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같던 손흥민 '70m 질주 원더골', 빠른데 침착했고 정교했다
19경기서 10골9도움…12월의 '손타클로스' 기대 커져
- 임성일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어렸을 때 보았던 축구만화를 떠올려 보면 꼭 그런 장면들이 있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던 상황, 주인공(혹은 주인공이 넘어야할 라이벌)이 클로즈업 된 장면에서 표정으로 다부진 각오를 피력한 뒤 자신의 진영부터 상대 진영까지 내달리며 수비수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고 득점을 성공시키는 진짜 만화 같은 장면들이 꼭 있었다.
봤을 땐 '만화니까'라고 콧방귀를 뀌었으나 사실 짜릿한 쾌감을 안겨주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 정도 허풍이야 독자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요소였다. 그런 비현실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만화 같은 골을 성공시킨 주인공이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고, 그 무대가 최고의 리그라 불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라는 게 또 놀랍다.
손흥민은 지난 8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번리와의 EPL 16라운드 홈경기에 선발 출전해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5-0 완승을 이끌었다.
전반 5분 해리 케인의 선제골을 도운 손흥민은 전반 32분 환상적인 드리블을 선보이며 직접 골을 뽑아냈다. 토트넘 박스 근처에서 공을 잡아챈 손흥민은 쾌속 질주로 번리 문전까지 내달린 뒤 침착한 마무리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득점에 성공했다. 서두에 소개한 '우리 진영에서 상대 진영까지' 아우르던 드리블이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9일 오전 손흥민을 이주의 팀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하면서 "사실 피치 전체를 이렇게 내달리려면 모든 수비수들보다 빨리 달려야하는데, 이 놀라운 일을 손흥민이 해냈다"고 찬사를 보냈다. 아주 간단하지만 명확한 설명이다.
우리 팀 박스에서 상대 팀 박스까지 혼자서 드리블을 치고 나아가려면 그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수비수들보다 빨라야한다. 하지만 무조건 스피드가 있다고, 달리기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동료가 길게 때려준 패스를 받는 게 아니라 공을 붙이고 질주한다는 것은 컨트롤이 동반된 드리블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손흥민의 골 장면이 그러하다.
이날 손흥민의 '원더골'은, 공을 길게 차 넣고 매섭게 달려나가다 다시 잡고 마무리한 게 아니다. 드리블 과정에서 손흥민은 최소 10번 이상 볼 터치를 했다. 움직이면서, 그것도 상대 수비수들이 뒤로 밀리는 빠른 주력으로 뛰면서도 공이 손흥민의 발 언저리에 머물렀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칭찬할 것이 마지막 순간의 침착함과 정교함이다. 수비수들이 붙는 상황에서 70m 이상을 달렸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게 당연하다. 축구 선수라고 힘들지 않은 게 아니다. 체력적 에너지도, 그 사이 수많은 생각이 오가며 바빴을 정신적 에너지도 고갈에 가까운 순간에 손흥민은 골키퍼의 움직임까지 보고서 슈팅을 성공시켰다. 여기저기서 '원더골' '인생골'이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미 EPL에서도 톱클래스 공격수라는 걸 입증하고 있는 손흥민이지만 이번 득점으로 확실히 달라진 레벨을 전 세계에 알렸다. 예전부터 최대 강점이던 스피드에 침착함과 정교함도 더해졌다. 어느덧 시즌 10호골. 결정력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감독 입장에서는 복덩이 같다. 토트넘의 새 감독 모리뉴는 "이전부터도 내 아들은 손흥민을 손나우두(손흥민+호나우두)라 불렀다. 이날 손흥민은 진짜 손나우두였다"라고 칭찬했다.
정규리그 14경기에서 5골, UEFA 챔피언스리그 5경기에서 5골. 총 19경기에서 10골로 일찌감치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한 손흥민이다. 도움도 9개다. 결국 경기당 하나의 공격 포인트는 작성하고 있는 셈. 만화 주인공 같은 선수가 12월만 되면 선물을 가득 가져오니 팬들의 마음을 또 설레게 하고 있다.
손흥민은 EPL에 진출한 뒤 12월에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17년 12월에는 4경기에 출전해 4골 3도움을 올렸고 지난해 12월에도 EPL에서 6골3도움을 기록해 '손타클로스'라는 애칭을 얻은 바 있다. 올 시즌도 느낌이 좋다.
12월의 첫 경기였던 지난 5일 맨유전은 패배(1-2)와 함께 빛이 바랬으나 번리전 환상골과 함께 흐름을 확 바꿨다. 2019년 12월 한국과 토트넘의 팬들은 또 한 번 '손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대해도 좋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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