 뒤를 받치는 백업 공격수로 전락했다. 교체를 위해 몸을 푸는 것도 낯설었던 최고의 골잡이가 몸만 풀다 그대로 짐을 싸는 경험까지 했으니 머릿속에 '은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지간한 선수라면, 그때 그만하자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 고백 후 대략 한 달이 지난 8월14일 이동국은 대한민국 축구 선수들을 통틀어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신태용 감독 부임 후 처음 꾸려지는 대표팀 명단에 당당히 이동국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서른아홉이면 연령 제한에 걸리는 거 아닌가? 조기축구회에서도 마흔 살이면 지칠 때"라고 웃은 뒤 "대단한 거다. 와서 분위기 잡으라고 부른 것도 아니라 실력으로 대표팀에 뽑혔다. 그 자체로 놀라운 것"이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라이언킹'이 다시 일어섰다.
1979년생 이동국이 2017년 대표팀에 선발됐다. 이동국보다 어린 차두리가 코치로 있는 대표팀으로 이동국이 되돌아간다. 신태용 감독은 "순간적인 슈팅 타이밍, 볼을 받으러 나오는 움직임, 2선 공격수들에게 찔러주는 패스 등은 여전히 K리그 최고 수준"이라며 이동국을 발탁한 이유를 설명했다.
귀감(龜鑑)이라는 단어가 있다. 거울로 삼을 만한 모범이라는 뜻인데, 이동국은 그러한 본보기로 충분하다. 축구 선수로서는 물론이고 인간 자체로도 귀감이 되는 이력의 소유자다.
이동국은 일찌감치 스타였다. 태국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에서 5골을 터뜨리면서 한국의 우승을 견인했던 때가 1998년이다.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데뷔, 머릿결보다 환상적인 슈팅으로 11골을 기록하면서 신인왕에 등극했을 때도 1998년이다. 그해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5 참패를 당하던 날, 그래도 축구팬들을 위로해줬던 것은 열아홉 스트라이커의 과감한 중거리 슈팅이었다.
그때부터 시작해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동국'이니 내내 꽃길만 걸었을 것 같은 선수다. 하지만 그만큼 쓴맛을 본 이도 없다. 돌아보면 12번도 더 때려치우고 싶었을 축구인생이다. 당연히 선택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2002 월드컵을 앞두고 그는 히딩크 감독의 외면과 함께 큰 좌절을 맛봤다. 이후로는 '게으른 천재' '수비가담 없는 공격수'라는 꼬리표가 그를 괴롭혔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청천벽력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던 당시 대표팀에서 이동국의 존재감은 확고했다. 물오른 결정력과 함께 펄펄 날았던 그에게 월드컵 본선은 당연한 무대로 여겨졌다. 그런데 개막을 불과 2달 앞두고 찾아온 오른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꿈이 깨졌다. 워낙 주위의 기대가 많았고 스스로의 기다림도 컸기에 좌절감 역시 심했다. 그때 그냥 주저앉아도 이해가 됐을 최악의 순간이다. 그런데 이동국은 오뚝이처럼 부활했다.
2007년, 이동국은 미들즈브러 유니폼을 입고 축구종가에 진출했다. K리그에서 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 첫 번째 선수였다. 없던 길을 만들어낸 개척자였으나 아쉽게 또 부상으로 꽃 피우지 못한 채 실패자처럼 되돌아왔다. 그리고 2008년 복귀한 성남일화에서 단 2골 밖에 넣지 못하자 사람들은 "이동국은 끝났다"는 말을 고민 없이 뱉었다. 이제 내리막길만 남은 듯 싶었다. 그런데 이듬해 전북현대 유니폼을 입으면서 거짓말처럼 비상했다.
2009년, 그는 K리그에서 22골을 터뜨렸다. 생애 첫 득점왕에 등극하던 때다. MVP도 받았다. 팀이 우승하는 감격도 누렸다. 그때가 서른이다. 2년 뒤인 2011년, 그는 16골을 넣으면서 동시에 1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도움왕에 등극했다. '주워 먹는 것'에만 능하다는 평가절하는 쑥 들어갔다. 2012년에는 커리어 최고인 26골을 터뜨렸다. 역대급 외국인 데얀이 31골을 넣은 게 섭섭했을 뿐이다. 그리고 2015년, 그는 생애 4번째로 MVP에 올랐다.
이동국이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성공했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그때가 절정에 가까웠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7년 초, 늘 젊을 것 같던 사자왕은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부진을 겪었다. 과연 경기에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노장 선수였다. 시간은 이동국도 어쩔 수 없었고, 라이언킹의 커리어는 그냥 그렇게 마감될 것 같았다. 그랬던 그가 다시 갈기를 세우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 정도면 비현실 드라마다.
이동국은 지난 2013년 초 자신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출간했다. 그 책의 제목은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이다. 그때 그는 쑥스러운 듯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고 이 책도 많이 부족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적 있다. 제목 참 잘 뽑았다.
lastuncl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